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어디지? 유토피아인가? 영화관을 나오며 그 여운과 낯선 곳에서의 느낌이 잠시 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고 나오는 길이다. 어느 조그만 소도시에서. 그것도 고속도로에서 샛길로 빠져서. 그야말로 요즘 내 생활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뒤죽박죽이다. 그렇지만 나름 즐겁다. 여행하는 기분이다. 모임이 있어 아파트로 갔다가 너무 더워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시골로 다시 가는 중이다.
대화도중 요즘 영화 볼만한 거 뭐 있나? 하다가 얼마 전 내가 구독하고 있던 작가님이 자녀들과 영화를 보고 쓴 글이 생각났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사실 지금 시골도착하더라도 서너 시간은 너무 더워 일을 못할 상황이다. 폭염으로 인한 온열환자 급증으로 야외활동 자제하라는 문자는 계속 오고. 그럴 바엔 영화를 한편보고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는 영화관이 있는 D시를 이미 지나고 있었고 세컨드하우스가 있는 지역은 영화관이 없었다. 앞으로 지나갈 G군이 영화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검색을 해봤더니 작은 영화관이 있었다. 영화관람료도 일반영화관의 1/2 정도인 7000원이고, 2시에 상영시간이 잡혀 있었다. 조금 늦긴 해도 앞의 광고시간 끝날 때쯤 도착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전화를 해보았더니 좌석이 예약 안 해도 있다고 하였다. 가자! 부랴부랴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시골의 아담한 작은 영화관이다. 작은 영화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기존에 영화관이 들어선 적 없거나 폐관된 도서지역에 국비, 도비를 지원받아 운영하는 소규모 영화관이다. 대형의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CGV등에 비해 다소 규모는 작지만 타 지역으로 영화를 보러 가는 불편함이 줄어 지역민에게는 인기 있는 문화공간이다. 우리는 지난 제주여행 시 영화 "더 웨일 "를 작은 영화관에서 보며 낯선 지역에서의 저녁시간에 색다른 즐거움을 느낀 적도 있다.
영화관에 들어섰을 때는 광고가 막 끝나갈 무렵이었다. 관객도 10여 명 정도.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처음부터 약간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였다. 커다란 지진으로 지각자체가 변하고 거대한 잔해들이 밀려온다. 그곳에 단 하나의 아파트만 존재하고 있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이 외부인들을 차단하며 살아남기 위한 생존자들의 삶의 몸부림을 다룬 재난 영화다. 최악의 막다른 골목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군상들의 심리와 행태등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는 내내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된다. 계속되는 예측지 못한 재난상황. 이상기온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 때문에 일어나는 각종 사회변화, 아파트가 하나의 부의 기준이 되고 돈이 사회를 지배하는 물질만능의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회범죄들. 지나친 개인주의와 이타적인 인간성과의 괴리감 등 많은 생각들이 나라면 이러한 극한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어떻게 재난이 이루어졌나 보다는 그 이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 고 있나를 다루었다. 어쩌면 디스토피아적인 세상을 이상적인 부분으로 그려지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모든 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이었고 보고 난 후의 감정들이다. 많은 생각을 가져다준 영화이기도 하지만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들도 있다.
영화관을 나오자 허기감이 밀려왔다. 아침만 간단하게 먹은 탓이다. 주변의 맛집을 찍고 네비를 켰다. 1분 남았다고 하여 차선을 따라갔다. 돌고 돌아도 없다. 안내지점이라고 끊기는 지점에서도 식당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조그만 골목길이 있긴 하지만 차가 갈 수 없을 것 같아 다시 어렵게 후진하여 돌아선다. 이제는 핸드폰 T맵을 작동시켰다. 마찬가지다. 아까 허탕 치며 돈길이다. 식당이 폐업했나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아직도 영화관에서 뒤죽박죽 한 상황들과 현실이 함께 혼재되어 같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포기하고 중국집 간판이 보이길래 그곳으로 가서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이 묶어진 A코스요리를 시켰다. 테이블 위의 물을 마시다 시선이 창밖에 머물렀다. 찾던 식당이 보인다. 황당하다. 아까 너무 좁아 보여 뒤돌아섰던 그 좁은 골목길이 식당 진입로였다. 세상에. 이런 식당도 맛집이라고 네이버지도에 나오는 게 신기하다. 이미 중국음식을 시켰기에 맛집이건 아니건 패스다.
음식이 나오는 동안 핸드폰을 켰다. 좀 전까지만 해도 이상 없던 핸드폰이 깜빡거리며 화면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완전 먹통이다. 강제종료시키고 잠시 후 다시 시작했다. 이제 된다. 잠시 막간을 이용해 브런치에 들어가 보았다. 어제 올린 친정엄마 글이 조회수 폭등으로 계속 문자가 온다. 반갑다는 생각보다는 뭔가에 홀린 것만 같다. 뒤죽박죽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일련의 상황들이 나를 정신없게 만든다. 날씨가 더워 모든 게 정상이 아니다. 갑자기 영화관 간다고 샛길로 빠진 그 순간부터.
식사를 하고 다시 차에 올랐다. 차창옆을 지나는 광경들이 아름답다. 햇빛은 따갑지만 하늘의 구름도 여유 있게 흘러간다. 배도 부르고 핸드폰도 정상이다. 피식 웃음이 났다. 잠시 가보지 않은 길을, 해보지 않은 일을 하고 왔을 뿐이다. 시골에 도착하니 꽃이 반기고 작은 쉼터가 앉으라고 자리를 내어준다.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 여기가 나의 유토피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