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킷리스트」와 1.5인칭

by 낭만천사 유광영

한 때 웰빙이란 말이 크게 유행한 시절이 있었다. 웰빙 밥상, 웰빙 댄스, 웰빙 여행 등…. 영단어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 상품명마다 무분별하게 ‘웰빙’이 접두어로 사용되고, 대화 때마다 한두 번 언급되는 단골 어휘가 되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웰다잉’이란다. ‘잘 죽는다’는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주 평화롭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 꽤 오래전에 제작된 영화 ‘버킷리스트’를 감상했다. 아마 이 영화가 웰다잉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버킷리스트라는 말도 이때부터 널리 사용되었다고 한다.


불가(佛家)에서는 죽음 직전인 사람의 의식 상태에 따라 내생에 태어날 세상이 결정된다고 한다. 우리가 평화로운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해준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함께 처형당한 한 강도는 그 순간 참으로 회개하고 평화롭게 죽음으로써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갔다. 이것이 웰다잉이다.


이 영화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재벌 에드워드와 자동차 정비공 카터는 공교롭게 같은 병실에 입원하였다. 바쁘게 달려온 삶에서 인간적인 기쁨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음을 깨달은 그들은 예정된 죽음을 앞두고 함께 버킷리스트를 실행에 옮긴다. 각종 모험과 호사스러운 여행으로 버킷리스트를 하나하나 실천해 가지만 진정한 삶의 기쁨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결국, 행복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성취가 아니라 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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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은 순간 빙산처럼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오랜 세월 마음에 걸렸던 관계의 상처이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하다가 에드워드가 무심코 뱉은 딸 에밀리 이야기는 피라미드 정상에서 다시 이어지고…. 잊혀진 것으로 여겼지만 늘 의식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심연의 그림자였다.


홍콩의 바에서 여인과 술을 마시다가 카터는 깨달았다. 평화와 행복은 성취해야 하는 3인칭으로서의 대상이 아니다. 장엄한 자연과 나, 너와 나 사이에 있는 1.5인칭(1인칭 나와 2인칭 너 사이의 관계를 인칭에 비유한 필자의 생각)으로서의 관계이다. 카터는 여행을 중단하고 에드워드를 에밀리의 집으로 유도하는데 준비가 안 된 에드워드는 격렬하게 거부하며 카터와의 관계를 끝낸다.


앞만 보고 달려온 에드워드에게 다소 편향되었지만 자존감은 그를 에워싼 단단한 프레임이다. 사랑과 신뢰 없이 프레임을 벗겨낼 수는 없다. 익숙한 것과의 이별에는 늘 고통과 불안이 따른다. 카터에게 향한 분노는 에드워드의 가라앉은 고통을 끄집어냈고, 서서히 프레임에 균열을 가져왔다. 그는 카터를 인간으로 진정 사랑했다.


며칠 불안정한 에드워드의 태도는 균열이 점점 커가면서 변화를 위한 숙성기간임을 보여준다. 카터는 죽으면서 에드워드에게 유서를 남기고 “기회가 된다면 또 그렇게 할 것이네”라는 카터의 말에 에드워드의 프레임은 드디어 깨진다. 에밀리를 찾아가 관계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에드워드는 편안하게 1.5인칭(평화로운 관계)을 마주한다. 버킷리스트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girl과 키스하기”의 girl이 로맨틱 여인(3인칭)에서 손녀딸이 되는 것은 버킷리스트가 1.5인칭으로 치환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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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는 평생을 두고 성취해온 3인칭(부와 명예, 권력)이 죽음 앞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함을 깨달았다. 1.5인칭의 진정한 가치를 찾고 죽음을 맞이하는 에드워드는 두려울 것이 없다. 버킷리스트를 통해서 버킷리스트에 없던 큰 깨달음을 얻었다. 관계의 상처를 회복한 순간 수면 위의 빙산은 녹아버렸다.


죽는 순간의 평화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웰다잉이다. 영화의 나레이션과 같이 에드워드는 “죽기 전 남은 삶을 누구보다 더 잘 살았다. 마음은 아주 넓게 열려 있었다.” 지금 나에게 수면 아래 빙산은 무엇인가?



개봉2008.04.09.

등급12세 이상 관람가

장르모험, 코미디, 드라마

국가미국

러닝타임97분



- 낭만천사 유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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