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날!

by 바다나무

오늘은 남편이 공식적으로 학생들 앞에 서는 마지막 날이다. 학생들 졸업식날이고 2월이면 남편은 정년퇴직이다. 학생들은 졸업과 동시에 방학이 되면서 내년 3월 1일 새 학기를 맞이하고 교사들은 2월 말로 인사가 이루어진다. 이때 남편은 40년이 넘는 교직 생활을 청산하고 정년이라는 이름으로 퇴직하게 된다. 일반기업이나 공무원들은 1월 1일을 기준으로 인사가 이루어지는데 비해 교사들은 학기제 개념에서 3월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한다.



어제는 하얀 와이셔츠와 양복바지에 주름을 잡아 깨끗이 손질하여 잘 보이는 곳에 걸어놓고 다음날 남편 출근에 차질이 없도록 해 두었다. 매번 이렇게 내조하는 현모양처는 아니다. 먼저 퇴직을 하고 난 여유와 한 번쯤은 다소곳한 한국 여성상(?)을 구현해 보고 싶었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남편의 정년퇴직이 곧 다가옴에 그동안 아내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옷을 손질하면서 남편이 퇴직을 하고 나면 앞으로 이렇게 바지를 다리고 와이셔츠를 다릴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왠지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물론 애경사에 갈 때 가끔씩 양복을 필요로 하는 날이 있겠지만 내 주변의 퇴직하신 분들을 보면 대체로 복장이 자유롭다.


출근하려고 옷매무시를 매만지는 남편에게

"학생들하고 학부모님께 할 인사말은 다 준비 됐어요?"

"뭐 그냥 써 놓은 거 읽으면 되는 거 아냐!"

"그래, 난 행사 때마다 몇 번씩 연습하고 녹음해서 시간재고 했는데... "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남편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하긴 당신은 알아서 잘하니까 연습 같은 건 필요 없을 거야! 잘하고 와(요). 오늘 졸업식 끝나면 아이들하고는 끝이네. 그동안 수고했어(요).!"

오늘따라 평상시 안 하던 수다를 주절주절 떨며 양복의 어깨를 털어주고 가볍게 안아 주었다.

아내의 포옹에 다소 멋쩍은 듯 "갔다 올게"라는 말을 남긴 채 현관을 나섰다.


나는 행사가 있는 날은 혹여 실수라도 할까 봐 집에서 몇 번씩 시나리오를 읽어보거나 인사말을 되뇌었다. 혹여 발음이 엉켜 말이 잘못 전달되거나,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지루함을 주지 않을까 싶어 핸드폰의 녹음기능과 스톱워치를 사용해 거의 외워서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크고, 작은 목소리로 연습을 하였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면서 한두 번 한 사람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까지 유난을 떠냐고 질책하기도 했다. 성격인걸 어쩌랴. 그래도 가끔 실수 하는걸...




돌아보니 이렇게 어색하듯 쑥스러운 아침배웅을 해본 것도 살아오는 동안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남편은 중등교사였고 나는 유치원 교사였다.

때로는 승진이나 전직발령에 의해 주말부부를 하거나 장거리 출퇴근을 한 적도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에 바빴다. 학교는 유, 초, 중, 고, 학교급을 달리하더라도 거의 학사일정이 비슷하게 맞물려 입학식, 졸업식, 송별식 등 행사와 회식이 겹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면 누군가 먼저 와서 아이들을 챙겨야 했다.


형편에 따라 육아를 책임져야 하지만 교사와 전문직을 오가며 근무했던 나였기에 많은 부분에서 남편이 가사를 책임져 왔다. 육아휴직이 당연시되던 시기도 아니었고 자유롭게 병가나 연가를 활용하기도 눈치 보였던 시절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친정부모님이 가까이 계셔서 편찮으시기 전까지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찌 되었든 맞벌이의 삶은 고달팠고 남편은 높은 충실도를 나타냈다. 이쯤에서 나는 남편의 공을 치하해 주어야 할 듯싶다. 어찌 보면 내 교직생활은 남편 덕분에 아름다운 퇴장으로(명예퇴직)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남편은 꽃과 나무를 좋아했다. 가는 학교마다 예쁘게 정원을 만들어 아름다운 학교를 조성했다. 점심을 먹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오솔길을 걷고, 벤치나 정자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게 실외 교육환경을 예쁘게 꾸몄다. 교장실에서 아침등굣길에 자신이 만들어 놓은 꽃길을 걸어 등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행복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학생들의 정서교육에 많은 신경을 쓰고 바른 인성을 가진 학생들로 자라길 바랬다. 이러한 성정 덕분에 우리의 세컨하우스인 바다나무 농막도 예쁘게 꾸밀 수 있었다.


올 스승의 날에는 학교게시판의 "교장선생님께 바랍니다"란에 많은 학생들이 예쁜 꽃밭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하다는 쪽지말과 함께 학생회에서는 상장을 만들어 남편에게 전달하였다. 학생들이 교장에게 주는 상이 었다. 남편은 그 상을 들고 와 가족들에게 자랑하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교장은 교사들이나 학생들이 즐거워하고 인정해 줄 때 보람을 느끼고 행복해한다.


지금은 하나하나 의미 있게 최선을 다하며 정리해 나가는 남편이 자랑스럽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중심을 잡고 소신 있게 생활해 온 남편이 퇴직하고 자신의 남은 삶을 소신 있게 살아가 주길 바란다. 오늘은 아내인 내가 학생들과 마지막 공연을 펼치는 졸업식 무대에 서 있는 남편에게 꽃다발을 전한다.


부부교사인 우리는

중학생인 큰딸과 유치원에 다니는 작은 딸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반문하며 교직생활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내 자녀를
나 같은 교사에게 맡겼을 때
나는 만족할 것인가? 라고 반문하면서...

매거진의 이전글어머니가 그리운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