늦게 피는꽃, 가장 깊이 향기나다.

by 문주성

""늦게 피는 꽃은 있을지언정, 피지 않는 꽃은 없다.”

어느 날 우연히 본 카톡 문구 한 줄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붙잡았다.


살다 보면 어떤 꽃은 봄바람에 일찍 피어나고, 어떤 꽃은 바람이 다 지나간 뒤에야 조용히, 그러나 묵직하게 봉오리를 연다. 우리는 종종 그 늦은 꽃을 보며 조바심을 낸다. 왜 아직 피지 않느냐고, 왜 열매를 맺지 못하느냐고. 그러나 그 꽃이 지나온 계절의 혹독함과 기다려온 햇살의 무게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꽃은 저마다의 시간이 필요한 법. 우리는 그 단순한 진리를 너무 자주 잊는다.


며칠 전, 오십을 훌쩍 넘긴 한 분이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제가 지금이라도… 용접을 배울 수 있을까요?”


그 말 끝에는 말로 다 못할 용기와 두려움, 그리고 간절함이 엉켜 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회사 동료들에게 전하며 도움을 요청했을 때, 짧은 정적을 지나 한 사람이 조용히, 그러나 주저함 없이 손을 들었다. 그 순간은 무척 조용했지만, 내 마음속엔 깊은 울림이 일었다.



몇해전 교회 권사님께서 나에게 부탁을 전해오셨다. 한 분 J님을 회사에 취업시켜 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었다. 그분의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곳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실무경험 없이는 버티기 어려운 현장이다. 게다가 나는 이미, 그분이 오랜 시간 용접 일을 떠나 있었고, 과거에도 관련 경력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많은 교류가 있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분이 얼마나 성실하고 인격적으로 깊은 분인지 알았기에, 마음 한켠이 자꾸 그를 붙들었다.


고심 끝에 나는 조심스레 한 가지 제안을 드렸다.

“에드먼턴에서 단 몇달만이라도 기초 자세를 익히고 오신다면, 그 후에 이곳에서 버틸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분은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5개월동안 묵묵히 땀 흘리며 연습을 거듭하셨다. 마침내, 나는 그분을 내 조에 모실 수 있었다.


알고 보니, 2017년 이후로 용접을 떠나 주로 청소일로 생계를 이어가며 투잡, 쓰리잡을 뛰는 삶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애를 써도 삶은 좀처럼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카톡 프로필 한 구석에 매일 줄어드는 숫자가 적혀 있는 걸 보았다.

궁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그 의미를 여쭈었다.


그분은 담담히 말했다.

“딸아이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날, 한국으로 돌아갈 겁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너무 고달파서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턱 막혔다.

그분이 꾹꾹 눌러 담은 절망과 고단함이 짧은 한마디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어떻게든 도와드려야겠다.’

그 결심 하나로 나는 사무실에 찾아가 “제가 직접 가르쳐보겠습니다. 한텀만 기다려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그분께는 이렇게 말했다.

“14일만 잘 버티세요. 그 후엔 우리 함께 연습해요.”


놀랍게도, 그 이야기를 들은 많은 동료들이 서로 먼저 나서서 봉사를 자청했다.

그때의 따뜻한 마음들을, 몇 해가 지난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물론, 몇 번의 연습으로 실력이 확 느는 법은 없다.

기술은 피처럼 스며들고, 땀처럼 익어야 한다.

초반엔 많이 힘들어하셨다.


하지만 나는 자주 말했다.

“더 치열하게, 더 간절하게,

그래야만 딸아이 졸업식 뒤에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막을 수 있을것 같았다.


그분은 처음엔 걷는 듯 더뎠다. 위태로워보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땅을 박차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눈빛이 달라졌고, 손끝의 움직임에 생명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요즘, 나는 그분의 용접을 보며 자주 놀란다.

한때 불안과 절망 속에 머물던 그분이,

이제는 누구보다 단단한 손으로 현장을 이끌고 있다.


며칠 전, 새로 용접을 배우고 싶다던 한 분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꺼내자, 그분이 주저 없이 손을 들었던 것이다.


“이제는 제가 갚을 차례입니다.”


그의 눈빛은 뜨겁고도 단단했다.

그 눈빛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금 확신했다.


그것은 단순한 기술의 전수가 아니었다.

도움을 받던 이가,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만큼 성장한 삶의 반전이었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 또 다른 꽃을 피워내는 감동의 순간.


그렇게, 또 한 번 봄이 왔다.

그리고 나는 그 봄의 한복판에서,

한 사람의 피어난 꽃을 바라보며 다시 희망을 배운다.



행복하세요.

당신은 이땅에서 누구보다도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그 묵직한 꽃봉오리를 여는데 다소의 시간이 필요했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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