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처럼

by 낭만천사 유광영


어렸을 적 겨울방학 때 양평 큰 댁에 가면 윗방에 보자기를 덮어 놓은 콩나물 시루가 있었다. 콩나물 시루를 처음 본 나는 허공에 떠서 가끔씩 물만 부어 주면 자라는 콩나물이 참 신기해 보였다. 짙은 색 천으로 어둡게 덮여있는 것이 답답할 것 같아 보자기를 치우려니까 큰 어머니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어떻게 컴컴하고 흙도 없는 곳에서 저렇게 길쭉하고 노란 콩나물이 잘 자라지? 궁금했다. 나중에 식물의 발아조건과 광합성 등에 대한 지식이 생기고 나서야 콩나물 재배의 이치를 이해하게 되었다. 비료와 햇빛도 없이 콩은 물만 가지고 콩의 영양소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콩에는 없는 비타민C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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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방역조치로 생활 속 거리두기 행정명령이 내려져 많은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박혀있다.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 새로운 지식을 찾아 인터넷 강의를 듣고 내용을 정리하는 동안은 그나마 시간가는 줄 모른다. 그러나 카톡으로 대화를 해도 피부에 닿는 느낌이 없어 왠지 공허한 느낌만 든다.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 의식의 한 구석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인가?


사람들과 직접적인 접촉을 하지 못하고 어두운 방안에서 SNS, 인터넷, 유튜브를 통해서만 소통하니 흙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물만 주루룩 흘러 보내는 콩나물과 다를 것이 없다. 피부에 전해지지 못하고 그대로 스쳐가니 공허함만 메아리친다. 그 허전함에 코로나 바이러스를 원망한다. 아, 지금쯤 당초 계획했던 ○○강사로 활동할 수도 있었을 텐데···· 기약 없이 지나기만 하는 시간이 초조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시절을 어쩌겠는가? 그렇다면 콩나물처럼 되어야겠다. 어두운 시간 흘러가기만 하는 물일지라도 자기 안의 숨은 힘을 깨워 비타민 C를 만들어 내는 콩나물이 되어야겠다. 그렇다. 콩나물의 지혜를 가져야 할 때 아닌가? 언택트 시대 바깥으로 나돌지 못하니 콩나물처럼 온라인으로 자신을 적시고 내면의 세계를 글로 쓰면서 천천히 내공을 쌓아야겠다. 이런 조용한 기회가 또 어디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오정순 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요즘 왜 글을 잘 안쓰냐고, 이런 때일수록 더 써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라고 하신다. 어두운 공간에 콩나물 위로 때맞춰 떨어지는 신선한 물 같았다. 내 마음의 동굴에 메아리치며 퍼져나갔다. 콩나물 시루의 콩처럼 물이 적절한 간격으로 계속 떨어져 흘러가면 비타민 C가 만들어지고 물이 아주 조금 떨어지다 말면 콩은 썩어버리지 않겠는가? 콩나물에게 지속적인 물 흘림은 꼭 필요한 것이다.


나태해지려는 마음의 끈을 당겼다. 코로나 핑계로 게을러진다면 콩나물 시루에 물 주던 것을 중단하는 것 아닌가? 콩나물시루에 연결되는 배수관의 꼭지를 열어놓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감사하게 다가온다. 하루하루 쓰다보면 한 편의 글이 만들어지고, 차곡차곡 쌓다보면 한 권의 책이 된다고 하시며, 어쩌면 글을 쓰는 것은 삶의 의무라는 것이다. 대수롭지 않은 일상이지만 기록으로 남겨야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생각을 풍요롭게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소통의 방법은 많다. 손가락만 터치하면 수많은 콘텐츠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적실 수 있다. 떨어진 물방울에 자라나는 콩나물처럼 언택트 시대에 내면의 의식을 키우는 것은 나의 몫이다. 오늘 아침에 콩나물이 곁들여진 김치찌개를 들면서 어두운 곳에 갇혀서 생장(生長)하는 콩나물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언택트 시대는 홀로 피할 수 없으므로 견뎌내야 한다. 내면의 성장을 깨우는 좋은 기회로 삼으면 위기가 호기가 되는 셈이다. 시간은 쓰는 사람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나는 긍정의 기회로 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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