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즐기기로 했다.

여행은 이런 맛에!(양평여행 2일차)

by 바다나무

커튼을 젖혔다. 남한강 물줄기가 내려와 눈앞에 언 채로 보인다. 가운데는 물길이 트있어 조용히 머문 물의 휴식이 평온하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처럼 . 뷰를 집착하는 아내 때문에 웃돈을 주고 숙소를 바꾼 것 같다. 강변뷰가 있는 곳으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밖이 보이는 게 좋았다. 가슴이 탁 트여 내 몸을 흩고 지나가는 숨길이 자유로와 영혼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지만 시골풍경이 바로 보이는 바다나무 세컨하우스를 나는 좋아한다. 누우면 맑은 하늘에 구름 떠가는 게 보이고, 미세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것까지 느껴지니까...


마지막 손님으로 온천욕을 하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다음날 여행코스를 잡느라 늦게 잠을 잔탓인지 아침햇살이 커튼사이로 새어 들어올 때야 눈을 떴다. 잠자리가 깨끗해 캐리어 속에 준비해 온 홑이불 두장은 가방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남편은 잠자리에 민감하다. 나이가 들면서 변한 것 중 하나다. 이불 닿는 촉감이 이상하거나 침대 쿠션이 불편하면 밤새 뒤척인다. 큰딸도 그런 친정아빠의 방문을 위해 얼마 전 수면에 좋은 매트를 다시 구입해 놓았다.


간단한 치장을 하고 여유 있게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은 용문산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은 언니와 함께 자취를 하며 직장을 다니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학교에 근무하는 자매교사 였다. 지역의 체육행사가 있는 날이면 각기 다른 학교 대표로 만났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그 옛날 살던 자취집은 흔적이 없다.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세월 따라 어디 사람만 변하겠는가? 스치는 차창밖을 통해 추억의 골목길을 지나간다.


뱃속의 위기를 넘겨야겠기에 용문산 주변의 보리밥집으로 향했다. 조금 이른 점심시간이라 우리들 뿐이다. 정갈한 식당에 소쿠리 채반에 담긴 비빔밥재료와 된장국, 생선구이, 돼지고기 두루치기, 쌈채소가 진수성찬이다. 음식도, 식당도 정갈하기 그지없어 든든함을 채우고 예쁜 스카프를 쓴 주인장께 너무 맛있어서 뱃속에 행복을 담고 간다는 인사말을 전한다. 벽면에 붙여놓은 문구가 대신 우리 내외를 배웅한다. "손님이 신사면 식당은 숙녀가 된다"라는 표어 아닌 표어가..


용문산 입구에서 용문사까지만 산책하기로 했다. 트렁크의 등산화와 혹시 모를 눈길을 위해 손바닥만 한 경량의 아이젠을 주머니에 넣었다. 남편이 장갑 낀 손을 내민다. 언젠가 여행할 때는 내손을 꼭 잡아 달라던 말이 생각났나 보다. 어느 외국여행 중 노부부가 손을 꼭 잡고 다니던 아름다운 뒷모습을 내가 기억하고 있는 탓이리라.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조금 가다가 커다란 건물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자아~, 오늘여행은 여기부터 시작해야겠다.


"청춘 뮤지엄"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70-80세대들의 추억이 넘나드는 복고풍 문화체험관이다. 교복을 입고 다양한 세트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다소 쑥스럽지만 도전이다. 얼마 만에 입어보는 교복인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서 우린 눈길이 마주치자 쑥스러워 서로 웃었다. 청춘남녀의 로맨스가 여기서 다시 시작되려나? 추억의 뽑기, 공중전화박스, 문구점, 주점, 화장실, 경성역. 의상실, 고고장 등 추억의 끝을 잡고 포토존을 돌며 시진을 찍었다. 옷 따라 마음도 따라가나 보다. 이팔청춘이다.


방문객은 우리와 여자 셋이다. 딸과, 엄마, 친정엄마를 모시고 온 삼대가 관람하고 있었다. 연세가 아주 고령인 할머니 여고생이다. 정겨워 보이는 그들 가족을 보는 순간 친정엄마가 생각이 났다. 눈가가 잠시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왜 요즘은 좋은 거, 맛난 거만 보면 엄마생각이 울컥 솟아오르는지 모르겠다. 명복을 짧게 타고 나신걸 난들 어쩌겠는가? 그리움에 한 넋두리를 하고 있는 차에 그들이 가족사진을 한컷 찍어달라고 한다. 덕분에 우리도 한 장 찍었다. 찰칵-


중간쯤 가니 시끄러운 음악이 들린다. 흔들리는 조명과 음악이 그 옛날 고고장을 연출해 놓았다. 익숙한 이글스의 Hotel California 노래 들린다. 난 가무가 딸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학교 다닐 때도 고고장이나 디스코텍을 잘 가지 않았다.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직원회식 때도 노래방이나 단란주점을 피할 수 없어 가긴 했지만 얼른 매 맞듯이 아무 노래나 한곡 부르고 계산을 하고 그곳을 도망치듯 나오는 사람 중의 하나다. 웟사람이 있으면 아랫사람들이 맘 놓고 놀 수 없다는 배려라는 설픈 명분으로...


