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이 맴도는 여울목

by 낭만천사 유광영


나는 서울 근교의 큰 하천이 있는 곳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장마 때 아이들이 학교에 가다가 가끔 급류에 떠내려가는 모습도 보았다. 한 줄기 물길이 갈라져 바위 옆을 흐르다가 다른 물 무리와 섞이면서 소용돌이치는 여울목은 내가 자주 찾는 곳이었다. 물살이 잔잔하게 돌아가는 그곳에서는 언제나 물비린내가 짙게 배어나왔다.


여름날 오후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기를 재촉할 때 하천에서 멱을 감다가 바위 위에 앉아 나뭇가지와 꽃잎들이 여울목에서 맴도는 모습을 바라보며 젖은 몸을 햇볕에 말리곤 했다. 오랜만에 만난 물줄기는 서로 엉켜서 같은 곳을 한참 맴돌다가 못내 아쉬운 듯 여울목을 떠났다. 나뭇잎 위에 함께 떠내려 온 개미가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불쌍해서 나는 막대기로 건져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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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게 여울목은 물줄기가 만나고 떠내려 온 나뭇가지와 꽃잎들이 만나는 곳, 함께 실려 온 벌레들이 만나는 곳으로 기억되었다. 여울목에서 만난 물길은 그동안의 사연을 서로 섞으면서 빙글빙글 돌다가 강 아래로 서서히 사라져 갔다. 함께 떠내려가지 못한 나뭇가지는 바위틈에 끼여 물살을 붙잡으려 하지만 이제 인연이 다했나보다. 꺼멓게 퇴색된 유기물의 형체로 남아 물벌레의 서식지가 되어간다.


요즘에 나는 분당 대광사 카페 ‘가비지안’을 자주 찾는다. 산으로 둘러싸여 공기가 맑고 내가 전에 공부한 인연이 있어 언제 와도 마음이 편안하다. 연말쯤 수필집 발간을 목표로 글도 쓰고 내년도에 출판할 자기개발서에 대한 구상을 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산 속의 사찰에서 운영하는 카페라 오후 6시 즈음에 마감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평소와 같이 카페에 들렀다. 자주 앉던 구석의 한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점심 시간이 지나자 근방에 사는 듯한 50대 주부들 한 떼가 몰려왔다. 주기적으로 만나서 점심 식사를 하고 2차로 카페에 와서 대화를 나누며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 모양이다. 타고 온 고급 외제차와 들고 있는 명품 가방이며 세련된 디자이너 브랜드의 옷차림 등 행색을 보면 꽤 여유 있는 집 아낙들인 것 같다.


아이들도 다 컸을 테니 집안에 크게 신경 쓸 일 없고 취미생활 하다가 이렇게 모여서 서로 수다 떨며 그들만의 동질성을 재확인하는 것이 또 하나의 낙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정감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의 일상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의식인 것 같다. 한 번 자리에 앉았다 하면 서너 시간 수다 떠는 것이 예사다. 나는 별 관심 없이 혼자 책을 읽지만 간간히 그녀들의 대화가 귓전에 들어온다.


목사님, 집사님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불교신자 뿐만 아니라 개신교 신자들도 꽤 있고, 신부님이며 성당에 관한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골프모임, 교회모임, 절의 합창단 모임, 같은 아파트 단지 모임 등 모임에 따라 대화 내용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주변사람에 대한 뒷담화가 주를 이룬다. 자식 얘기, 남편 얘기, 재테크 얘기, 아파트 입주자들 얘기가 많고 정치인과 연예인, 요즘 유행하는 TV드라마에 관한 얘기도 가끔씩 들려온다.


책 한 권을 읽고 각자의 소감과 의견을 나누는 독서 모임도 간혹 눈에 띈다. 이쪽 부류는 연령대가 비교적 젊어 보인다. 꽤 오래 모임을 이어 왔는지 이야기 속에 언급되는 책들이 다양하다. 학습활동을 하는 그룹은 여성이 남성보다 많은 건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수다만 떠는 무리보다 독서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왠지 교양이 있고 인상이 좋아 보인다. 읽는 책 종류가 궁금해 귀를 곤두세우고 엿듣기도 했다.


소득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재산 관리도 주요 얘깃거리 중 하나이다. 기한이 되면 상가의 세입자를 내보내고 임대료 올려서 새로 세를 놓으면 좋겠다는 얘기는 여기서도 흔하게 들리는 얘기다. 어느 집에서는 재산을 현찰로 바꾸어 은행 금고에 쌓아놓고 필요한 만큼만 예금으로 예치한다고 한다. 예금으로 다 넣어봐야 이자도 얼만 안 되고 재산이 노출되어 자금추적이나 세금부담만 늘어나서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한다고 한다. 한 여자는 자기네도 은행 금고를 이용하지만 그 금고에는 현찰이 아니고 특허증, 채권, 부동산 관련 서류, 귀금속 등을 맡긴다고 한다. 우리 집 사정과 비교하면 딴 세상 얘기하는 것 같다.


며느리 얘기, 남편 얘기도 자주 회자된다. 누구누구의 남편은 사업이 안 되어서 부동산을 일부 팔아서 5억을 갖다 메꾸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내연녀에게 갖다 바친 거라고 한다. 어쩌면 그렇게 되도록 모를 수 있느냐면서 참 멍청하다고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한다.


그러면서 남자는 어떻게 다루는 것이 효과적인가를 놓고 각자 처방을 내리는데, 남자를 기분 좋게 하면서 혼을 썩 빼놓고 자기 이득을 취한다는 것이다. 남자인 내가 들어도 남자를 기분 좋게 할 만한 얘기가 많다. 나는 못들은 척 하면서 마음속으로는 여자들의 저런 잔꾀에 속아 넘어 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카페에 앉아 있다 보면 여유 있는 집 아낙들이 모여서 각자 주변 이야기를 나누는 이곳이 마치 여인들의 사연이 맴도는 여울목처럼 느껴진다. 한 호흡 가다듬으며 쌓인 스트레스도 뱉어내고, 남의 이야기에 맞장구도 치고 내가 안전한 존재임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사연의 여울목이다. 물길이 만나 흐름을 조절하고 강으로 흘러가듯이 여인들은 카페에서 사연을 조절하고 삶의 강에 다시 마음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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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목은 흐르는 물의 정화작용을 한다. 맴돌면서 모래는 가라앉히고 부유물은 바윗돌 틈에 거르고 맑은 물만 강 따라 흘려보낸다. 우리네 여인들이 히스테리를 덜 부리는 것도 어쩌면 저 사연의 여울목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녀들은 시끄런 수다 속에 거를 건 거르고, 가라앉힐 건 가라앉히고 건강한 마음만 가지고 가정으로 돌아간다. 사연의 여울목은 능력 있는 정신과 의사이다. 내 삶의 여울목은 글로 써보는 수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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