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신선하게, 다채롭게)
국민학교 시절 성당에 다녀오는 길에 노천 책방에서 종이접기 책을 한 권 샀다. 누렇게 변색된 표지에 속지 몇 장이 찢어졌지만 헛간에서 보물 지도를 발견한 것처럼 마음이 설렜다. 수십 가지 동물과 식물, 물건 모양으로 종이를 접을 수 있는 순서도가 그려져 있었다. 하얀 종이 한 장으로 그렇게 다양한 모양의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일주일 용돈이 아깝지 않았다.
그 책을 무슨 비전(祕典)이라도 되는 듯 방의 구석진 곳에 숨겨놓고 몰래 들여다보면서 하루는 종이학을, 다음 날은 개구리를, 그리고 어떤 날은 종이배와 종이 공을 하나씩 접어서 동네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접었는지 알려달라고 졸랐다. 나는 으쓱한 기분으로 비법을 전수하듯 하나씩 가르쳐 주었다. 네모난 종이가 접기에 따라서 백합꽃으로 종달새로 변화할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종이비행기 밖에 접을 줄 몰랐던 내게 그것은 새롭고 신선한 경험이었다. 종이 한 장에 이처럼 다채로움이 숨겨져 있었다니….
지금 내게 은퇴 후의 삶이 종이 한 장처럼 남아 있다. 시간 접기도 종이접기처럼 같은 상태에서 출발하지만 나중에는 다채로운 모양으로 나타날 것이다. 접기에 따라 학, 개구리 또는 백합의 시간으로 변화할지도 모른다. 국민학교 시절 헌책방에서 구입했던 종이접기 책처럼 어딘가에 시간 접기 책이 있으면 한권 사고 싶다. 순서도에 따라 시간 접기를 하면 어느 날 ‘짠’하고 원하는 멋진 시간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동안 생활을 끌어왔던 힘은 관성이 되어 세상을 새롭고, 신선하고, 다채롭게 바라보는 것을 방해한다. 늘 하던 짓이 편하다. 늘 하던 생각이 부담이 없다. 늘 가던 곳이 낯설지 않다. 편하고, 부담이 없고 낯설지 않은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삶은 한 번이고 순간이다. 가슴 뛰는 시간이 없다면 삶의 의미는 어디에 있을까?
기계는 실수하지 않지만 설레는 가슴이 없다. 기계같이 드라이하지만 실수없는 삶을 살 것인가? 두근거리는 심장을 끌어안고 새롭고, 신선하고, 다채로운 경험으로 설레는 순간을 맞을 것인가? 종이접기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시간 접기를 하려면 마음부터 종이처럼 평평하게 비워야 할 것 같다. 때로는 관성의 이득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새롭고 신선하고 다채로운 설렘은 놀이공원의 바이킹처럼 가속도와 철렁거림으로 가슴을 짜릿하게 하지 않을까? 세상과 자연은 다양성을 원한다. 오늘도 나는 새롭게 시간 접기 놀이를 한다. 교본없이 접는다.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