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공원에서 산책을 하려다가 두고 내린 마스크를 찾으러 자동차 문을 열었다. 어깨 너머로 비스듬히 내리쬐는 햇살에 계란 모양의 회색빛 물체가 운전석 아래에서 삐죽 한쪽을 드러냈다. “어, 이게 뭐지?” 고개를 기울여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오, 세상에나! 지난 추석 때 아버지 묘소에 성묘하러 가서 잃어버린 블루투스 이어폰이 여기 있다니….”
몇 시간 동안 유튜브에서 제품 리뷰와 사용기를 두루 살펴보고, 항목별 스펙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를 꼼꼼히 비교하여 구입한 이어폰이었다. 성능은 물론 가성비가 훌륭하고 착용감도 좋아, 결제 버튼을 클릭하면서도 보물찾기에서 횡재한 듯 흐뭇하였다. 20만원 가까운 가격과 인터넷을 서핑한 서너 시간의 눈길이 담겨 있었다. 수십 번 마우스를 클릭한 손가락의 땀이 배어 있는 이어폰이다. 잘 어울리는 액세서리처럼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애용했다.
그런 이어폰을 잃어버린 날 심장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가슴이 아려왔다. 애착이 깊었던 만큼 사라졌을 때의 허탈감에 마음이 아팠다. 분실 시간을 거슬러서 방문했던 카페와 성묘한 공동묘지를 서둘러 되돌아가 찾아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제품 설명서와 여유분의 이어팁을 담은 케이스만 책장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웬일인지 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같은 것을 사면 다시 사용할 요량이었을까, 아니면 꼭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지 않고 불편하지만 전에 쓰던 유선 이어폰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7개월이 지나 잃어버린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무렵 뜻밖에도 포기했던 이어폰이 온전한 상태로 자동차 안에서 발견된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를 몇 번 청소했을 터인데 왜 못 보았는지 의아했다. 아마 좌석 아래 한 가운데로 굴러 들어가서 쉽게 눈에 띄지 않았나 보다. 그런데 끊어지지 않은 인연의 한 줄기를 타고 다시 나타났다. 돌아온 탕자처럼 새로운 설렘에 젖게 한다.
지금 새로 이어폰을 산다고 해도 이만큼 기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좋은 제품을 준다고 해도 이것과 바꾸고 싶지 않다. 아려왔던 심장의 한 조각을 되살리고, 희망이 살아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추억과 함께한 손때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허탈감의 매듭은 풀어져 돌아온 탕자를 환영하는 깃발이 되었다. 이제 이어폰은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 다시 찾은 이어폰이 아름답다. 병 주고 약 준 셈이지만 그냥 병이 아니다. 치유가 이루어진 병은 면역력을 선물한다. 돌아온 이어폰은 내게 실망에 대한 면역력을 주었다. 행운의 여신이 저만치서 언제든지 뒤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하였다. 소소한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도록 마음을 담금질하였다.
돌아온 이어폰이 또 언제 내 곁을 떠날지는 모른다. 내가 싫증을 느껴 버릴 수도 있다. 그때가 되더라도 성능과 가성비의 아쉬움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않으리라. 우리네 삶처럼 세상 만물은 잠시 거쳐 갈 뿐이니, 인연의 가닥이 남아 있어 함께 하는 순간이 고마울 뿐이다.
사람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인연의 뒷모습을 알 수는 없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하다. 오늘 새로 찾은 이어폰을 귀에 꽂고 새로운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소중한 사람으로 대해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