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인(慧人)

by 낭만천사 유광영


요즘 혜인(慧人)이라는 말이 새롭게 쓰이고 있다. 대한노인회에서 발생하는 신문도 ‘혜인시대(慧人時代)’이다. “늙었다는 의미의 노인(老人)이라고 부르는 것보다 지혜로운 어른이라는 의미를 지닌 ‘혜인(慧人)’이라고 바꿔서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하자”한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의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혜인이라는 말은 뜻도 좋고 발음하기도 편해서 일단 거부감이 없다. 아직 익숙하지는 않지만 노인에서 어르신, 어르신에서 혜인으로 변화하는 움직임이 바람직해 보인다. ‘시니어’라든가 ‘실버’라는 영어식 표현에 비해 깊은 뜻이 있지 않은가?



주전자의 물줄기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거침없이 흐르는 계곡의 물줄기가 필요하다. 축적된 체험과 지식은 현재라는 수레바퀴를 돌리는 힘이다. 그 힘에 의존하지 않고 현재를 살아가기는 어렵다. 땅에 발을 딛지 않고 사는 것과 같다.


그러나 쌓인 관념의 덩어리는 갈수록 타성이 커진다. 그 커진 관성으로 나이가 들면서 프레임에 의한 행동이 많아진다. 그러니 나이가 들어 경험이 많아지고 지식이 늘어난다고 곧 혜인(慧人)이 되는 것은 아니다.


축적된 앎의 덩어리가 현재의 투명함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 과거에 빨려들지 않고 미래에 기울어지지 않는 통찰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짊어진 무게가 많으면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 체험과 지식의 힘을 무시하지 않지만, 틀에서 자유로워지려면 때로는 그것을 버릴 수 있어야 하다.


그러므로 혜인(慧人)은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노자는 “도”를 “도”라고 하면 “도”가 아니라고 하였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카르페 디엠, 번뇌를 벗어나려면 현재에 집중하라고 한다. 오로지 이 순간만 즐긴다면 불안과 고민이 들어올 틈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현재에만 머물러 산다면 갓난 아기나 동물과 다를 게 없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짝짓기 때가 되면 짝짓기 하는 동물은 오직 현재에만 존재하니 번뇌가 없다.


혜인(慧人)은 단순히 카르페 디엠이 아니다. 과거의 힘과 미래의 방향을 동시에 알아차리면서 현재를 숨 쉬는 사람이다. 깨어있는 마음이다. 붓다는 연꽃 한 송이 들어 보임으로 이 알아차림의 지혜를 전했다.

어린이의 미소를 보면 순수하고 행복해 보인다. 어른이 그런 미소를 보인다면 때로 거룩해 보인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언제나 그런 모습이라면 정신 빠진 사람이거나 모자란 사람 취급받기 쉽다.


혜인(慧人)은 노인의 경륜과 어린이의 순수함을 동시에 지닌 사람이 아닐까? 그 알 수 없는 깊이에 외경(畏敬)스러워하면서도 언제나 천진하게 다가올 수 사람. 그렇지만 결국 모든 걸 의지하고 싶은 사람.


예수 그리스도는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혜인(慧人)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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