고고장 앞에서 남편이 동영상을 찍어주겠단다. 그래, 지금까지 못해본 거 해보려고 작정한 차에 뭔들 못하겠는가? 보는 사람도 없는 마당에 맘 놓고 흔들어댔다. 광란이다. 누가 보았다면 나잇값 못한다고, 제정신 아니라고 할 것이다. 불빛이 현란한 것인지 내가 정신줄을 놓은 건지 모르겠다. 동작 빠른 남편은 영상을 가족카톡방에 올려놓았다. 딸들이 갖은 이모티콘을 동원하여탄으로 보내며 응원의 댓글을 쏘아 올렸다. 우리 엄마에게 이런 면이 있는지 몰랐다며 박장대소한다. 그리고 좋아 보이고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한바탕 80년대의 공간에서 헤적거리며 놀다가 문사로 향했다. 천년의 은행나무가 인고의 세월을 말해준다. 나뭇잎은 없지만 풍채가 예사롭지 아니하다. 그저 숙연해진다. 전에는 은행잎이 풍성한 가을날 왔던 기억이 있다. 밀리는 인파 속을 뚫고. 스치는 찬바람에 대웅전 처마밑의 풍경소리가 고즈넉한 산사에 울려 퍼진다. 잠시 경건함에 불교도가 아니더라도 미륵불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내세를 빌어본다. 숙제 같은 인생 축제처럼 잘살다 가겠으니 잘 봐 달라고..


한참을 걷고 몸을 불살랐더니 배꼽시계는 무언가를 또 달라고 한다. 여지없이 반란에 순응해야 한다. 우리는 옥천면옥으로 향했다. 시골학교에서는 그 옛날 추석 다음날 운동회를 했다. 그래야만 관람객도 많고 찬조금도(학교발전기금) 많이 들어왔다. 학부모 회장은 운동회가 끝나면 쉬지도 못하고 고생한 교사들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차가 없던 시절이라 예약을 하면 식당 측에서 봉고차를 보내주었다. 우리는 그 차를 타고 가서 완자와 편육과 냉면을 배불리 먹었다.


여행은 그런 것 같다. 먹고, 걷고(보고), 마시고(쉬고), 또 먹고... 를 반복하며 맨 마지막 느낌을 소중히 간직한 채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것 같다. 그것이 쌓여 내 인생이 되고 추억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옥천냉면에서 추억의 음식을 먹고 가까운 곳에 있는 카페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돌아가기로 했다. 이곳 역시 정원카페이다. 와~우! 도착하자마자 아름다움에 탄성이 나왔다. 유럽풍의 정원에 알록달록 꽃이 만발이다. 이 겨울에?, 자세히 보니 파스텔톤의 조화였다. 혹시 겨울에 썰렁한 느낌이 들어 다양한 꽃으로(조화) 정원을 채운 것이다. 정성이 대단하다. 프로방스 한 그림 같은 카페, 이름 그대로 더그림이다.


봄, 여름, 가을에는 계절 꽃과 나무가 정원을 화려하게 장식한다고 한다. 지금은 그 꽃들이 유리온실 속에서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군데군데 설치해 놓은 포토존에는 다양한 모양과 색깔의 모자, 우산등 소품이 준비되어 아름다운 한순간을 프랑스의 멋진 여인으로 만들어 준다. 정원이 넓고 꽃들이 많아 준이를(손자) 데리고 오면 좋아할 것 같다. 사람마다 취향은 다 다르다. 내가 아름답다해도 누군가는 유치하다고도 할 수 있다. 조화가 좋은 것이 아니라 미루어 계절 속의 정원을 느낄 수 있어 좋은 것이다. 새로운 곳이라 좋은 것이고 잠시 생각의 끈을 내려놓고 가족들과 힐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것이다.


장미가 유리온실 속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나를 기다렸다. 바다나무 농장에서 나와 한 식구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노지월동이 된다고 하여 색깔별로 몇 개 구입했다. 이제 조금 후면 어둠이 내려앉을 시간이다. 돌아갈 길이 멀다. 꽉 채운 1박 2일 일정이 내일 출근할 걱정이 없어서인지 피곤하지 않았다. 내가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예쁘게 추억으로 갈무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사 가지고 온 예쁜 장미를 화분에 모둠으로 심어 베란다에 두었다. 겨울을 지내고 봄이 되면 농장으로 갈 것이다. 지금 나는 장미와 함께 봄을 기다린다.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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