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

곡성 세계장미축제(지리산여행 1)

by 바다나무

집을 나섰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들고 세계 장미축제 열리는 곡성으로. 날씨가 화창하다. 여행하기 좋은 날이다. 이번에는 이사하면서 트렁크에서 꺼내놓았던 1박 2일 용 여행가방을 챙기지 않았다. 여벌의 티셔츠 한 장과 속옷, 양말 한 켤레만 조그만 백팩에 넣고 길을 나섰다. 여행도 미니멀하게.


한동안 감기기운도 있고 농장일도 밀렸던 터라 다소 조신하게 지낸 것 같다. 그동안도 작은 나들이는 매일 일상으로 이루어졌지만 뭔가 머릿속에 스케줄을 짜고 행동을 개시한 건 시간이 좀 지난것 같다. 감기도 거의 나았고 또 다른 세상구경을 나서야만 할 것 같은 스멀거림이 올라왔다. 지체하거나 미룰일이 아니다. 축제기간이니까 적기다. 이 또한 내가 정하면 된다.


우유 한잔에 바나나 하나먹고 가볍게 나왔던 터라 축제장 관광을 하기 위해선 에너지 보충부터 해야 했다. 곡성에 도착하니 점심 먹기는 다소 이른 시간이었으나 이 시간이 붐비지 않기에 우리는 곧장 식당으로 갔다. 돼지갈비 맛집이다. 며칠 전부터 갈비가 먹고 싶은 생각이 났으나 오늘을 위해 남겨두었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여기저기 유명인들 싸인이 붙어있다. 맛집이긴 한가 보다. 돼지갈비를 시키니 이것저것 상차림이 푸짐하다. 손님이 없는 탓인지 주인이 고기를 친절하게 구워 주셔서 편안히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후식으로 냉면을 먹을 때쯤부터 손님이 몰려오기 시작하여 우리는 조용한 가운데 얼른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나름 터득한 맛집 탐색에 대한 여행의 노하우다.


다음 행선지로 핸들을 돌렸다. 입속의 고기냄새를 없애기는 커피만 한 게 없다. 오늘의 스케줄은 카페부터 여유 있게 들렀다 가는 코스이다. 깊은 산길을 돌고 돌아 들어가니 계단위에 하얀색의 건물이 나온다. 뒤로는 울창한 대나무숲에 앞에는 넓은 잔디밭, 단순하면서도 깔끔한 건물의 커피숍이 산속의 넓은 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요즘은 굳이 도로변의 인접성을 따지지 않더라도 곳곳에 멋진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인터넷 영향으로 소문만 나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추세다. 카페에 들어서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느낌이 난다. 뭐지?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왠지 언젠가 가본 논산 탑정호수 앞에 있는 카페와 비슷한 이미지가 풍겨져 나왔다. 한 바퀴 돌다 보니 카페 시공업체가 같은 곳이었다. 어쩐지, 이정도면 내 눈도 이제 카페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언젠가 지역축제에서 그리기 대회 심사워원을 한 적이 있었다. 유. 초.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여서 각급학교에서 그래도 그림을 잘 그린다는 학생들이 대표로 나온 사생대회였다. 심사를 하다 보면 비슷한 느낌의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면 같은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의 그림이었다. 일종의 그 학원에서 느껴지는 화풍같은. 오늘의 이 카페도 시공자가 같은 탓에 다르지만 그런 느낌이었다.


곡성의 기차마을 안에 있는 장미축제장으로 갔다. 가히 규모가 광활하다. 얼마 전에 우리 집 주변에서 보았던 장미축제는 견줄 바가 아니다. 세계 장미축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1000여 종이 넘는 다양한 나라의 장미들이 화려한 꽃궁전을 이루고 있었다. 장미자체의 아름다움에 종류, 색상의 다양성이 각 나라마다의 스토리를 가지고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치 세상 속의 또 다른 환상의 세계에 와 있는 것만 같았다. 정말 눈이 제대로 호강했다.


두 시간정도 행사장을 돌면서 사진도 찍고. 이벤트 행사장 관람도 하면서 축제장 분위기에 동화되었다. 원 없이 장미꽃과 향기에 취해 보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젊은 사람들보다는 연세 드신 분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노부부가 어깨동무하며 장미 아치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함께 행복하게 해로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가야지...


축제장을 돌다 보니 기차마을의 증기기관차 탑승예약시간이 되었다. 사실은 이 시간에 맞추어 시간여행을 했던 것이다. (구)곡성역에서 가장역까지 가는 기차여행은 추억의 감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하얀 연기를 품는 증기기관차에 탑승하여 섬진강 바라보며 (구)철로를 달리는 기차여행은 계절을 만끽하는 느린 시간여행을 내게 선물해 주었다. 옛 교련복을 입고 판매하는 이동식 매점에서의 라면땅 과자와 쫀득이는 나를 7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시켜 주었다. 그리움이 있는 시간으로.


축제장을 나와 숙소가 있는 구례 쪽으로 이동하면서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식당에서 참게탕을 맛보았다. 새우가 들어간 시원함을 유유히 흐르는 섬짐강을 바라보면서. 강물은 말없이 흐르고 뜨거운 매운탕은 목줄을 타고 심부 깊은 곳까지 흘 들어간다. 정말 맛있다. 이미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기는 하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할만한 맛집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풍경에 취하고 맛에 취하고 인심에 취할 때가 있다. 이번여행은 이 세 가지에 취하고 있다.


교원들과 협약을 맺은 숙소를 찾아 깊은 산골로 들어왔다. 덕분에 다른 관광지에서도 약간의 할인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호텔은 가 묵을 곳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주변의 커다란 숙소들은 코로나로 인해 폐쇄가 되어 어둠에 흙빛으로 변해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웠다. 이 닫힌 노래방, 나이트건물, 오락실 지난 시간들의 경제상황을 말해 주는 듯했다. 이제 축제가 다시 활했으니 지역경제도 좀 살아났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은 낯선 애국자가 되어 주변을 둘러본다. 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에는 아름다움과 비참함이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 고향숯불갈비. 카페 공림, 곡성 기차마을(장미원). 천수식당. 더케이 지리산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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