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기를 돌려놓고 주방 식탁에 앉자 커피를 마셨다. 청소는 아침, 저녁으로 하는 일상이다. 그렇다고 청소가 취미도 아니고 유독 깔끔을 떨어서도 아니다. 그저 우리 집 막내 바다(고양이) 때문이다.
귀엽고 앙징맞아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지만 그가 지나간 흔적은 자주 처리해 주어야 한다.
작은 공간은 돌돌이를 쓰지만 거실이나 방은 어쩔 수 없이 문명이 주는 혜택으로 호사를 누린다. 처음에는 아침에만 청소기를 돌렸는데 바다집사(남편)가 여유가 생겨 긴 꼬리가 달린 장난감으로 자주 놀아주고 나니 거실이 털의 바다가 된다. 다소 번거로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용서가 되는 건 애교가 많고 웃음을 주는 가족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브라바(물걸레 청소기)와 에브리(흡입청소기)가 거실에서 부딪쳤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기계의 부딪침 소리보다는 스크래쳐(고양이 꾹꾹이)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바다의 후다닥 뛰어오르는 소리가 더 컸기 때문이다.
혹여 부딪침이 있을까 봐 에브리는(흰색) 방에서 부터 시작하도록 설정해 두었고, 브라바는(검은색) 거실에서 부터 시작을 하도록 명령을 해 둔 터이지만 오늘은 에브리가 침대옆 핸드폰 줄에 걸려 잠시 외도를 하는 바람에 타임이 엉켜 거실에서 충격전이 일어난 모양이다.
이 청소기는 둘 다 사위가 사준 것이다. 무릎을 꿇고 방을 닦는 것이 무릎이나 손목에 안 좋다는 것을 알기에 걱정이 되어 마련해 준 것이기도 하지만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이라 새로운 전저제품의 모양과 성능에 관심이 많아 자주 물건을 교체하는 것도 한 몫한다.
덕분에 몇 번 안 쓴 물건을 새로 사려고 우리에게 양도한 것도 있고, 본인들이 사용해 보고 편리하고 좋다 싶어 새로 사준 물건들도 있다. 이 청소기는 그중 전자에 속한다. 더 성능 좋은 새로운 신제품이 출시된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것 말고도 베란다를 청소하는 손잡이용 청소기도 있고, 화장대 위의 머리카락 수거용 작은 청소기도 있다. 모두 제각각 용도가 다르니 사용자가 입맛에 맞게 가져다 쓰면 된다.
물걸레 청소기 브라바는 소음이 적어서 저녁이나 손주가 와서 잘 때 아주 용이하게 잘 사용한다. 무엇보다 큰딸이 준이를 낳고 친정에 와서 얼마간 몸조리할 때 톡톡한 효자 노릇을 한 청소기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제 아들 깨끗한 환경에서 잠 잘 자라고 사위가 가져다 준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후후-)
요즘은 여유가 생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양이면 보다 대대적인 청소로 브라바와 에브리를 출발점을 달리하여 동시에 돌린다. 다소 정신없긴 해도 시간이 단축되고 왠지 하나로 할 때보다 더 깨끗한 느낌이 든다. 청소를 하고 나면 커피맛도 더 있고, 글도 술술 잘 풀리고, 잠도 더 잘 오고, 기분이 좋아진다.
참 좋은 세상이다. 로봇청소기 덕분에 내 신상이 이리도 편해졌으니...
마시던 커피잔을 들고 가만히 매트 위에서 부딪친 청소기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들의 다음 모습이 궁금해졌다. 소리도 나고 더 커서 웅장해 보이는 에브리가 비켜갈까? 아니면 다소 왜소하지만 소리 없이 묵묵히 제 일을 다하는 브라바가 비켜 갈까?
청소기 두 개는 서로 비켜가려고 서너 번 부딪치자 동시에 둘이 휙 돌아서서 방향을 달리해 제 갈 길을 간다. 언제 너와 내가 부딪쳤냐는 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냥 각자 제 할 일을 한다. 단지 그들의 밀고 당기는 싸움을 본 것은 나와 바다뿐이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떠 올랐다.
서로 목소리 키워가며 잘났다고 하는 여. 야 정당도 떠오르고, 맞추어 살려고 노력하다 끝내 이혼한 아는 후배도 생각나고, 유치원에서 마주오다 부딪쳐 아픈 부위를 매만지며 서로에게 "미안해! 미안해!" 하며 사과하는 꼬맹이들도 아른거리고, 오랜 직장을 뒤로하고 마이웨이를 외치는 어느 퇴직자도 떠오르고...
중요한 건 부딪침의 과정을 끝내고 그들은 주어진 청소 임무를 완벽하게 마치고 제 집으로 돌아가 충전을 하며 편안한 휴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문득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었다. 누가 어떠한 삶을 살든 그 과정은 다양한 모습을 거쳐 종착지에 다다를 것이다.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이 그저 각자의 삶에 충실하며 자신의 길을 걸었으리라.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자신에게 당당한 삶을 살며 하루하루 멋진 인생탑을 쌓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가로 노후에 편안한 안식이 주어졌으리라.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이왕이면 그 과정이 꼬맹이들처럼 서로를 위해주고 보듬어 주는 삶의 과정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주친 청소기를 보며 느낀 어느 이른 아침의 단상이다. ( 청소기 관련 광고성 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