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서 양양으로 내려왔다. 가는 도중 시나브로 알려진 토면 맛집에 들렀다. 토속적인 꽃들로 정원을 꾸며놓은 일반가정집을 개조한 식당이다. 혹시 유아용 의자가 없으면 어쩌나 했더니 다행히 구비되어 있었다. 요즘은 카페나 식당에는 웬만하면 의자가 준비되어 있어 너무 다행이다. 토면은 100프로 메밀이고, 막국수는 약간의 밀이 섞였다고 한다. 기름장에 비벼 먹는 맛이 독특하며 맛깔나다.
식사를 하고 설악 자생식물원에 갔다. 여러 가지 화려한 꽃들로 정원이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고 유아차가 갈 수 있도록 포장이 잘되어 있다. 준이가 나비도 관찰하고, 먹이를 물고 가는 개미를 신기한 듯 쳐다본다. 눈에 보이는 사물마다 기억에 입력한다. 어릴 때 많이 보여준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터라 부모들은 어렸을 때 많은 경험을 시켜 주려한다. 우리 딸도 예외는 아니다.
한바탕 뛰어논 탓인지 차에 타니 잠이 들었다. 우리는 막간을 이용해 예쁜 바다정원 카페에 들렀다. 준이와 엄마는 바다를 바라보며 차에서 음악을 듣고 쉬겠다고 한다. 넓은 바다를 앞에 두고 꾸며진 예쁜 정원과 파라솔 카페. 많은 사람들이 바다와 커피에 취해있었다. 대규모의 야외 카페다. 바다만으로도 멋진데 꽃까지 어우러져 있으니 금상첨화다. 한 바퀴 둘러보고 테이크 아웃을 해서 숙소로 드라이브하면서여유를 즐겨본다.
오늘의 숙소는 지난번 여행 시 카페에서 커피만 마시고 가면서 다음에 준이랑 같이 오기로 마음먹었던 호텔이다. 바다뷰가 보이는. 짐을 숙소에 가져다 두고 바닷가로 나왔다. 밀려오는 파도를 따라 준이가 할아버지와 장난을 한다. 파도에 밀려 없어지는 발자국이 신기한가 보다. 재미에 빠져 바다에서 들어오려 하지 않는다. 그래, 자연만큼 크고 재미있는 놀잇감이 어디 있으랴. 다행이다. 건강하게 잘 뛰어놀아서.
밖에 나가지 않을 경우는 책을 읽거나 퍼즐놀이를 한다.
아니면 온수풀에서 수영을 하고. 이것이 호캉스에서 준이와 할 수 있는 일들이다. 우리는 짬짬이 준이가 잘 때 주변을 산책한다. 먼저 다녀보고 유아차가 갈 수 있는 길이면 준이와 함께한다. 할아버지가 어린이날 선물로 사준 물총을 이번여행에서는 잘 활용했다. 풀장에서도 바닷가에서도.
지난가을 딸이 서울의 B호텔을 예약하여 주며 호캉스를 즐기라 한 적이 있었다. 커다란 풀장이 있고 남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예약해 놓은 마사지와 식사는 제공받았지만 나머지 시간들은 숙소에 있는 게 답답했다. 음식도 주문해서 방에서 먹으라고 당부했건만 우리는 숙소밖으로 나왔다. 남산을 가고 장충동 족발을 먹으러 갔다. 우리 나이에 호텔이라는 것이 잠을 자기 위한 공간으로 잠시의 편안함만 있으면 됐지 그 이상은 아니었다.
이번여행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하는 호캉스!",라는 의미가 붙여진 여행이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해줄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여행이었다. 안 해 본 것이 많다거나, 해보고 싶은 것에 욕심을 내기보다는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에 추억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조식뷔페를 먹고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하며 바닷가의 추억을 마음에 담았다. 넓은 바다 앞에 서 있는 조그마한 준이가 언젠가 저 넓고 푸른 바다를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몸과 마음이 모두 풍성해지는 넉넉함이 있는 아이로 자라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