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가 춤추는 이유

by 낭만천사 유광영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

“투에서 한 번 더 업하고 발끝으로 서서 목을 위로 더 빼세요!”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홀 안을 꽉 채운다.

“다음은 아웃사이드 체인지, 원~에서 턴하고 투~하면서 위로!”

박선생은 커다란 눈을 부릅뜨고 자세를 바로 하라고 소리친다. 유치원생에게 예절교육을 시키듯 사뭇 진중한 모습이다. 요즘 ‘댄스 스포츠’는 사교 목적보다는 생활체육의 한 분야로 각 급 학교의 특별활동, 문화센터나 사회교육원 등에서 인기 있는 강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개인 교습소도 많이 늘어났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종교심이 지나친 부모님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무슨 퇴폐적이고 타락하는 것처럼 죄악시 여겨서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도 집에서는 감히 부르지 못하는 분위기였다. 학교 음악 시간 외에 내가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성당에서 미사 때 하는 성가와 애국가, 교가 정도였으니 춤춘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학교에서 오락 시간에 노래자랑을 할 때 나는 아는 노래도 없고 부를 줄도 몰라 뒤에서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혹시 나를 시킬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고고 춤이나 디스코 같은 것을 다 함께 출 때도 나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노래를 잘 하거나 흥겹게 춤을 잘 추어서 애들한테 인기 있고 분위기를 잘 살리는 학교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마음 한 구석에는 나도 언젠가 잘 배워서 멋지게 노래하고 춤춰봐야지 하는 욕구가 앙금처럼 깔려있다. 그러나 혼자 빈 방에서 친구들이 했던 춤동작을 흉내 내려 하면 갑자기 몸이 뻣뻣해지고 거북해졌다. 나는 스스로 몸치라고 생각했다.


분당 어느 동네 동장으로 근무할 때 춤에 대한 트라우마도 극복하고 남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고 싶어 용기를 내어 드디어 댄스 스포츠 학원에 찾아갔다.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 있던 일본 영화 ‘쉘 위 댄스?’의 주인공처럼 쭈삣쭈삣 학원 문을 두드릴 때만 해도 한 2~3년 하면 나도 주인공 스기야마처럼 잘 추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무도장에 가서도 잘 놀고 댄스파티에도 자신 있게 참석하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데 단체반 수업이라는 것이 학생들도 들락날락, 프로그램도 들락날락, 내가 참석하는 날도 들락날락하니 스텝 하나하나를 꼼꼼히 배우고 진도를 나가는 게 아니다. 어떤 날은 하나도 못 따라가서 그냥 허둥지둥 하다가 끝나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초보자만 와서 했던 동작을 다시 반복하는 경우도 많았다. 거기다 종목도 다양해서 이것저것 조금씩 하다보면 하나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두 번 수업에 참석해서는 실력을 키워 무도장에 춤춘다는 것이 언감생심이다.


%EC%82%AC%EB%B3%B8_-KakaoTalk_20210110_024940084.png?type=w773


제대로 잘 배우려면 자기의 수준에 맞게 개인레슨을 받으라는데 레슨비가 시간당 8만원이다. 춤을 잘 추는 사람 중에는 1년에 200회씩 개인레슨 받는 사람도 여러 명 있다. 어휴 그러면 1600만원, 애들 대학 등록금보다 더 많네··· 잘 추는 사람은 다 이유가 있구나. 돈들이고 시간들이고 운동신경도 받쳐 주니 그렇게 잘 하지. 나는 그런 경제적 여유도 없고 댄스를 잘 하는 것에 그렇게 높은 가치 수준을 부여하지도 않았다.


