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은 아무나 하나?

오펜하이머 영화를 보고 나서

by 바다나무

가끔 눈먼 혜택에 횡재를 하는 경우가 있다. 퇴직하면서 이것저것 가지고 있던 카드도 다 반납하고 중요한 은행의 카드 하나로 통일하여 사용하고 있다. 많으면 분실우려만 있고 정신도 분산된다. 가끔 물건을 사거나 주유를 할 때 할인혜택이나 포인트를 적립해 주는 카드가 없어 손해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크게 의미두지 않는다. 나이가 한 살씩 더해지면서 번거거나 머리 쓰는 게 싫어지고 단순하게 살고 싶어졌다. 그런 내가 게을러서 혜택을 보는 게 있다. 핸드폰을 KT에 가입할 경우 연 6회 공짜로 영화를 볼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오랫동안 기지국을 바꾸지 않은 탓이리라.


영화는 본 지 여러 날이 지난 것 같다. 당시 D도시에 볼일을 보고 시간이 여유 있어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내가 영화광이거나 어느 장르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단지 퇴직하면서 최소한 월 1회 이상의 문화생활을 해야겠다는 나름의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굳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음악 콘서트, 미술관, 박물관, 전시회등 문화예술에 관련된 것들은 의도적으로라도 찾아다니며 나태해지려는 삶을 환기시켜야겠다는 나와의 작은 약속이었다.


이번달에도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본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제2차 세계대전중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하여 원자폭탄을 개발한 역사에 대한 전기영화이다. 리나라의 해방을 앞당긴 영화라 의미 있게 보면서도 내용이나 용어들이 생소하고 등장인물들이 많아 이해하기가 어려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 영화기도 하다.


사실 이 영화는 작은딸이 보라고 추천한 영화이다. 자기 친구는 두 번이나 보았다고 하면서. 물론 우리 딸은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 보지 못했다. 영화를 보면서 문과계통인 내가 지구과학시간에나 들었을법한 양자역학이나 원자폭탄 제조과정과 원자폭탄 이후에 수소폭탄을 만들어야 하는 등의 인과관계를 알리 없다. 쩌면 지루함을 느끼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울의 SKY대학까지 나온 딸의 친구도

두 번씩이나 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유는 너무 재미있었거나 아니면 이해하지 못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영화를 보기 전에 최소한 "맨해튼 프로젝트", "오펜하이머", "제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사전지식을 가지고 보더라면 이해가 좀 더 빠르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었다. 영화에서는 핵무기 개발의 역사를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전체의 진행을 암시하는 서사 잘 읽어야 했다. 특별한 액션이나 격정적 표현 없이 등장인물들의 내적갈등이 핵심이라 그 흐름을 잘 따라가 야하므로 다소 지루하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3시간 동안 상영되는 영화를 인물들의 대사를 음미하며 보는 건 쉽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뒤늦게 이해가 되면서 많은 각을 하게 영화이기도 하다.


다소 정신없었던 건 오펜하이머의 두 가지 타임라인도 한 몫한다. 컬러인 분열장면과 흑백인 융합장면은 하나의 퍼즐 맞추기라는 생각도 들게 했다. 오펜하이머의 주관적인 시점은 컬러인 분열로, 슈트라우스의 시선으로 오펜하이머를 바라본 객관적 시선은 융합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미묘한 주관적인 모습들을 보는 관객들은 객관화하여 당시의 역사적 경험을 이해해야만 했다. 어렵지만 재미있고 훌륭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 건 다 끝나 갈 무렵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함이 머리로는 이해되는 영화! 펜하이머는 겐 그런 영화였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한 사람의 영웅이기보다는 나약하고 모순 덩어리인 사람이었다. 그의 운명은 신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준 죄로 독수리에게 영원히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받은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로 표현되고 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세상을 파괴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천재 과학자의 핵개발 프로젝트는 어쩌면 그를 구원자이자 파괴자 만들 것이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라는 절규 말해다.


이러한 이중적인 성격의 역사적 인물을 감독은 외부의 여러 가지 환경들과 엮어서 요하게 성하고 있다. 복잡한 형식을 가진 영화지만 감정적 흐름을 통해 영화적 체험을 할 수 있는 영화. 지금까지 본 화와는 뭔지 모를 색다른 분위기를 출하는 영화이다. 재미있다, 미없다를 평하기가 난해한 영화다. 핵이 인간세상에 미치는 영향, 그로 인한 고통은 오펜하이머의 선택에 대한 결과의 책임이라는 생각도 갖게 한다. 그것은 안타까운,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모순과 인류의 존속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세상이치와도 결부되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영화 속의 웅장한 음악다. 영화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놀라운 선율 OST의 한계를 뛰어넘어 몰입도를 상승시켜 다소 지루함을 상쇄시켜 주었다. 영화의 크고 작은 흐름과 인물의 감정을 현악기의 선율로 그려내어 내용이 이해가 잘 안 될 때 음악이 이해를 시켜 주었다. 인물의 감정적 딜레마를 음악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어쩌면 먼 훗날 내 기억에는 "오펜하이머"라는 영화가 내용보다 음악으로 먼저 기억될지도 모른다.


혹여 과학적인 자서전 같은 영화라는 생각에 어린 자녀를 동반한다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다소 선정적인 부분이 있어 단순한 전기영화로만 치부하기에는 조심성이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 영화는 다소 지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일 수도 있지만 사전 지식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영화의 흐름을 잘 따라간다면 세계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역사와 과학자로서의 한 인간의 내면을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 영화가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잘 안 되는 건 나의 영화에 대한 부족한 안목 탓이리라. 문화인이 되기는 아직 멀었나 보다. 단순한 내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다시 한번 보아야 할 것 같다. 딸의 친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