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과 연결

by 낭만천사 유광영

11월 중순 개최 예정인 경기도 아마추어 연극제 출연을 위해 두 달 째 연습을 하고 있다. 내가 맡은 배역은 대사가 많지 않아 금방 외우게 되었지만, 다른 배우들은 대사 외우는 것이 꽤 힘들었나보다. 이제야 대본을 거의 안 보고 연기를 하는 것 같다. 대사에 신경 쓰다 보면 동선(動線)이 흐트러지고, 동선을 따르다 보면 순간적으로 대사를 잊고 자꾸 애드립(ad lib)을 치게 된다. 적당한 애드립은 상황을 맛깔나게 보여주는 양념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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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선생님은 흐름을 갖고 가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지금 하는 동작이 이 순간에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앞의 상황에서부터 그대로 호흡이 이어져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가느다란 명주실로 배우들 사이를 서로 연결시켜 놓은 것처럼 다른 배우가 움직일 때 그 떨림이 그대로 내게 전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끊임없이 반응하라고 한다. 그렇게 상황과 분위기에 따른 호흡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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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마추어이다 보니 극 전체와 연결되지 못하고 자기 차례에 정확하게 대사를 하려고 바로 직전 배우의 연기에만 신경 쓴다. 그래서 장면의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가지 못한다. 한 호흡 끊어서 대사를 하니 자연스럽지 않다. 맞지 않는 퍼즐조각처럼 흐름에 틈이 생기니 연결이 어색하다. 프로의 경우는 대사가 조금 틀리더라도 흐름을 그대로 이어서 매끄럽게 장면을 만들어 간다.


연습이 끝나고 극단 사무실을 나설 때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인연의 끈들이 명주실처럼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을 텐데 그 끈의 떨림을 알아채지 못하고 아집을 내세우다 보면 오해와 갈등이 생기지 않을까?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모두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고 전조증상처럼 끈의 떨림으로 신호를 보냈을 터인데 그 흐름을 알아채지 못해서 상황에 적절히 연결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요즘 우리 딸아이와의 대화가 그리 원만하지 못하다. 학교 성적이라든가 친구 관계를 좀 물어봐도 제대로 얘기해 주지 않는다. ‘내가 그만큼 많이 정성을 기울이고 아낌없이 투자하였는데 아빠에게 이 정도는 솔직하게 알려줘도 되지 않나’하고 생각하니 딸의 태도가 영 못마땅하다. 무슨 비밀인양 알 것 없다는 식으로 대답할 때 참 서운하다. 그렇다고 성질을 낼 수도 없고 그냥 서글퍼진다. 어렸을 때에는 아빠에게 애교도 떨고 자주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동안 딸과의 정서적 흐름과 연결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춘기를 거치면서 내면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쳤을 텐데 마냥 어린애로만 알고 하나하나 참견하고 잔소리를 하였으니 부모와 대화하는 것이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흘러가는데 나만 그 자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흐름과 연결이 상호작용임을 무시하고 일방적인 대화를 요구했던 것이 아닌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은 또 어떤가? 각종 사회활동도 거의 중단되고 비대면 온라인 강의, 온라인 회의, 온라인 투표 등등 또 다른 흐름과 연결의 형식을 요구한다. 프로그램을 비대면으로 참여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짜증스럽다. 직접 보고 대화하고 질문하고 해야 흥이 나는데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얼굴을 보며 강의를 듣자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참여를 통해 다양한 사람과 친교를 형성하는 일도 어렵다.


얼마 전에 가천대학교 행정학과 학생들에게 지방자치에 대한 특강을 온라인으로 하면서 얼마나 어색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진땀이 난다. 아이컨택도 안되고 분위기 형성이 쉽지 않아 그냥 준비한 자료에 의지하여 허둥지둥 강의를 진행하여 당황스러웠다. 이런 상황이 예상외로 오래 지속될 것에 대비하여 혼자 녹화하며 연습을 많이 해야겠다고 절실하게 생각했다. 이미 유튜브에서는 일상화되고 있는 현상인데도 큰 관심 없이 콘텐츠를 즐기기만 했지 내가 생산자가 되려는 생각을 하지 못한 탓이다.


늦기는 했지만 멋진 모습으로 유튜브 강의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조금씩 준비하는 일은 희망과 함께 즐거움을 주었다. 스마트폰으로 대충 찍어서 업로드 할 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깔끔하고 안정된 영상을 위해서 유튜버가 요즘 많이 사용하는 웹카메라와 조명장치도 구입했다. 깨끗한 목소리도 중요하기에 괘 비싼 마이크도 갖추고 강의 슬라이드와 함께 내 모습을 카메라로 입력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설치했다. PPT를 작성하면서 이제 나도 시대의 흐름에 연결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고 스스로 자위하였다.


나는 집에서 TV를 아예 안 보는 것을 교양인의 행동처럼 생각해왔다. 대부분이 통속적인 드라마, 오락, 연예물이라 시간낭비라고 여겨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임 자리에서 누가 연속극 내용이나 요즘 유행하는 오락물의 한 대목을 얘기할 때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며칠 전에는 극단에서 연극연급을 하다가 미스터 트롯의 영탁이도 모르냐며 핀잔을 들었다.


글도 그렇지만 강의는 듣는 사람이 흥미를 느껴야 하는데 그동안 나는 너무 이론적인 내용을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역시 수강생들과의 흐름과 연결이 부족한 것 아닌가? 이 시대 사람들의 일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떻게 그들과 소통할 것인가? 이래서는 이 시대 사람들의 흐름에 연결되지 못하고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도 못쓰고 강의도 재미없다는 평을 들을 것이 뻔한 것 아닌가. 서로 연결되어 끝없이 울림을 전달하는데 나만 뻣뻣하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흐름과 연결 이것은 연극에서만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이 코로나 사태가 내게 이러한 깨달음을 주었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관심 있는 세상사의 흐름에 꾸준히 연결하여 보다 깊이 있는 통찰과 리얼한 표현으로 강의와 글쓰기에 힘을 더해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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