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양다리

풍미 가득한 까페라떼를 마시기 위하여!

by 바다나무

새해아침이다.

써놓고 부치지 못한 글이 내 발목을 잡을까 봐 띄워 보낸다.

까페라떼를 마시기 위해 집을 나다.

산성을 한 바퀴 돌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면 편안한 맘으로 새해를 시작할 수 있을것 같다.

커피의 풍미를 느끼며 내마음에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타종을 울려야다.




아직 보신각의 제야의 종소리가 들리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남았다. 내년 계묘년은 내 인생의 한 바퀴를 돌아오는 해이기도 하다.

두 번째 돌아오는 서른!

앞에는 공부했고 뒤에는 돈 벌었다. 아니 정확히는 공부한 시간보다 일한 시간이 더 길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나머지 서른은 무얼 할까?

의미 있게 자~알 놀아야 할 듯싶다.


가까이 있는 토성에 올라 해넘이를 보고 왔다. 새로운 계획은 천천히 하고 올해는 잘 마무리해야 할 듯싶었다.

우리 지역의 해는 5시 25분에 서산을 넘었다. 싸늘한 찬 기운이 가슴에 파고든다. 올해 따라 유독 오늘이 아쉬운 건 퇴직한 첫해라서 그럴까?


오랫동안 교직에 있었다. 돌고 돌아도 정년은 많이 남았는데 더 이상 올라갈 자리는 없고 내려갈 자리만 있었다. 너무 숨 가쁘게 빨리 달려온 탓인지, 아니면 관운이 좋았던 탓인지, 아마 둘 다 일 터이다. 내려가는 건 용기가 없고 차라리 이쯤에서는 후배들에게 스스로 자리를 내어 주는 게 아름다운 퇴장일 듯싶었다. 뒤돌아보지 않고 0000호 아줌마, 준이 할머니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누구보다 가족들이 반겼다. 육아 때문에 힘든 큰딸은 엄마의 찬스를 쓰기 위해 꽹과리라도 칠 기세로 퇴직을 반겼고, 같은 교직에 근무하는 남편은 나와 함께 따라나설 채비를 하기에 나는 잠깐만! 을 외치며 1년의 유예기간을 가져 달라고 당부하기에 이르렀다. 기동력이 없는 언니들은 막내동생과의 자유로운 여행이 무작정 길 떠나는 자매들의 여인천국인 양 기다렸고, 그동안 김장이며 먹거리를 제공해 주신 형님은 말동무가 생겼다며 좋아하신다.

모두들 축제라도 열 기세다. 그것은 아마 몸이 약한 나에 대한 가족들의 배려이자 보이지 않는 명예욕(?)에 대한 질타이리라.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나의 인생 2막은 시작되었다. 당일 저녁 7시부터 4개월간의 숲해설가 연수가 예정되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 속에서 지금까지 와는 다른 자연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삶이 시작되었다. 가르치는 자가 아닌 배우는 자가 되니 한결 마음이 편했다. 갖가지 민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머리가 가벼웠다. 아쉬움보다는 내 할 일 다 하고 나온 것 같아 후련했다. 교직이 좋고 싫고 와는 다른 개념이다. 그저 날개만 안 달렸을 뿐 나는 훨훨 날고 있었다.


짬짬이 책을 읽고, 글쓰기를 하고, 운동을 하고,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산책을 하고... 등등이 다소 진부해 보일 수도 있는 일상이지만 너무 좋았다. 별것 아닌 별것들이 행복했다. 물론 이 약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오늘에 초점을 맞추고 사는 나에게는 하루하루가 의미 있고 소중했다. 아, 요즘처럼 추운 날 출근준비 안 하고 5분만 더 뭉그적거릴 수 있다는 것 또한 빼놓수 없는 행복이다.

일부에서는 은퇴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여기서 잠깐 퇴직과 은퇴에 대한 용어 정의를 해본다. 퇴직은 현재 다니는 직장을 그만둔다는 뜻으로 주요 직업에서는 물러 났지만 재취업할 수 있는 상태로 비경제활동 상태가 아님을 의미한다. 은퇴는 주요 직업에서 물러나 비경제활동 상태가 되는 것으로 경제적, 비경제적 상황 변화가 일어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중요한 상황을 의미한다. 나는 퇴직을 한 은퇴자다.


어느 학자는 은퇴 후 기간을 쇠퇴의 시간이 아닌 '자기 성숙과 발달의 시기'라고 말한다. 굳이 거창한 이론을 열거하지 않더라도 나는 공감한다.

은퇴 후의 삶은 내가 만들기에 따라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 번씩 거쳐가야 하는 삶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남은인생이 달라질 것이라 여겨진다.

내 마음이 행복하면 바라보는 사람도 행복하고 주변 또한 더불어 행복하리라. 그리고 어차피 사는 인생이라면 우리 모두는 행복의 전파자가 되어야 할 것 이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돌아오는 길에 카페에 들러 소금커피를 마셨다. 오늘은 쓴맛, 단맛, 짠맛 나는 커피에 나를 풀어 마시고 싶었다. 내일은 해가 바뀌니 거품 가득한 카페라테에 우유의 고소한 풍미를 느끼며 다가오는 새해를 우아하게 맞이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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