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짝 표면을 벗겨 내고 사포로 갈아 매끄럽게 다듬는다. 그 위에 시트를 새로 붙이는 아저씨 이마에 땀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마침내 무게를 버티지 못해 주룩 흘러내린다. 화장실 변기를 바닥에 고정시키고 망설임 없이 백회를 바른다. 숙달된 일손은 물 흐르듯 막힘이 없다. 각지고 거친 손등과는 달리 손끝의 움직임은 부드러운 곡선이다. 부분적인 집수리인데도 사흘이 걸린다고 한다. 발코니와 모든 방의 블라인드를 롤스크린으로 교체하고 싱크대 배수구 파이프와 붙박이장의 손잡이도 바꾸고 있다.
그라인더로 갈고 커터기로 자재를 자를 때, 전동기 소음이 크게 나서 혹시 이웃에서 항의 전화 오지 않을까 가슴을 졸였다. 어느 날인가 위층에서 기계 소리가 크게 들려와 짜증을 냈던 일이 떠오른다.
‘필요한 작업을 하느라 그러겠지.’ 하다가 계속 소음이 커지니까 짜증이 났다.
‘싫은 소리 좀 해야 하나.’ 하고 인터폰으로 손이 가다 참았었다. 그런데 오늘은 입장이 역전된 셈이다. 그래도 ‘그때 내가 참았으니 오늘은 이웃이 참아 주겠지.’ 하는 생각에 조금 안심했다. 보험에 가입한 기분이다.
퇴색하고 오염되고 망가진 것도 오래되니 익숙해졌다. 좀 지저분한 문짝도 정이 들었다. 딱히 손을 대지 않아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 가끔 손님 올 때 좀 창피하기는 하지만, 애들 많은 집이 다 그렇다는 핑계로 방치한 지 꽤 오래다. 어느새 타성에 푹 젖었다.
그러나 변화는 오기 마련이다. 어느 날부터 낡고 지저분하고 너덜거리는 것들이 눈에 거슬렸다. 깨끗하지 못한 환경이 나를 깔끔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번 의식에 떠오르니 볼 때마다 거북하다. 드디어 집수리 날짜를 잡았다.
작업하시는 분들에게 지장이 없도록 벽에 붙은 물건들을 들어내었다. 수북하게 쌓인 먼지이며 몇 장의 지폐, 동전, 볼펜, 퇴색된 고지서 같은 잡동사니들이 숨바꼭질하다가 술래에게 들킨 것 같다.
그것들을 걷어 낼 때 밭에서 잡초를 뽑아내는 것 같이 마음이 후련해진다.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쭉 빨아들일 때에는 야릇한 쾌감마저 든다. 덩어리진 잿빛 먼지 뭉치나 기다란 머리카락이 멀찌감치 줄을 지어 끌려와 흡입구로 쏙 하고 사라지는 순간 적군을 한 방에 쓸어 낸 장군이라도 된 느낌이다. 그래서 집안일 중에서 청소기를 돌리는 것은 양보하지 않고 내가 한다. 오늘도 공사 잔재물을 치우고 먼지를 떨어내는 일을 맡았다.
욕실과 싱크대 위의 환풍기 커버를 뜯어내고 잔뜩 붙어 있던 먼지 덩어리도 탁탁 털어 냈다. 솔로 박박 문지른 다음 물로 싹싹 씻었다. 기름기가 붙어 있어 잘 씻기지 않아 비누칠을 했다. 환풍기가 돌아가면서 공기를 빨아들일 때 흔들거리던 먼지 덩어리가 눈에 거슬렸는데 오늘 이놈들을 제대로 손보았다. 콧구멍에서 간질거리던 잔코딱지를 없앤 것처럼 시원하다. 적군을 궤멸시킨 장수의 기분이다.
오늘따라 청소하는 일이 왜 이리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병정놀이 기분이다. 먼지 낀 데가 또 없나 둘러보다가 선풍기 날개에 뽀얗게 붙어 있는 먼지가 눈에 들어온다. 요놈들도 깨끗이 닦아 내고 내친김에 에어컨 필터도 청소해야겠다. 그러고 보니 진공청소기 필터와 소파 밑의 먼지를 털어 낸 지도 꽤 되었지. 눈앞에서 먼지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니 나의 잔걱정도 없어지는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짜증 나는 상황이 많은데 이렇게 일이 재미있다는 것이 무슨 축복인가?
수리한 것은 몇 가지 안 되어도 집 안 분위기는 확 달라졌다. 밝은색으로 훤해진 문짝과 붙박이장, 말쑥해진 창문 롤스크린, 교체된 장식장의 손잡이, 깨끗해진 욕실 등은 금방 눈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숨어 있던 먼지를 소탕했다는 이 뿌듯함을 누가 알랴?
보이지 않는 곳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건강에만 좋은 것이 아니다. 자부심의 물결을 일으켜 자잘한 속상함을 쓸어 낸다. 봄볕에 눈 녹듯이 넉넉해진 여유로 속 좁은 갈등을 녹여 버린다.
집수리에는 자재와 인력이 필요하지만, 뿌듯한 마음에는 병정놀이를 담는 해맑은 눈이 필요하다.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적군이 있어야 한다. 적군을 쫓아서 깨끗하게 처리할 때 분출되는 도파민은 우울함을 쫓아내는 파수꾼이다. 장군으로서의 몫을 다한 듯 뿌듯함은 병정놀이를 즐기는 맑은 눈에서 나왔다. 눈에 보이는 집수리를 하면서 보이지 않는 마음까지 청소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생활에 게을러진 것 같다. 읽고 쓰고 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아마추어 연극 대회를 앞두고 대본도 외워야 하고 동영상 강의도 더 들어야 하는데…. 물소리 따라 걷던 탄천 길 산책도 한동안 등한시했다. 블로그와 유튜브에 글과 영상을 포스팅하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돌아보면 특별히 정리된 콘텐츠가 없다.
유튜브 영상을 살펴보면 세상에 잘난 사람들이 참 많다. 나는 익숙하게 다루는 악기도 없고, 딱 부러지게 잘하는 전문 분야가 없어 마음이 위축된다. 게으른 행동, 위축된 마음, 떨어진 자신감을 무찔러야 한다. 병정놀이를 또 해야 하나? 삶의 활력은 병정놀이에서 나온다. 집수리하면서 먼지를 소탕하는 병정놀이처럼 세상에 대한 도전은 새로운 병정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