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름 위에 연고를 바르지 말라.

영화 - <바튼 아카데미>

by 낭만천사 유광영

상처의 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치열한 몸부림의 잔해가 고름인 것처럼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부터 헤어나려는 내면의 외침은 까칠한 행동으로 모양 짓는다. 고름 위에 연고를 바르고 빨리 낫기를 재촉하는 어리석음은 무지에서 오는 것인가? 욕심에서 오는 것인가? 앵거스의 반항적 행동을 군사학교인 포크 유니온에 보내어 다스리려는 부(계부)모는 둘 다 해당되는 것 같다.


유서 깊은 명문 고등학교 바튼 아카데미에서 크리스마스 방학 중에 역사 선생 폴과 문제 학생 앵거스 사이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상처 입은 이들이 고름을 걷어내고 맨살의 아픔을 드러내면서 깨닫고 힐링하는 감동을 스며들 듯 잔잔하게 그려낸다.


학교를 세 번이나 옮긴 문제아 앵거스의 반항적인 태도가 잘못된 인성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무라는 한, 그가 부모 사이에서 겪는 외로움과 아픔을 씻어줄 수 있는가?


규범과 원칙을 강박적으로 준수하고 학업에 지나치게 엄격함을 요구하는 폴을 ‘사팔 눈’라고 경멸하는 한, 그의 신체 핸디캡과 학업에 대한 컴플렉스에 햇빛을 비출 수 있는가?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입대한 후 월남전에서 전사한 아들과의 추억을 맴도는 메리를 청승맞다고 탓하는 한, 그녀의 헤아릴 수 없는 응어리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가?



파이프 담배와 짐빔 위스키를 즐기는 완고하고 너무 전통적인 태도의 구식 꼰대 폴 헌햄 선생에게 타협은 없었다. “우리의 청렴함을 그들 권리의 제단에 제물로 바칠 수는 없지.” 라고 하면서 상원의원 아들의 점수를 올려달라는 교장의 요청을 거절할 만큼 고집불통으로 학교에서 왕따당하고 있다. 하바드 재학시절에 유력한 가문의 아들로부터 표절범으로 모함받았던 상처는 오랫동안 숨어서 그의 행동을 그렇게 모양지었다.


팔이 빠져 병원에 간 앵거스가 폴이 난처해지지 않게 거짓말로 둘러대어 보험처리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을 보고 폴의 완고함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돌아오는 길에 트라이메틸아미노뇨증으로 인해 몸 냄새가 심해 폴이 사람들과의 접촉을 꺼린다는 것, 앵거스가 정신과 의사의 치료를 받는 사실 등 서로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인간적 거리가 한발 가까워진다.


파티에서 앵거스의 말동무가 된 엘리스는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라는 거야. 문제는 커서도 예술가로 남아있을 수 있냐는 거지”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한다. 앵거스가 물감으로 핑거 페인팅을 하며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거야?”하고 묻자 앨리스는 아이들의 예술성을 믿으라며 “맞고 틀리고 하는 것 없어”라고 말한다. 그대로 두면 맨살의 상처는 스스로 치유될 수 있으나 어른들은 상처 위의 고름을 덮기만 한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파티에서 일찍 돌아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앵거스는 자기 아빠는 죽었고(사실은 정신병원에 입원) 엄마는 재혼했다는 사실을 말한다. 다시 파티에 가려는 앵거스를 폴이 가지 못하게 하자 크리스마스의 외로운 아이에게 너무하지 않냐고 메리가 핀잔을 준다. 그날 밤 잠자리에서 들면서 폴은 곰곰이 생각한다. 그의 완고함에 한 번 더 균열이 간다.


다음날 폴은 나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마커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앵거스와 메리에게 선물한다. 분위기에 젖은 폴이 좀 더 멋진 시간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 앵거스는 진짜 크리스마스를 느껴보고 싶고 스케이트도 타고 싶다며 보스톤에 가자고 한다. 처음에 반대하던 폴도 메리의 의견을 받아들여 현장학습 명목으로 보스톤에 데려간다.


보스톤에서 함께 지내는 동안 사소한 충돌을 거치면서 폴과 앵거스는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연민을 느낀다. 시내에서 스케이트도 타고 거리의 헌책방에도 가고 박물관에서 고대 그리스 유물을 관람한다. 폴은 인간의 경험에서 새로운 것은 없고 그래서 현재나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과거부터 시작해야 하며, 역사에 대한 그의 의견을 박물관의 에로틱한 그림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앵거스는 폴에게 수업 시간에도 이처럼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고 소리 지르는 것을 줄이라고 한다. 대부분 애들과 선생들이 폴을 아주 싫어한다고 직언한다. 폴은 한 방 맞은 듯 깊은 생각에 잠긴다. 그의 완고함에 균열이 커진다.


