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찾아온 봄

자연인의 삶

by 바다나무

주인 없는 '바다나무' 농장 개나리가 지키고 있다. 맑은 하늘의 예쁜 뭉게구름이 마실 왔나 보다. 나 오래 발길이 뜸했다. 무엇보다 집이 넓지 않고 귀중한 물건이 없어 다행이다. 따뜻한 봄이 온 지 오래 건 만 집을 나간 주인은 돌아올 줄 모른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기서는 목마르다고 소리치고, 기서는 너무 덥다고 소리친다. 저쪽에선 자리가 비좁다고 비켜달라고 소리치고. 이쪽에선 나 잡아봐라 하며 약 올리며 소리친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이미 식량이 바닥난 지 오래다. 주인이 넉넉한 밥상을 차려주고 갔음에도 옆집 친구들이 놀러 와서 같이 먹다 보니 써 떨어졌다. 아직 안 오는 걸 보면 나를 잊은 건지, 아니면 내가 양자라 그런 소 서운한 맘도 든다. 그래 집에 있는 '바다'친구는 등 따습고 배부르게 잘 있겠지? 우리 주인은 아동학대 신고자로 오랜 세월 감투를 썼으니 편애는 할지 모르나 유기, 방임은 하지 않을 사으로 보인다. 옛날에도 친구들이 계절옷을 입고 오지 않거나, 며칠씩 결석을 하면 필코 그 집을 방문 했던 사람이니까 서투르게 방치하지는 않을꺼다. 그나저나 지금은 배가 너무 고파서 잠시 친척집이라도 갔다가 와야겠다.


온몸이 너무 아프다. 쉬고 싶은데 쉴 수가 없다. 겨우내 추워서 잔뜩 움츠리고 있다 기지개를 잘못 켜는 바람에 삐끗했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콧물이 계속 줄줄 흐른다. 가끔씩 우르르 콱! 하고 재채기도 난다. 분명히 무슨 사달이 난 건 틀림없다. 주인이 와서 치료해 주거나 의사가 방문진료를 와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동네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는 죄인이 되어 숨을 죽여야 한다. 날씨가 가물어서 물이 잘 나오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아파도 용서해 주지 않는다. 괴롭다. 인이 빨리 와서 이 죄인의 굴레에서 벗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5도 2촌 생활로 매주 오던 시골 바다나무 농장을 긴 겨울과 제주살이로 오랜만에 왔다. 여행 가기 전 날씨가 추워 단도리를 하고 가긴 했지만 돌아와 보니 여기저기 허투른 구석이 았다. 추워서 얼을까 봐 싸놓았던 목수국의 줄기가 습기로 색이 변해 있다. 아마도 너무 더워 답답서 병이 난 듯했다. 그럼에도 그 가지사이를 비집고 여린 싹이 올라왔다. 대단한 생명력이다. 어미의 산고 속에서 태어난 새 생명을 본 듯 경이로웠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고통과 인내로 살아왔을 그 시간들이 미안해 주변흙을 보듬어 숨통을 열어주었다.


장미덩굴 아치옆에 심어둔 앙징맞은 수선화가 철제 사이로 고개를 내밀고 노란 여린 꽂을 피웠다. 너무 키가 큰 수선화만 있기에 작년에 왜성종으로 심어놓은 꽃이 몸을 가누기 힘들어 지줏대 삼아 의지하여 소복이 피어났다. 작지만 넓어 보이는 꽃밭에 일찍이 자리 잡고 앉아 오고 가는 사람의 눈길을 맞이하고 있었다. 잠이 없어 일찍 깨어난 탓이리라. 홀로 피어 손님맞이에 좀 피곤했는지 몇 잎은 색이 바래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일찍 잠에서 깨면 신세가 좀 고달프다. 어린 시절 두부 사 오라는 심부름 몫은 늘 아침 잠이 없는 내 몫이었으니까.