개인 레슨은커녕 수업에 빠지는 날도 많고 집에서 따로 연습도 안하니 지금까지도 내가 초보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파티에 가는 것도 포기하고 무도장에 가는 것도 포기해야겠다. 작년 연말 학원 파티 때 멋지게 춤추는 사람 보면 참 부러웠는데··· 지금의 나처럼 배워서는 가당치도 않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댄스에 필요한 신체 근육을 형성하는 것은 보기보다 훨씬 노력을 많이 해야 한다. 왈츠의 경우 발레리나처럼 발끝으로 서서 균형을 유지하고 안정적으로 회전하는 동작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발목의 힘이 엄청 좋아야 한다. 흔들리지 않는 자세를 위해서는 종아리와 등 근육을 키워야 하고, 상반신과 하반신을 반대 방향으로 따로 움직이려면 유연한 허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평소에 꾸준한 근육운동을 하고 댄스학원에서는 리듬에 맞춰 동작을 연결하는 연습에 집중해야 하지만 내가 그만한 노력을 쏟아 붇기는 쉽지 않다. 그러면서 내가 춤을 잘 추기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그냥 리듬에 맞춰 발만 떼는 정도에서 만족해야겠다. 그래도 운동은 되니까··· 이렇게 스스로 자위하면서도 정말 춤을 잘 추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그런데 춤 잘 추는 것이 연습과 레슨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댄스 수업시간에 활기차게 몸을 쭉 뻗거나 약간이라도 섹시하다고 느껴지는 동작을 하려고 하면 자꾸 몸이 굳고 어색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동작조차도 나는 감각신경이 마비된 사람처럼 뻣뻣해지고 불안해진다. 리듬에 따라 몸을 흥겹게 움직이는 것은 퇴폐적이라는 관념이 오래도록 퇴적되어 콘크리트 같은 무의식 덩어리를 만들었나 보다. 무엇인가 나도 모르게 몸의 동작을 거부하는 느낌이다.


몸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인식하려고 해도 무감각 상태에서 자동적으로 그냥 휙 하고 한 묶음처럼 지나간다. 그러니 잘못된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 체감하지 못한다. 선생님의 동작을 어림잡아 짐작하고 비슷하게 따라 하지만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린다. 그러니 잘못된 동작의 교정이 어려워진다. 몸의 근육 세포가 나에게 할 말이 있어 자꾸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것 같았다. 그 동작과 유사한 자세를 형성한 시기의 정서를 몸은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동작과 자세는 몸이 표현하는 언어라고 했나? 나는 선생님의 동작을 단순 반복하는 것 보다 우선 나의 몸과 대화를 통해 내가 하는 춤동작의 당위성을 설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를 지켜주느라 몸이 참 힘들었구나! 그래도 춤이 즐거울 때가 있지? 춤을 추는 것은 퇴폐적이 아니고 건전한 사회체육이며 아름다운 신체활동을 통한 정서표현이라는 것을 이제 알겠지? 몸에 무리가 안가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건전한 운동이니까 거부감이나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어! 긴장할 필요도 없어! 자연이 나에게 부여한 에너지를 물 흐르듯 표현하는 거야!” 경직된 정서를 떠받치느라고 힘들었던 몸의 노고를 인정해 주고 다독거렸다.


‘몸은 만져볼 수 있는 영혼’이라고 하지 않던가? 몸과의 소통을 그동안 너무 무시했나보다. 이제 나는 댄스를 잘 추어야겠다는 강박적 허영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춤동작을 보여주려고 틀에 맞춰 동작을 다듬는 것도 좋지만 내 몸이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내 영혼과 몸이 손잡고 흥을 느낀다면 춤은 자연적으로 잘 추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개인레슨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내 몸과 영혼의 자유를 위해 동작에 갇힌 감성을 풀어주고 싶다. 그래서 느긋한 여유를 가지고 춤추려 한다. 그러고 보면 춤을 추는 것도 글을 쓰는 것처럼 자기탐구이고 상처를 고치는 치유가 아닌가 싶다. 오늘도 나는 도를 닦는 마음으로 댄스학원에 간다. 나의 건강하고 소중한 몸과의 소통을 위해서···





작가의 이전글사연이 맴도는 여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