길에서 폴이 대학 시절 친구를 우연히 만났을 때 앵거스는 폴의 조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폴 삼촌은 고대 세계의 빛과 마법이라는 책을 집필하고 있다며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폴의 체면을 세워준다. 그리고 하바드에서 쫓겨난 폴의 사연을 듣고 함께 분노하는 공감을 보인다. 그날 ‘리브리엄’이라는 우울증 약을 앵거스가 복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같은 약을 복용하는 폴은 동병상련을 느끼고 가슴이 열려 앵거스를 상처 입은 한 인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영화를 보다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거리로 나가 택시를 잡는 앵거스의 행동에 폴이 거짓말쟁이라고 화를 내자 앵거스는 폴에게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중이라고 한다. 앵거스의 아버지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던 것이다. 상태가 나빠진 아버지를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후 이혼하고 돈 많은 남자와 재혼하였다고 한다.


아버지를 만나고 나온 앵거스는 고백하듯 폴에게 말한다. “거짓말을 하고 훔치고 사람들을 화나게 만들고 저는 친구가 없어요. 진짜 친구요. 아마 바튼에서도 쫓겨날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건 또 제 잘못이 되겠죠. 그리고는 아무도 신경 따윈 쓰지 않을 테구요. 그동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만나고 싶지 않았어요. 두렵기 때문이어요. 언젠가 나에게도 일어날 일이니까.”


불안해하는 앵거스를 진정시키듯 폴은 이렇게 대답한다. “세상이 참 고통스럽고 복잡한 곳이라고 생각해. 세상도 나에 대해 그렇게 느낄거라고 생각하고 그런 면에서 우린 공통점이 있는 거 같구나.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마. 너에겐 너만의 도전들이 있는 거야. 넌 그냥 너 자신의 사람이야. 넌 그냥 아직 어랜애잖아. 이제 시작인거라구. 그리고 넌 똑똑해. 그리고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시간도 가지고 있지. 너의 이력이 너의 운명을 결정할 필요는 없단다.”


이제 둘은 상처 위의 고름을 거둬내고 맨살의 아픔을 이해하는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새해를 알리는 뉴욕 타임스퀘어의 카운트다운 장면을 TV에서 라이브로 방송하는 것을 시청하며 폴과 앵거스는 부엌에서 작은 폭죽을 터뜨린다. 상처의 그늘이 폭음과 함께 날아가는 듯하다. 공감을 나눈 따뜻한 심장이 함께 뛴다.


앵거스가 친부를 만나러 정신병원에 간 일로 인해 문제가 생기자 어머니와 의붓아버지는 앵거스를 자퇴시키고 군사학교에 입학시키겠다고 한다. 폴은 자기가 직접 설득해서 앵거스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도록 데리고 갔다고 하며 앵거스를 두둔한다.


“두 분은 연락도 되지 않고 그는 크리스마스에 혼자였고 난 그 아이가 아빠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구요. 근데 왜 아이를 망치면서까지 고통을 가중시키려 드세요? 그는 아주 스마트하고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있어요. 만약 그걸 그 애한테서 뽑아버린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바튼맨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지고 완고했던 폴이 자신이 직접 앵거스를 데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고 사실과 다르게 주장한다. 팔이 빠져 병원에 갔을 때 폴이 난처해지지 않도록 앵거스가 거짓말로 둘러댄 것처럼…. 폴도 앵거스도 변화하였다.


교장의 집무실을 나오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앵거스에게 폴은 바로 이쪽이 네가 봐야 할 눈이라며 오른쪽 눈을 가리킨다. 볼링장에서 앵거스가 물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결국 앵거스는 학교에 남게 되나 폴은 책임지고 학교를 그만두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된다.


폴이 학교를 떠나는 날 선생님이 어떻게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자기는 학교에서 쫓겨나지 않게 되었고 선생님은 잘리게 되었다고 앵거스가 말하자.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바튼 맨, 힘 내! 넌 할 수 있어”라도 폴이 대답한다. 앵거스는 “그래요, 저도 선생님께 같은 말을 하려고 했어요.” 라고 말한다. 둘은 힘껏 악수한다. 다음에 보자며 돌아서는 앵거스의 등 뒤에서 다음에 보자는 말을 중얼거리듯 되뇌는 폴은 뜨거움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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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치유가 되는 순간 스킨십을 하는 일은 자연스럽다. 악수, 하이 파이브, 포옹, 손잡기, 등 두드리기, 키스. 그것이 치유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하지만 치유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도 여러 장면이 그런 모습이 목격된다. 상처는 고름 위의 연고가 아니라 맨살을 어루만질 때 치유된다. 몸도 마음도….


바튼맨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 속살의 아픔을 들여다 보았을 때 외면하지 않는 일이다. 예수그리스도가 거룩한 안식일에 환자를 치유한 것을 보고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하는 바리사이파들은 아직도 이웃에 있다. 그들의 가면에 균열이 가도록 하는 것은 희생과 진정한 이웃 사랑 뿐이다. 폴은 그렇게 하여 학교를 떠났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우리는이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진정 위로하는 것은 그의 상처 위 고름을 거둬내고 맨살을 들여다볼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란 시가 떠오른다.


방문객 /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개봉 : 2024.02.21.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33분




- 낭만천사 유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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