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길목에서 봄을 만나다.
자전거 라이딩 길에 만난 카페
오전시간이 여유가 있다. 오후에 문화센터 강좌가 있기에. 집에서 티브이만 보며 시간을 보내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을 챙겨 입고 헬멧을 쓰고 집을 나섰다. 모처럼 아침 자전거 라이딩이다. 선들바람이 불었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일교차가 커서 무척 더울 것이다. 요즘 또다시 계절이 거꾸로 가는지 낮에는 무척 덥다. 도시라서 그럴까?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시골과는 확실히 날씨 차이가 많이 난다.
상쾌하다. 도로옆 가장자리에는 벌써 낙엽이 나뒹군다. 아무리 더워도 어김없이 세월은 가고 계절은 변하고 있다. 아침시간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다. 주로 밤산책을 많이 한 탓에 아침산책 풍경은 다소 생소하기도 하다. 그 풍경 또한 다채롭다. 반려견과 같이 나온 사람. 아픈 아내를 부축하며 걷는 노부부. 옷을 흠뻑 젖은 채로 달리는 런닝맨. 핸드폰을 보며 느리게 걷는 젊은 여자분등 다양한 풍경 속에 보행자 도로옆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아침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송골송골 맺혔던 이마의 땀방울 떨어진 자리가 바람에 시원하다. 밤의 풍경과는 다른 아침의 풍경은 뭔가 신선하다. 생동감이 있다. 지난번 금계국으로 황홀했던 들녘을 지나간다. 이번엔 금계국 대신 수크령이 아름답게 피어 가을로 가는 길목을 안내한다. 초록 수크령과 붉은 수크령이 혼재되어 단풍이 든 듯하다. 바람의 흔들림에 물결이 인다.
우리가 잘 아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는 한자성어도 이 수크령에서 나왔다고 한다. 중국 진나라 군주 위무자가 나이가 들어 병세가 악화하자 아들 위과에게 첩인 서모도 죽여 함께 묻어달라고 부탁한다. 자기만 죽으면 될 것을 군주의 위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들 위과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고 서모를 살려주었다. 군주가 죽고 그 후에 위과가 전쟁터에서 위험에 처하자 서모의 친정아버지 혼령이 나타나 적군 앞에 놓인 수크령을 꽁꽁 매어 덫을 만들어 적군이 탄 말이 여기에 걸려 넘어졌다고 한다. 그 사이에 위과는 도망을 쳐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나온 ‘풀을 엮어 은혜를 갚는다’(결초보은)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수크령 이라고 한다.
수크령은 농촌 들녘의 길가나 초지, 논둑, 제방등 아무 곳에나 서식이 자유분방하다. 벼가 익어갈 때쯤 수크령도 점점 몸집을 키워 억세져 간다. "수크령"은 크령을 암크령으로 삼고 이를 대응하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억새의 한 종류로 잘 뽑히지 않고 손을 다치게 하는 풀이기도 하다. '결초보은'이라는 한자어를 생성해 낸 수크령에 어린 시절 내게도 아픈 추억이 있다. 소풍 가는 들길 가운데 많이 피어 있어 먼저 지나간 개구쟁이 친구들이 묶어놓아 발길에 걸려 앞에 있는 친구가 넘어지자 같이 넘어진 기억이 있다. 많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지만 때론 아주 위험하기도 한 장난이었다. 다행히 나까지만 넘어지고 그 뒤의 친구들은 괜찮았다. 그때의 크령은 아마 암크령이었던것 같다. 수크령은 밟히지 않는 길가나 초지에 살기 때문이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수크령이 흔들리며 햇빛에 부서진다. 그의 꽃말처럼 "가을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무심코 지나갔던 들풀도 이제 하나하나 의미되어 다가든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고, 잊혔던 것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변하는 자연은 기억을 끄집어내고, 여유는 추억을 소환하여 풍요로운 마음으로 가을을 느끼게 한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가을들녘을 바라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한참을 달리니 자전거도로 끝에 예쁜 카페가 보인다.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산책 나온 강아지도 환영하는 애견카페이기도 하다. 카페가 많이 생기다 보니 사람들이 목마름을 느낄 즈음에는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다. 등산할 때도 그랬듯이, 자전거도로 끝에도 더위와 목마름에 힘들어하는 자들을 위해 구원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하는 만큼 반갑고 기쁘다. 잠시 더위를 식히고 가야겠다. 나만, 봄!이라는 카페에서. 오늘은 모닝커피를 이곳에서 마시며 하루를 시작하련다.
커피보다 카페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먼저 반겼다. 아주 귀엽고 앙징맞은 강아지다. 우리 집 반려묘 "바다"만큼 눈이 동그랗고 예쁘게 생겼다. 카페 중간중간에는 반려견의 용품들이 준비되어 있다. 작은 의자, 옷. 장난감등. 요즘은 워낙 반려동물들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호텔이나, 식당, 카페에서도 반려동물 입장을 허락하는 곳을 많이 볼 수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단지, 이 부분은 호불호가 나뉘는 부분이므로 각자의 개성으로 남겨둔다.
시원한 커피 한잔에 달려온 거리만큼의 더위를 날려 보낸다. 나무에서 가끔씩 목마른 낙엽이 한 잎씩 바람에 날린다. 봄에는 강가의 가로수 벚꽃이 멋지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며 혼자만의 봄을 만끽하는 나만, 봄! 카페. 오롯이 봄을 혼자 마음속에 담아놓고 삶을 즐긴다. 나만 쳐다보라고 하는 "나만 봄"카페가 아닌, 늘 새로운 봄 안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나만, 봄" 카페에서 나만의 봄을 만들어 본다. 가을문턱에서 만난 나의 봄, 그것은 어쩌면 인생의 가을로 가는 길목을 또 다른 새로운 봄으로 맞이하라는 채찍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자전거 페달에 힘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