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모두가 아는 것처럼 네팔과 중국 국경 사이에 있는 해발 8848m인 에베레스트산이다. 1953년 5월 29일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가 사상 최초로 등정에 성공하였으며, 한국인으로서는 1977년 9월 15일에 오른 고상돈이 최초이다. 2010년까지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오른 사람은 모두 5,060명에 달한다. 2007년 한 해에 636명, 2010년에는 512명이 한꺼번에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과거에는 등반에 따른 베이스캠프를 2000미터 대에 설치했었는데 2004년부터 5300미터 이상에도 베이스캠프 설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일단 출발 자체가 목적지에 훨씬 가까워졌기에 정상에 오르기가 수월해진 것이다.
행복에의 베이스캠프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과 현상을 행복에의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한다. 돈, 지식, 권력 등을 그렇게 여긴다. 이러한 배경을 많이 갖추고 있다면 남보다 유리한 것은 분명하다. 에베레스트 등정에 비유한다면 나는 돈과 지식, 권력은 베이스캠프가 아닌 장비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장비가 좋다면 등정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비가 좋다고 해서 모두 에베레스트를 등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돈 많은 등산가는 다 에베레스트에 올랐어야 한다.
2007년 이전에도 장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에베레스트 등정 가능성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킨 것은 장비보다는 베이스캠프의 상향 설치이었다. 6000미터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나머지 2800미터를 오르는 것이, 2000미터에 베이스 캠프를 설치하고 6800미터를 오르는 것보다 쉽다는 것은 뻔한 이치 아닌가? 그러니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돈이나, 지식, 명예, 권력 같은 장비를 갖추는 것보다는 베이스캠프를 행복 가까이 설치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오롯이 존재하여 생명의 가치를 두려움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산 속의 한 떨기 야생화와 공중을 나는 새가 그렇듯이···· 내가 두려움 없이 오롯이 존재하고 나의 존재가 세상에 가치를 더한다면 그것이 참 행복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내가 나답게 오롯이 존재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베이스캠프를 행복 가까이 설치하는 것이다. 내가 오롯이 존재한다면 행복에 가까이 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으리라.
스스로를 위축시키는 열등감과 상처를 싸고 있는 날카로운 감정, 지나친 자만과 오만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의식에 싸여 내가 평화롭지 못하거나 존재하는 것에 두려움이 있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평화롭지 못할 것이다. 이는 행복의 베이스캠프를 하향 설치하는 것이다. 오롯이 존재하는 것은 ‘차고 넘침이 없이 신으로부터 받은 생명의 신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누구를 만나든 어떤 일을 하던 마음이 평화롭다면 삶에서 헤쳐 나가야 할 나머지 부분은 가볍다. 이것은 행복의 베이스캠프를 상향 설치하는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루카 복음 18,17)는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은 오롯이 존재하여 생명의 신비를 들어내는 일이 어린이의 마음과 같다는 것을 뜻한다. 어린이와 같은 마음이란 지금 이 순간을 생생하고 치열하게 사는 마음이다.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생생하고 치열하다는 것은 순간순간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새롭게 바라보고, 순간순간에 모든 걸 다하는 것이다. 지난 일 때문에 분노하거나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지레 짐작 불안해하거나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후회, 분노, 걱정, 근심은 우리를 오롯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얽어맨다. 오롯이 존재한다면 지난 일들, 아직 오지 않은 일들이 지금의 나를 힘들게 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의 새들을 눈여겨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그것들을 먹여 주신다. 너희는 그것들보다 더 귀하지 않으냐?’(마태오 복음 6,26).
걱정과 불안은 실제로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하면서 우리가 오롯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지난 일에 대한 후회와 분노도 우리가 지금 오롯이 존재하지 못하도록 흔들어 댄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로부터 떨어진 곳에 베이스캠프를 상향 설치해야 한다.
그것은 깨어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겪었던 고통스러운 일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것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알아차리는 것이다. 길들여지지 않은 생명 본래의 빛이 드러나는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그것이 오롯이 존재하는 것이며 베이스캠프를 상향 설치하는 것이다.
어린이 마음은 사랑받고 공감하는 분위기에서 작동한다. 5월의 햇살을 맞으며 젖을 빨던 엄마의 가슴 폭이 그렇다. 첫걸음을 걷다 넘어져 뒤돌아보았을 때 미소 짓는 엄마의 눈길이 그렇다. 그래서 마음 놓고 걷는다. 넘어지는 것이 겁나지 않는다. 호기심어린 세상이 신기해 보이지만 두렵지 않다. 마음껏 두리번거린다. 그 안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면 행복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행복으로 가는 데에 장비보다는 베이스캠프가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