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운명을 빨아들이는 흡인력의 발동에 남녀 간의 끌림만큼 강력한 것은 없다. 몇몇 고상한 사람의 경우 인류애, 진리 탐구 또는 예술에 대한 열정 등이 이에 해당될지 모르나 일반 중생에게는 호감이 가는 남녀 사이의 끌림이야말로 운명의 사다리를 오르는 첫걸음이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그랬고 안나 카레니나도 그랬다. 괴테와 톨스토이의 창작에도 뮤즈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16년간 잡지사 LIFE의 사진 에디터인 월터의 평범한 일상에 성장과 깨어남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한 달 전에 입사한 동료 여직원 셰릴이었다. 그녀는 모험심이 있고 용감하며 창의적인 남자를 이상형으로 여긴다고 인터넷 만남 사이트 'E-하모니'에 프로필과 함께 올려놓았다. 월터는 'E-하모니'에서 셰릴에게 윙크를 보내기 위해서 운명의 사다리에 발을 디딘다.
평소에도 자주 공상을 즐기는 편이었지만 특히 셰릴을 볼 때마다 셰릴이 원하는 이상형의 남자로 변신하여 용감하고 창의적으로 행동함으로써 셰릴을 기쁘게 하는 상상에 흠뻑 빠진다. 이로 인해 잠시 멍한 시간을 보내게 되고 이를 목격한 상사는 그를 관제소의 톰아저씨라며 비아냥거린다.
사진작가 숀이 필름과 함께 월터에게 보낸 지갑에 LIFE지 회사의 모토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짝사랑 셰릴의 등장과 더불어 월터의 앞날을 예고하는 전조를 보여준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이사하는 어머니의 집에서 발견한 백팩과 여행 수첩 또한 월터의 모험을 암시하는 복선이다. 극작가 안톤 체홉은 이렇게 말했다. “1막에서 총이 나오면 2막에서는 방아쇠를 당겨야 한다.”
셰릴을 마음에 담는 순간 특별한 모험은 시작되고 그는 새로운 인간으로 변화되어 간다. 평소 뉴욕, 뉴저지를 벗어나지 않던 월터가 25번째 필름을 찾기 위해 그린랜드, 아이스랜드와 아프카니스탄까지 거침없이 떠나는 용기를 격발시킨 것은 용감한 남자를 이상형으로 생각하는 셰릴에게서 오직 윙크를 받기 위한 바램이었다. 모든 수컷의 운명이 그런 것처럼….
주정뱅이가 조종하는 헬리콥터에 뛰어오르도록 등을 떠민 것은 용기를 갖고 미지의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상상 속의 셰릴이었다. 황량한 아이슬랜드 벌판에서도 힘을 내게 하는 것도 셰릴의 모습으로 하늘을 수놓는 철새 떼에 대한 공상이다. 달려가는 월터는 꿋꿋하게 제 길을 가는 포레스트 검프를 연상케 한다.
이미지로 전개되는 영상 언어는 소설의 묘사가 따라오기 힘든 함축적 메시지를 감성으로 직통케 한다.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구불구불한 아이슬랜드의 비탈길을 길게 활주하는 파노라마 장면, 폭발하는 화산을 향해 비행기 날개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셔터를 누르는 숀의 모습은 설명이 필요 없다. 직감의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순간 전달력의 생생함이다.
숀이 보내준 사진을 단서로 그가 있을법한 장소를 알아내는 월터의 추리 과정은 관객에게 흥미를 더해준다. 숀을 찾아 그린랜드 바다 위 헬기에서 보트를 향해 뛰어내린다는 것이 엉뚱하게 바닷물로 뛰어들어 상어를 만나는 코믹한 설정은 이 영화를 무겁지 않게 즐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접근은 코믹하지만 전체적으로 가볍지 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영화가 끝나도 여운이 남는다.
히말라야 고원에서 현지인들과 즐겁게 축구를 하는 장면에서 인간은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있는 존엄한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석양빛을 받으며 축구를 하는 사람들의 실루엣은 누가 미국인이고, 누가 아프카니스탄인인지, 누가 부자이고 누가 가난한지 구별하지 않는다. 그냥 함께 즐거운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색의 분별을 털어내고, 윤곽만 남긴 실루엣의 움직임은 평등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오직 행동으로서만 가치를 판단하게 한다. 우리에게 행복은 이런 틈새를 타고 오지만 깨달은 자만이 알아차린다.
