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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 아래서

손주와 호캉스를 1.(고성)

by 바다나무

큰딸의 생일에 초대를 받았다. 초대한 장소를 네비로 찍어보니 4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연휴 끝이라 차량이 밀리지는 않지만 멀긴 멀다. 하만 멀어도 가야 한다. 딸의 초대보다 준이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3시에 호텔 체크인이라고 하니 그 시간까지 맞추어 가면 된다. 몸도 마음도 바쁘다. 주말을 이용해 골농장도 다녀와야 했다. 다소 바쁘긴 한데 망중한이라고 했던가. 그래, 쉬어가 보자.


딸의 생일과 노동절 연휴를 끼고 준이가족이 고성으로 여행을 갔다. 마침 준이도 어린이집 공사로 인해 일주일 동안 휴원이라 겸사겸사 나들이길에 오른 듯했다. 강릉을 거쳐 이미 2박 3일에 거쳐 강원도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내일부터는 사위가 다시 삶의 전선에 나가야겠기에 남은 3박 4일은 우리와 함께 여행을 할 계획이다. 일종의 바통터치다.


숙소에 도착하니 연휴가 끝났음에도 주차장이 가득 찼다. 하긴 울산바위가 보이는 방을 선점받으려고 두 시간 전에 갔음에도 배정받지 못했다 딸은 아쉬워했다. 연휴와는 상관없이 투숙객이 많다. 대신 초록색 골프장이 보인다. 이 정도 뷰면 나쁘지 않다. 방 3개에 화장실 3개다. 부모님과 결혼한 자식들과 함께하기 좋은 패밀리 룸이다. 실내에 풀장도 있다. 모까지 초대했으나 요즘 바빠 불참이다.


언제부턴가 호캉스 문화가 삶 속에 들어왔다. 아마 코로나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외를 나갈 수 없게 되자 국내의 럭셔리한 호텔에서 편안한 휴가를 즐기고자 한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있을수록 실내 온수풀이 있는 호텔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호캉스가 많이 일반화되어 있다. 새로운 화생활의 변화다.


할아버지를 보자 준이가 덥석 안긴다. 투자대비 인기는 할아버지가 늘 우위다. 그래도 퍼즐 맞추기나 동화책은 내게 가져와 놀아 달라고 한다. 어떤 상황이든 귀엽고 예쁘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자고 한다. 울산바위가 내려다 뵈는 잔디밭을 뛰어다니며 비눗방울을 쏘아 올린다. 투명한 비눗방울에 찬란한 햇살이 더해져 무지갯빛을 발한다. 이내 사그라드는 것이 아쉬운 듯 연발탄을 쏘아 올린다. 가족모두 잡으려 뛰어다니자 준이가 세상이 다 내 것 인양 좋아라 한다. 그래 저 나이에 안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한참을 함께 놀다 보니 모두 배가 고프다고 한다. 황태 덕장으로 유명한 용대리의 황태 맛집으로 갔다. 젓갈과

식혜로 버무린 짭짜롬한 음식이 별미다. 오는 길에는 숙소의 10층에 있는 카페에서 생일파티를 했다. 울산바위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은 뷰맛집 카페이다. 간단한 케이크 자르기로 축하하자 딸은 슬며시 케이크를 내게로 밀어놓는다. 오늘은 엄마가 저를 낳느라 고생한 날이라며.


큰딸을 낳을 때는 입덧이 심했다. 시골에 근무하던 터라 시내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출근도중 속이 매스꺼워 도중에 내리려 하여도 등교하는 학생들이 많아 비집고 내릴 수가 없었다. 참느라고 입을 틀어다시피 하며 얼굴이 노랗게 사색이 된 적도 있다. 때론 참지 못하여 내렸다가 숨을 고르고 택시를 타고 출근한 적도 많았다. 아보니 참 힘든 시간이었다. 이젠 이 마저 추억이 되었고 그 딸의 아들을 보는 즐거움에 삶이 행복하다.


늦은 시간 온수풀에서 가족끼리 시간을 즐기라고 하고 우리는 속초 야시장에 갔다. 불야성을 이룬 재래시장은 갖은 먹거리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만석닭강정, 김밥, 감자전으로 야식을 준비해 와 호텔의 밤시간을 즐겼다. 어둠이 울산바위를 잠식하고 현란한 숙소의 불빛만이 밤을 지킨다. 다음날 준이가 늦잠을 자길래 우리는 근교에 있는 금강산 화암사에 아침 산책을 갔다.


아침산책길의 풋풋한 풀내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조용한 경내가 고즈넉하다. 들리는 새소리, 계곡 물소리, 웅장한 수바위가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화암사는 금강산 줄기에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 고성은 금강산을 가면서 지나갔었다. 20여 년 전 한때 북한을 개방했던 시절이 있었다. 현대 정주영 회장님의 소떼방북과 관련한 금강산 개발 관련시절이었다.


지금은 단절되었지만, 한 번은 아이들과 가족여행으로 만물상 쪽으로 관광을 하고, 2년 후에는 형님들을 모시고 구룡폭포 쪽으로 관광을 하였다. 늦가을에 간 금강산은 올라갈 때는 예쁜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는데 내려올 때 하얀 눈이 갑자기 내리기 시작하였다. 내려온 산길을 뒤돌아보니 크고 작은 봉우리마다 (일만 이천봉) 하얀 눈이 쌓인 그 설경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사시사철 금강산 이름을 달리한 이유를 알것 같다. 그때 가보지 않았더라면 금강산은 책에서만 마주했을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졌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갈 수 없는 나라. 준이세대에는 갈 수 있길 기도해 본다. 미륵불로 올라가는 비탈길을 올라갔다. 최근 축조된 마니차가 성불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마니차는 티베트불교에서 수행할 때 쓰는 긴 원통형 경전이다. 마니차를 돌리면 경전을 돌리는 것과 같다 하여 글을 읽지 못하는 신도들을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심스레 마니차를 돌리여 통일을 기원해 본다.


준이가 일어날 시간이 된 듯하여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와 함께 동화책을 읽다가 할아버지를 반긴다. 어디 갔다 왔느냐고. 이젠 제법 문장으로 말을 한다. 잠시 할아버지와 온수풀에서 물총놀이를 하다 체크아웃을 하고 다른 즐거움이 있는 호캉스를 위해 그곳을 나왔다. 오래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길 바란다


*고성 소노문 펠리체. 용대리 황태식당. 더 엠브로시아 카페. 속초 중앙시장. 금강산 화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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