매화가 한쪽에서 꽃망울을 달고 기웃거리며 시기를 보고 있는 듯하다. 주인이 올 때쯤 환영의 축포라도 쏠듯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옆에 나란히 심어놓은 청매화는 아직 움직임이 없이 초연하다. 같은날 사다 심었건만 어째 이리 다를까. 하긴 한날한시 한 몸에서 태어난 쌍둥도 다 다른데 각기 다른 수종으로 태어난 것들이야 오죽하랴.


농장을 돌아보니 이렇게 몇 놈만 귀가 밝아 눈을 뜨고 나머지 녀석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다. 이곳이 산날망이라 추워서 이불을 끌어안고 꿈속을 헤매는 듯했다. 제주보다 근 한 달이 더디다. 으름을 피울날도 얼마남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머지 앓아 봄햇살의 간지러움에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리라. 아니, 주인의 우당탕 거리는 발자국 소리에 시끄러워 곧 단잠에서 깨어나리라.


어디선가 숨어있다 우리들 인기척이 나면 슬며시 나타나던 '나무'가(길고양이)보이지 않는다. 곧 오겠지 하며 기다리는데 하루가 지나도 오지 않았다. 가끔씩 이렇게 안 나타나면 걱정이 된다. 혹여 잘못되지나 않았을까 신경이 쓰이지만 찾을 길이 묘연하다. 여기저기 자꾸만 기웃거려 본다. 집에 있던 바다(반려묘)도 제주살이를 3주 하고 왔더니 우리를 피 후다닥 어디론가 도망을 갔다. 다들 저를 면 한 줄 아는가 보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애교를 떨고 몸을 비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무도 어디선가 곧 나타나겠지.


마당에 있는 수도가 잠기지 않고 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온 동네사람들이 다 함께 쓰는 물인데 수량이 모자랄 때는 민폐다. 상황을 보니 고장난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 며칠 전 친척이 잠깐 들렀을 때 별일 없었다고 연락했으니까. 갑자기 추웠다 날씨가 풀리는 바람에 고무패킹이 느슨해진 것 같다. 내일이라도 장에 가서 품을 사다가 갈아 끼워야 할 듯싶다. 우선 임시로 꽁꽁 싸매 물길을 둬 두었다.


손길이 바쁘다. 해묵은 꽃잎도 잘라주어야 하 빠듯하게 올라오는 수선화도 포기 나눔 해야 할 듯싶다. 새로 사 온 장미넝쿨도 어딘가 자리 잡아 울타리를 세워 주어야 하고, 지난겨울 양평여행에서 사와 아파트 베란다에서 겨울을 난 아기장미들도 집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좁은 집에 식구가 늘어나다 보니 자리 차지하기가 힘이 들다. 아예 어떤 녀석들은 길 건너 큰집으로 분가를 하기도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라고 했던가? 비운자리는 금방 표시가 난다. 집도, 농장도 주인 없음에 뭔가 엉크러져 있고 불안하다. 무엇보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신경이 많이 쓰인다. 무심코 켠 TV 뉴스에서 아기를 두고 며칠씩 집을 비운 20대 엄마의 무책임한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마음이 짠하고 먹먹하다. 철없는 엄마의 무정이 여린 생명을 앗아갔다.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애도해 본다.


들판으로 나갔다. 따스한 봄햇살에 냉이도 달래도 세상밖으로 나왔다. 지난해 남아있던 뿌리에서 파도 고개를 내밀었다. 언덕배기에 머위나물도 지천으로 흐드러져 있다. 봄나물은 오랜만에 나타난 나를 외면하지 않고 먹거리로 응수했다. 콜레스테롤이 높아 약용으로 쓰려고 심어놓은 눈개승마 잎도 제법 자랐다. 한끼 먹을거리는 된다. 이 정도면 풍미와 향기를 곁들인 자연인의 밥상이 풍성하게 차려지리라. 이 또한 내 삶이다.


*바다ㅡ집에서 기르는 반려묘

*나무ㅡ농장에서 키우는 길고양이

*바다나무 ㅡ세컨드하우스(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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