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주는(부처님) 선물

화엄사(지리산 여행 2)

by 바다나무

커튼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이 눈이 부시다. 늦은시간까지 자려고 했는데 날씨가 내 게으름을 허락하지 않는다. 주섬주섬 세면용품을 챙겨 부대시설에 있는 온천으로 사우나를 하러 갔다. 이곳 지리산 온천수는 게르마늄이 다량 함유된 천연유황온천이다. 이왕 길을 나섰으니 몸에 좋다는 온천욕으로 개운한 아침을 맞는 것도 여행의 한몫이라는 생각 들었다.


사우나를 한 후 크아웃을 하고 숙소를 나섰다. 가벼워진 몸으로 구례 수목원으로 상쾌한 산책길에 올랐다. 어제 장미축제장의 현란한 눈호강을 편안한 수목의 초록빛으로 순화하고 싶었다. 수많은 인파들로 인한 귀의 어지럽힘을 새소리로 정화하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눈도, 귀도, 모든 것을 편안하게 쉬게 하는 것이 오늘의 여행이다. 느리게 쉬엄쉬엄 가보자.


작지만 아담한 수목원에는 은은한 연분홍빛 작약꽃이 둘레길을 수놓고 있다. 간간히 연보랏빛 붓꽃이 은은함을 더하고, 하얀 찔레가 청초함을 더하고 있다. 숲 속의 푸르름과 어우러진 우리 꽃들의 수함이 싱그러운 아침을 선사해 주었다. 커다란 돌바위에 걸터앉아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니 뭔가 충만함이 느껴졌다. 아무것도 옥죄지 않는 편안함과 헐렁함. 기에 청아한 이름 모를 새소리가 들린다. 이게 쉼이고 힐링이지 않가.


편안한 우드칩 산책길을 걸어 나와 지리산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천은사에 가기 전에 브런치카페에 들러 식사와 커피로 요기를 하며 쉬어가기로 했다. 오늘은 시끌벅적한 해장국집보다는 조용히 정원을 바라보며 식사를 하고 싶었다. 어제 너무 열심히 구경을 했기에 오늘은 맘껏 여유 있는 일정을 소화해 내고 싶 탓이리라. 이왕이면 좌석도 바 테이블로 분위기를 연출해 본다.


예쁜 통창사이로 숲이 보이는 가정집 정원 같은 숲 속카페이다. 모둠카츠와 리코타치즈 샐러드에 커피를 테이블 오더로 주문했다. 요즘은 어디 가나 혼자 주문하고 정리해야 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마주할 기회가 없는 것도 있지만 인건비가 비싼 탓도 있다. 음식도 키오스크로 주문하고, 서빙도 로봇이 하고, 하긴 공공연하게 사용하는 이 용어들도, 문화도 아직은 게도 낯설 하다.


어느 시골 어르신의 말씀이 생각난다. 난 대처(大處)에 나가면 밥도 못 사 먹는다는, 딸집(아파트) 이름도 모른다는, 주머니에 돈 있으면 뭐 하냐는... 변하는 사회문화 전반에 따라가기 어려운 어르신의 자조 섞인 푸념이다. 과거의 문화격차는 자본이 만들어낸 것이라면, 지금은 디지털 디어 문화가 만들어낸 상이다. 나 역시 살아가기 위해서 느리게 따라가지만 가끔은 버거울 때가 있다. 여행을 하면서 더듬거리며 배를 채우고 눈과 귀를 채워나간다. 아직은 문화실조를 느끼고 싶지 않으니까.


여유 있는 차와 식사. 푸르름 속에서 여행의 묘미를 맛보고 근처에 있는 사찰을 구경하기로 했다. 나무와 계곡을 따라 들어선 사찰을 갈 때면 불자는 아닐지라도 늘 경건해진다. 이곳은 한때 문화재 관람료나 통행료등으로 잡음이 있던 곳이었으나 모든 것이 잘 해결되어 상생의 길이라는 멋진 데크길이 만들어졌다. 문화와 자연과 사람이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 주어 누리라는 의미의 나눔길, 보듬길, 누림길이라는 산책길이 저수지를 따라 예쁘게 펼쳐져 있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로 연등을 걸어놓은 절은 화려했다. 주변의 경관 탓에 절에 오면 늘 마음이 편안했다. 데크길을 걷고 사찰을 들러보고 화엄사로 향했다. 이곳은 천년고찰이라고 일컬을 만큼 천은사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했다. 구의 귀여운 불상에 새겨진 법구경에 나오는 말씀이 나의 발길을 잡았다.

불견(不見)!, 불문(不聞!, 불언(不言)!

인생을 살면서 조심해야 할 것들이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이지만 이제라도 마음속에 잡아두련다. 내일이 석가 탄신일이니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로 평화로운 세상을 살아가기를 염원해 본다.


다소 여행으로 들떴던 마음이 두 개의 사찰을 돌면서 차분해졌다.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자문자답하면서 화엄사의 일주문을 나섰다. 죽는 날까지 이 질문은 이어지리라 생각하면서.

멀리 대웅전의 줄지어진 연등과 하늘의 구름이 한폭의 그림인양 아름답다.


화엄사를 뒤로하고 차에 타려는 순간 멋진 문구가 는 플래카드가 보였다. 삶의 방향으로 제시했지만 오늘 은 더더욱 가슴에 다가든다.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더라도 삶의 방향을 다시금 게시받은 듯하여 마음가득 뿌듯하다. 하긴 이래서 여행길에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속의 나를 발견하고 보다 나은 참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기에. 돌아오는 차속에서 부처님(화엄사)이 나에게 주는 선물같은 그 글귀들을 나직이 읊조려본다.


나에게 주는 선물
' 오! 늘 '

ㅡ 스스로 빛나는 석등처럼

나를 믿고 지금 이 순간을 수용하고

당당히 살아갑니다.ㅡ


* 지리산온천. 구례 수목원. 숲과 브런치. 천은사. 화엄사.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상 속의 또 다른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