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시간의 즐거움

by 낭만천사 유광영


나에게 출근 시간은 진정한 나를 찾고 즐기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있다. 요즘 서울 답십리까지 자동차로 출근하면서 맛보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


체증 구간인 가든파이브 앞을 지나면 까마귀가 가로등에 무리지어 앉아 있는 수서 IC 근처에 도달한다. 여기에서부터 동부간선도로의 차량 흐름에 다소 숨통이 터진다. 난간 너머로 굽이치는 탄천의 물빛과 둔치의 푸른 덤불 숲이 짜증나는 교통상황을 잠시 잊게 한다. 코엑스 트레이드 타워가 10시 방향으로 나타날 때 반대편 쪽에는 어느새 한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직선구간인 청담대교에서는 전방에서 잠시 시야를 돌려 한강을 바라보는 모험을 시도한다. 구름 사이로 내 비낀 맑은 햇살이 물고기 비늘같이 물결에 반사된다. 오른편에 제2롯데월드가 팽이의 심지처럼 솟아 있다. 멈춘 듯한 한강 하류의 흐름은 봄날 졸린 고양이처럼 편안해 보인다. 강물을 가르며 곡선으로 달리는 모터보트 위로 갈매기의 날갯짓이 느긋하다. 어머니 자궁 안에 떠 있는 태아의 포근함 같다.


맑은 날에는 정면에 북한산과 도봉산이 꽤 먼 거리인데도 눈 앞에 또렷이 잡힌다. 흐린 날에는 서울 숲 근처의 고층아파트가 뿌연 안개 속에 신비스런 성채처럼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신화 속 인물들이 걸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비오는 날 강변북로 아스팔트 위로 튀어 오르는 빗방울이 구슬 같다. 한강 공원의 나무들은 신이 난 듯 푸르름을 더 내뿜는다.


퇴근 무렵에는 오렌지색 노을이 서울 타워를 넘어 강물을 따라 몇 겹씩 붓질을 한다. 주황색 절정이 어느새 썰물처럼 빠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켜질 때, 다리 교각의 조명은 길게 누운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인다. 강물에 반사되는 불빛과 밤하늘 별의 반짝임이 연인처럼 서로 손짓한다.


이렇게 다양한 한강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매일 느끼는 일은 출퇴근 시간의 큰 즐거움이다. 꽉 막힌 도시에서 한강의 탁 트인 모습은 가슴을 시원하게 하는 오아시스이다.


seoul-4745489_960_720.jpg



방해받지 않고 차분하게 클래식 전문 방송을 듣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클래식 음악을 주기적으로 감상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에 시작되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클래식을 가까이하지 못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알게 된 지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접근하게 되었다.


넷서핑을 통해 조금씩 배경지식을 더하고 아침 출근 시간에 이재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출발 에프엠과 함께”에서의 곡 설명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클래식 음악 평론가가 쓴 책을 몇 권 들여다보았다. 적어도 한 악장이 끝날 때까지 끊이지 않고 들어야 제대로 감상하는데 출퇴근 혼자 운전하는 시간이 딱 적절하다. 조금씩 귀가 틔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즐겁다.


내가 즐겨 듣는 프로그램은 출근시 KBS제1에프엠의 “출발 에프엠과 함께”와 퇴근시에 듣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다. 조금 늦게 퇴근하는 날에는 “에프엠 실황음악”을 듣는다. 아침에는 클래식 위주로, 저녁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 듣게 된다. 운전하는 동안 방해받지 않고 차분하게 음악을 듣는 즐거움은 내 마음에 깊이 있는 안정감을 더해 준다.


마지막 한 가지 즐거움은 홀로 자유롭게 여러 가지 상념을 떠올리는 일이다. 유년 시절의 동네 아이들, 그동안 만났던 인연들, 설레는 마음으로 데이트하던 순간이 순서 없이 떠오른다. 해외여행 하면서 보았던 풍경들, 그곳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 현재 나의 모습과 겹치면서 삶의 의미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출출할 때 간식 먹듯이 저장된 추억을 꺼내 되새김질하는 시간이다.


편안히 혼자 운전하는 순간이니 거북했던 일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는 여유가 있다. 그때의 감정을 다시 느껴보려 하면 내 몸의 담겨있던 정서가 꿈틀댄다. 마음 아픈 순간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며온다. 화가 치밀어 올 때에는 뱃속이 경련을 일으키듯 거북해진다. 심장 박동도 빨라진다. 연극 무대에서의 감회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몸은 머리만큼 많은 생각을 하나 보다. 몸은 혀만큼 말하고 싶은게 많은가 보다. 몸의 생각을 이해하고 몸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은 치유와 깨달음에 한 발 다가서는 것 같다. 한 시간 이상 연속해서 여유롭게 상념을 펼쳐내는 일은 혼자 운전하는 출퇴근하는 시간이 아니면 어렵다. 아주 값진 자기성찰의 시간이다.


이렇게 그냥 집에 있어서는 얻기 힘든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내일도 출근 시간이 기다려진다.




작가의 이전글혜인(慧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