고난 끝에 눈표범을 발견하는데 숀은 “정말 멋진 순간에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나를 위해서 그냥 이 순간에 머물 뿐이야. 바로 이 순간에….” 라고 말하면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눈표범과 마주한 이 생생한 감동을 박제된 사진과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숀은 히말라야의 깨달은 성자 같은 모습이다. 무슨 일이든 아주 깊은 경지에 다다르면 도를 깨친 것처럼 마음이 열리게 되나 보다. 그의 이마 깊은 주름 사이에는 오랜 풍상을 겪은 자의 지혜가 숨어있는 듯하다.
대중들은 박제된 표본을 행복의 대상인 것처럼 숭배하지만, 행복은 이처럼 스쳐 가며 살아있는 감동과 같다. 내가 발을 담그고 있는 강물은 어제의 그 강물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숀과 함께하며 월터는 점점 열린 마음으로 변화되어 간다.
그는 이제 익숙하고 고정된 기존 관념의 틀을 깨게 된다. 애지중지하던 피아노를 팔아버리는 것도 이제 애착의 과거 프레임에서 벗어남을 보여준다. 가족이 함께 나누는 포옹은 가족애와 함께 변화를 받아들이는 엄숙한 리튜얼(ritual)을 보여준다. 이렇게 애착의 무게를 내려놓음으로 인해 그는 지갑과 함께 25번째 사진을 찾게 된다. 지금까지 그는 오로지 밖으로만 헤매었을 뿐 정작 찾으려는 것이 가까이 있음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중요하고 행복한 것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파랑새를 찾는 치르치르 미치르는 바로 우리 자신이다.
25번째 사진을 찾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이고 갖은 모험과 고난의 프리즘을 통해서 새로운 눈을 뜨게 되는 깨달음의 과정이다. 중년 이후 삶에서 페르소나를 벗어나 통합돤 자아를 찾아가는 개성화 과정이다. 인디애나 존스 같은 모험을 거친 지금 그는 예전의 월터가 아니다. 비바람과 찬 서리를 받아낸 산삼과 그늘막의 인삼이 같을 수가 없다. 우유부단함과 망설임을 극복하였고, 비굴함으로 버텨야 하는 삶의 외줄 위에서도 그는 자신을 해고한 상사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짝사랑하던 셰릴에게도 그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그가 겪은 놀라운 경험들로 인해 월터는 E-하모니에서 윙크를 삼백 개나 받는다. 그러나 그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뮤즈 셰릴의 윙크뿐이다. 이제 월터는 셰릴의 미소와 눈빛을 투명하게 볼 수 있고 그래서 셰릴을 품을 자격을 갖췄다. 퇴직 수당을 받고 회사에서 나오는 순간 그는 우연히 셰릴을 만난다. 서로 오해가 풀리면서 월터는 데이트를 청하고 셰릴이 쾌히 승낙하는 장면은 흔한 클리쉐이지만 어색하지 않다.
두 사람이 거리를 걷다가 가판대에서 마지막으로 발행한 그들 회사의 잡지 LIFE 폐간호를 보게 된다. 모두가 궁금해하던 표지의 사진은 다름 아닌 월터 그 자신이 필름을 실렉트하는 모습이다. 결국 숀이 얘기한 삶의 정수는 오랫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를 다해온 월터의 성실함이다. 놀라움에 함께 바라보다가 셰릴이 사지 않느냐고 물으니까 월터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이렇게 머물고 싶네요.” 그리고 살며시 셰릴의 손을 잡는다. 모험을 통해 변화한 월터는 행복의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어깨 위로 오후의 햇살이 떨어져 내린다. 해피엔딩이다.
사랑이 갖는 운명의 흡입력은 이처럼 강력하다. 온갖 모험을 다 받아내며 구원과 파멸의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모든 감동 있는 이야기의 소재에서 빠질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는 구원 받아야 하고 깨달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슴 떨리는 경험을 거부하지 말아야 한다. 꺾이지 않는 희망과 용기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강물이고 성장의 모험은 영혼을 구워내는 단련의 불길이다. 그리고 그 불길은 뮤즈에 의해 점화된다. 진흙은 불 속에서 구워져 자기(瓷器, porcelain)가 된다. 성령의 불을 받은 영혼처럼….
영화를 보는 가치가 그 여운의 크기에 달려있다면 이 영화는 우리를 힐링시키는 가치를 지니기에 부족함이 없다.
개봉 : 2013.12.31.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모험, 드라마, 판타지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14분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