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1.5인칭

by 낭만천사 유광영

나는 며칠 전, 눈 밑의 지방을 제거하는 하안검 수술과 잡티제거 시술(IPL)을 받았다. 애들도 아직 어리고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도록 외모를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아내의 강력한 권유가 있었다.

눈 주위와 얼굴에 부분마취를 하고 수술대에 누웠다. 마취를 하긴 했지만 메스가 눈가를 지나갈 때 조금 아팠다. 혹시 의사가 실수로 눈을 찌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일부러 태연한 척 하지만 뱃속의 장이 뒤틀리는 듯 하고 몸이 굳어진다. 누운 채로 발목을 폈다 구부렸다 하며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 잡티를 제거하는 레이저로 살갗을 태워 벗겨낼 때 역겨운 냄새가 나면서 얼굴이 따끔하다. 시간이 왜 이리 더디 가는지···· 꼼짝 않고 누워있는 동안 팔다리에는 자꾸 힘이 들어간다. 의사 선생님은 눈에 힘을 빼라고 하는데 눈동자가 뽑혀 나올 것 같은 통증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가 정말 눈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어쩔까 하는 불안과 공포가 몰려온다. 모두 마치고 회복실로 가기까지 두 시간이나 걸렸다.

눈에 붕대와 냉찜질 팩을 감고 비스듬히 상체를 세워놓은 침대에 누웠다. 진통제 주사를 맞았지만 얼굴과 눈가에는 망치로 얻어맞은 것처럼 통증으로 욱씬거린다. 몸이 추워져서 손을 더듬어 옆에 있는 모포를 끌어다 덮었다. 한참 누워있는데 조용하다. 소변이 마려우니 잠시 눈가리개를 벗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되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주위에 아무도 없나 보다. 대답이 없다. 다시 한 번 간호사를 불렀다. 그 때 누군가 조용히 내 손을 잡고 가서 알아보고 오겠다고 말한다. 아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수술 후 회복하고 쉬는데 방해가 될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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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으로 아리아리한 눈에 붕대를 감고 누워 잔여 불안을 달래고 있다가 아내의 체온을 느끼고 목소리를 들으니 모든 게 안심이 되었다. 혼자가 아니라 기댈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안도감이 아내의 따스한 손을 타고 들어왔다. 얼굴 통증과 눈에 대한 불안도 사라졌다. 아내가 옆에 있으니 뭘 걱정하랴.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화장실에서 소변을 어찌 보았는지 모르겠다.

화장실에 다녀와 침대에 누워 잠시 행복에 대해 생각해본다. 행복을 찾아···· 행복을 주는···· 이런 표현들이 심심치 않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일반적으로 행복이라는 명사는 3인칭으로 인식되나 보다. 찾는 것, 주는 것 등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지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행복은 1.5인칭라고 부르고 싶다. 절대로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외딴 섬에 혼자 살았던 로빈슨 크루소가 행복하다는 얘기는 없다. 그러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왕자처럼 둘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많이 있다. 적어도 행복해지려면 나와 네가 있어야 한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 혼자서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느님이 하와를 창조하셨다.

인간은 태어나면 엄마 품에 안겨서 젖을 먹고 자란다. 한동안 엄마와 아기는 분리되어 존재한다기 보다 밀접한 상호작용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할 수 밖에 없다. 굳이 인칭으로 나타내자면 1.5인칭이다. 내가 존재하며 너를 인지하고, 나 자신이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너와 함께 나누는 관계이다. 그러니 행복은 1인칭도, 2인칭도 아니고 내가 너로 이어지는 1.5인칭이다. 너와 내가 함께 존재하면서 교감 속에 상호작용하며 성장하는 관계이다.

두뇌를 연구하는 과학자에 의하면 인간의 뇌에는 변연계(limbic system)라는 것이 있어서 다른 사람의 정서에 공감하며 연민과 사랑을 느끼는 장치가 있다고 한다. 또한 거울세포로 상대방의 행동과 표현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보기 때문에 직접 겪어 보지 않더라고 상대방의 행동을 보고 이해하는 인지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뇌의 한 부분은 타인과 관계 맺고 교감하는 기능을 위한 것이다. 그 부분은 2인칭과 연결하고, 2인칭을 위한, 2인칭의 몫이다.

결국 인간은 구조적으로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누구와 공감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자연적으로 그렇다. 사람을 뜻하는 한자 人(사람인)자가 둘이 서로 기대는 형상인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 행복은 1.5인칭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 누구에게 1.5인칭으로 다가갔던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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