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삶과 마주 보기"

씨네토크

by 바다나무

나의 노년을 생각해 보게 하는 하루였다. 세편의 독립영화가. 신중년센터에서 주관하는 씨네토크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중년은 중년도 아니고 노년이라고 하기엔 다소 젊은 퇴직자들이 여기에 속한다.(50~65세)나 같은 사람. 얼마 전 나는 이곳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연수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오늘 "씨네토크"라는 프로그램이 개최된다기에 호기심으로 참여해 보았다. 이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뭔가 던져주는 메시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상영된 영화들은 노인을 주제로 한 30분짜리 독립영화 세편으로 도시, 시골, 조손가정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지고 제작된 단편영화들이다. 상영이 끝나고 영화해설사로부터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관객들과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 독립영화는 이윤추구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일반상업영화와는 달리 창작자의 의도가 중요시되는 영화이다. 그동안 독립영화는 많이 접해 보았지만 영화해설사로부터 영화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처음이다. 보이는 부분을 통해 보이지 않는 그 이면까지 알아 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문화, 예술분야의 안목을 키워가기 위해서는 역시 전문해설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도 느꼈지만 오늘 다시 또 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첫 번째 영화 "실버택배"는 서울을 배경으로 일명 지하철 택배를 하는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택배과정에서 범죄에 관련된 대포통장을 운반하게 되고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게 된다. 결국 기록일지를 불태워 증거인멸을 하기에 이른다. 귀가 잘 들리지 않기에 배송하는데 고객과 소통이 잘 안 된다. 걷는 속도도 빠르지 않고 큰 배달짐을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그러던 중 택배일을 하러 간 꽃집에서 새잎이 자랄 때 원래 있던 잎의 양분을 빨아먹고 자라나는 것을 보고 시든 잎에서 공허함을 느낀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며 홀로서기하는 노인의 현실이 여실이 드러나는 영화이다.


두 번째 영화 "일기예보"는 꽃가게를 하는 손녀와 살고 있는 조손가정의 이야기이다.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어느 날 할머니는 친구들과의 약속 모임에 가려한다. 이를 말리는 손녀딸은 할머니가 혹여 돌아가신 아버지를 해양장 하러 가는 것으로 오해하고 할머니를 모임에 가지 못하도록 한다. 납골당 기간이 20년 만료되었지만 손녀는 아버지를 결코 바다에 떠나버리고 싶지 았다. 할머니는 당신 살아생전에 죽은 아들을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고. 옥신각신하며 할머니의 외출을 반대했지만 결국 태풍 속을 뚫고 친구들 모임에 간다. 다른 친구들도 외출을 자제하라는 재난방송을 저버리고 빗속을 뚫고 조금 늦게라도 모임에 참석한다. 노년의 이들에겐 친구들과의 만남이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한 친구가 가지고 온 파김치를 나누어 먹으며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춤을 추며 그들 만의 흥겨운 세계에 몰입한다. 그때의 그들은 노인이 아니었다. 젊음의 축제를 즐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길고 긴 세월 속에서 몇 안 되는 행복한 순간과 절망의 순간들이 교차되며 늙는다는 것에 세월을 담아내고 있는 영화였다.


세 번째 다큐멘터리 "아옹다옹"은 시골에서 생활하고 있는 친구인 두 할머니와 고양이와의 삶을 소박하게 담아내고 있다. 투박한 사투리와 시골생활에서의 적적함,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고양이를 돌본다. 시집와서 사귄 지 60년이 넘은 친구와 티격태격하며 같이 흘러간 옛 노래를 부르고 농사일을 거들며 함께 의지하며 늙어간다. 영화 속에서 느껴지는 많은 자연의 시끄러운 소리들이 시골의 바쁨을 알려주기도 한다. 노년의 삶은 무료하지만 때를 맞추는 농사일은 바다. 알콩달콩, 티격태격하는 모습들을 극적요소를 배제한 체 실제상황을 그대로 노출한 담백한 다큐영상이었다.


세편의 영화는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진 노년의 모습을 현실성 있게 그려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한 우리 이웃의 할머니모습이다. 그럼에도 보는 내내 뭔가 안쓰럽고 마음 한구석이 짠했다. 왜 노년이라는 말만 들어도 한쪽 가슴이 아려오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모습은 머지않은 나의 모습일진대. 노년의 삶은 아무도, 본인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했던 삶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살아오는 동안 나름 열심히 살아왔을 것이다. 앞만 보고 달려와 멈추어 돌아서 본 자화상이 오늘의 그 모습일 것이다. 오랜 세월 열심히 살아온 삶의 대가가 저 모습일까 하면서 시 같이 관람하고 있는 주변관객을 돌아보았다. 모두들 숙연한 모습들이다.


영화 엔딩크레디트를 보면서 잠시 나의 미래를 그려본다. 나의 미래를 설계해 본다.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최근 무언가를 배우거나 가끔 모임에 가면 연세가 드신 어르신들이 많았다. 노인분들이다. 사람마다 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 주변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여유 있고 넉넉하게 노년을 이어가고 어서서 닮고 싶었던 적도 많았다. 영화와 모습은 닮았지만 삶의 방식은 달랐다. 자기 계발에 충실하신 분들이었다. 단 하나, 영화 속의 노인분들이나 내가 만난 어르신들 공통점은 있었다. 살아감에 아주 담담해하셨다. 조급해하거나 흔들림이 없었다. 이미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 닳고 닳아 뾰족함이 무디어진 탓이리라. 그동안 버리고 비운 마음 탓이리라


"죽은은 끝이 아니다"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죽음은 모든 걸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남게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어쩌면 노년의 삶은 죽음과 연결될지도 모른다. "웰 다잉"이라는 말도 있듯이 죽음을 잘 맞이하기 위한 죽음의 준비도 노년에는 미리 해야 할 것 같다. 어느 영화에서는 축제라고 말하기도 다. 이승에서의 주어진 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완성하는. 노년을 향해 걸어가는 내 삶의 나침반도 가끔은 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곳으로 가고 있는지, 흔들림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하리라. 인생은 속도가 아니고 방향임을 알기에 노년의 길을 잘 찾아가야 할 것이다. 이왕이면 축제의 길로.


세편의 영화가 다시금 성찰이라는 이름으로 내게 숙제를 던져준다. 어떻게 노년을 맞이해 갈 것인가? 다소 무겁지만 더 늦기 전에 후회하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잠시 내 마음을 돌아보고 생각해 보는 시간도 필요할 듯싶다. 어느 날 불쑥 다가온 내 노년이 낯설지 않기 위해서는. 100세 시대를 살아가고 계시는 어느 철학자의 행복론을 다시 한번 읽어 보아야겠다. 준비된 자와 준비되지 않은 자의 삶은 다르다고 하까. 영화를 보고 나오니 비가 내린다. 어둠과 함께.


*대문사진ㅡ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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