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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나무 Apr 13. 2023

 할머니의 바보사랑

준이의 두 번째 생일에 즈음하여.

꽃비가 내린다. 가느다란 미세바람에도 벚꽃은 흔들리고 있다. 천변가에 벚꽃과 개나리가 층을 이루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도열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도처에서 꽃잔치가 열리고 있다. 사계절이 명확하다는 걸 몸소 보어주고 있다. 론 온난화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꽃도 있지만 옥에 티정도로 오늘은 치부해 보련다. 이 길은 손주한테 오면 유아차를 끌고 자주 나오는 길이기도 하지만 가끔 내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님 글에서도 등장하는 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낯설지가 않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 음악을 들으며 앞만 보고 걷는 사람. 다정히 팔짱을 끼고 유유자적 걷는 사람, 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을 또 다른 사진으로 찍어다. 아니 그림으로 그려낸다. 각기 그날의 상태나 기분에 따라 색깔옷이 다르게 입혀진다. 복잡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들은 상념에 잠겨 회색빛 낸다.


오늘은 손주의 두 번째 생일이다. 커다란 곰인형과 성심당의 딸기 케이크를 사가지고 왔다. 인형풍선은 미리 3일 전에 예약을 해야 하고, 케이크는 한 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서 사가지고 와야 한다. 내가 극성 할머니인지,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지만 준이가 좋아할 것 같아 그리 해보고 싶었다. 벌써부터 환하게 입이 벌어질 손주 얼굴이 기대된다.


올해부터 인근 어린이집에 다닌다. 적응기간이라 한두 시간 놀다가 오는 게 고작이다. 엄마와 처음 떨어져서인지 분리불안증으로 갈 때마다 울고 보채 뒤돌아오는 딸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직 너무 이른가? 보내지 말아야 하나? 매번 어린이집을 돌아 나오며 준이의 모습이 아른거려 등을 겪는다고 다. 그래도 유아교육을 전공한 엄마말에는 귀 기울이고 조언을 구한다. 조금만 더 있으면 적응할 거라고, 계속 울음이 안 그치면 시설에서 전화 올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 기다리라고.  말에 다소 안심인 듯 가슴을 어루지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오늘은 아침에 가기 싫어하는 준이를 할아버지, 할머니랑 데리러 오겠다고. 그리고 같이 꽃구경 가자고 달래서 보낸 모양이다. 12시 반쯤 이른 귀가를 위해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갔다. 마당의 미끄럼틀 뒤에 숨어 나오기를 기다렸다.  "까꿍"하며 나타나자 이내 함박웃음꽃 핀 얼굴로 달려 나와 품에 안긴다. 아직도 비릿한 아기내음이 난다. 제 몸의 반만 한 크기의 가방이 등을 모두 차지하고 있다. 기특하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모습이.


돌 때 우리 집에 왔다가 넘어져 눈썹부위를 열바늘정도 꿰맸다. 내가 퇴임하고 함께 가족사진을 찍기로 한터라 우리 집에 온 것이다. 준이의 엄마도, 나도 옆에 있었는데 순간 몸을 가누지 못해 침대의  나무 모서리에 찍힌 것이다. 당황한 가족들은 어쩔 줄 몰랐다. 다행히 봉합전문병원으로 간 탓에 흉터는 남지 않았다. 소아과를 가야 하나, 성형외과를 가야 하나. 모두가 당황하여 안절부절못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운전하는 내 팔다리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아 허둥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이후 준이는 우리 집에 오지 않았다. 아니 못 오게 했다. 우리가 준이한테 가기로 했다. 우리 집 전체를 모서리 보호대를 하고, 안전문을 설치하기엔 너무 범위가 컸다. 사내 녀석이라 활동범위도 넓고 에너지도 많았다. 무엇보다 바다(고양이)와의 관계도 조심스러웠다. 준이가 오면 바다의 경계태세가 심해졌다. 서로의 사랑쟁탈전인양 날카로워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듯했다.


이제 제법 걷기도 잘하고 의사소통이 된다. 제 엄마가 책을 많이 읽어 준 탓인지 책에 대한 집중력이 대단하다. 순간순간 쓰지 않던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책 속에서 들은 언어들이 재구조화되고 있다. 할머니는 그런 손주를 위해 알고 있는 교육적 지식을 총동원언어의 확장을 도모하며 함께 놀아주다 보면 력이 딸리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후발주자인 남편이 나타나 몸으로 놀아준다. 한동안은 재접근시기인 탓에 엄마한테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우리도 마다하고 엄마 껌딱지로 붙어있었다.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혼자서 미끄럼 타는 모습이 다소 위험해 보이기는 하나  그냥 지켜본다. 벌써부터 옳고 그르고, 싫고 좋고 가 분명하다. 이제 분별감이 생겼다. 준이를 데리고 천변가를 갔다. 어진 꽃잎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입씩 주워본다. 물가에 물장구치는 청둥오리를 비라보며 좋아라 손뼉 친다. 노란색 개나리를 보며 할머니의 옷과 똑같은 색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조그만 입을 타고 나오는 언어들은 세상의 진리예술이었다.


인성의 모든 것은 세 살 전에 완성된다고 한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고 했던가. 어느 순간 나도 어쩔 수 없는 바보할머니가 되어 손주를 짝사랑하기에 이르렀다. 현직에 있을 때 손주를 데리러 와서 예뻐 어쩔 줄 모르던 할머니들을 보며 '정말 예뻐도 저렇게 예쁠까?'라고 의구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었다. 키워보니 정말 예쁘다. 자식은 이미  살 이전에 예쁜 짓으로 부모에게 평생 할 효도 몫을 다했다고 하지 않던가?


내가 내 자식 키우면서 바빠서 못 느꼈던 것들을 손주에게서 느끼고 있다.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 앞에서 쩔쩔매며 구걸하던 바보사랑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딸이 결혼초 천천히 아기를 낳겠다는 것을 옹호하며 나도 할머니 될 준비가 안되으니 천천히 낳으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참 철부지 할머니이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완벽한 준비후에 맞이하려 했던 어리석음에 부끄러워진다. 이런저런 상념에 잠겨있는 동안 준이가 어디서 주웠는지 개나리 꽃 한 송이를 들고 달려온다. 할머니 선물이라고.


삶의 언저리에서 손주의 재롱은 또 다른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해 준다. 퇴직 후 손주의 부름은 모든 것을 제쳐놓고 가장 우선이 된다. 한 발 한 발 세상밖으로 나가는 발걸음에  우리는  힘찬 응원을 보낸다. 지금은 어설프지만 내 머리에 하얀 꽃으로 온통 뒤덮일 때면 세상을 짊어질 멋진 청년으로 자라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도 우리는  바다나무 농장을 예쁘게  가꾸며 먼 훗날 삶에 지쳐 휴식이  필요한 날을 위 준이의 휴식처를 만들고 있다. 맑은 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살아가는 동안  마음의 자양분이 되길 기도해 본다. 준이야! 두 번째 생일 축하!


*바보사랑ㅡ바라볼수록 보고싶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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