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인 어 베러 월드>
분노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오직 벗어나고자 할 뿐 그 방법에 품격을 가리지 않는다. 교묘하고 끈질기게 때를 노릴 뿐이다.
때로 공존해야 하는 그 존재를 인정하고 운명의 저울추에 무게를 얹기 전에 놓아주어야 한다. 솔직함이 절대로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분노는 우아하지 않은 방법으로 유기체를 탈출하고, 그 상처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다. 영화 <인 어 베러 월드>는 성인의 분노가 소년의 분노와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다.
10살 소년 엘리아스의 아버지 안톤은 의사이며 덴마크와 아프리카 난민 캠프를 오가면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어머니 마리안느도 의사인데 안톤과 별거 중으로, 혼자 엘리아스 형제를 양육하고 있다. 엘리어스는 학교에서 상습적으로 따돌림과 폭력을 당하고 있다.
어느 날, 엘리어스가 다니는 학교에 크리스티안이 전학와서 엘리어스의 짝이 된다. 크리스티안 또한 말이 없는 소년으로 최근 암으로 엄마를 잃고 아버지와 세상에 대해 크게 분노를 느끼고 있다. 크리스티안은 아버지가 엄마가 빨리 죽기를 바래서 치료를 포기했다고 믿고 있다.
학교에서 따돌림과 모욕을 당하는 엘리어스를 돕다가 크리스티안은 동급생 소푸스에게 농구공으로 폭행당한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하여 아버지에게 향한 분노가 소푸스에게 투사되면서 저기압을 흡수한 태풍처럼 크리스티안의 분노는 커진다. 크리스티안도 엘리어스도 이런 사실을 부모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얘기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노의 무게는 점점 늘어나고 탈출 압력은 커진다.
며칠 후 등교하다가 크리스티안은 엘리어스가 소푸스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소푸스를 뒤쫓아간 크리스티안은 자전거 펌프로 사정없이 내리치고 칼로 위협한다. 임계점을 넘은 분노의 탈출은 이렇게 우아하지 않다. 분노의 무게가 실린 주먹 펀치에 소푸스는 맥없이 주저앉으며 감히 저항하지 못한다. 크리스티안은 온순한 엘리어스에게 분노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어야 상대가 다시는 괴롭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였고, 둘은 급속히 친해진다.
크리스티안과 엘리어스는 경찰과 학교, 부모에게까지 칼에 대한 비밀을 끝까지 지킨다. 서로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나중에 폭탄이 터졌을 때도 각자 자기가 일을 꾸몄으며 친구는 그냥 따라오기만 했다고 잡아뗄 만큼 굳건하였다. 분노를 공유한 자는 믿음도 공유하기 쉽다. 그래서 분노한 자들에 의해 혁명이 이루어진다.
놀이터에서 엘리어스의 동생 몰텐과 어떤 아이와의 싸움을 말리다가 안톤은 그 아이의 아버지 랄스에게 폭행을 당한다. 엘리어스와 크리스티안은 경찰에 신고하자고 했지만 안톤은 그러지 않는다. 이 제재받지 않는 부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크리스티안은 높은 곡물창고 탑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 본다.
안톤을 폭행한 랄스의 직장을 알아낸 크리스티안과 엘리어스는 안톤에게 가서 그 사람을 찾아가 때려주는 것이 겁이 나느냐고 묻는다. 안톤은 그런 식으로 복수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멍청한 짓이라고 한다. 엘리어스는 아빠에게 이런 겁쟁이가 아니라면 엄마가 좋아했을 거라고 한다.
안톤은 자기가 겁쟁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랄스를 찾아간다. 랄스에게 왜 그랬냐고 묻고 당신은 대장인 척하는 멍청이라고 말한다. 랄스가 다시 안톤의 뺨을 때리고 아이들은 겁에 질린다. 안톤은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한다. 랄스는 또 다시 안톤의 뺨을 때린다. 안톤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괜찮다고 아이들을 달랜다. 사과할 줄도 모르고 기껏 뺨만 때릴 줄 아는 랄스를 그저 그런 머저리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크리스티안과 엘리스는 납득하지 못한다.
안톤이 비록 아이들에게 도덕적으로 모범을 보였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폭력에 대한 분노만 키워준 셈이다. 적어도 합법적 범위 안에서 랄스의 폭력을 제지토록 경찰을 부르던지 변호사를 고용해서 랄스의 행동이 정당하지 못했음을 깨닫도록 했다면 아이들의 분노가 임계점을 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운명의 저울추를 누르는 분노는 이렇게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무거워진다.
며칠 후 크리스티안과 엘리어스는 헛간에서 놀다가 발견한 폭죽에서 화약을 빼내 폭탄을 만든다. 인적이 없는 해변가에서 폭탄의 위력을 확인한 크리스티안은 엘리어스에게 랄스의 차를 폭파시키자고 한다. 만약 같이 하지 않는다면 자기가 준 칼을 되돌려 달라고 한다. 칼은 둘 사이의 신뢰를 상징한다. 내재된 분노는 우아하지 못한 탈출을 시도한다.
한편, 아프리카에서 임신한 여자의 배를 갈라 잔인하게 죽이는 마을의 악당 빅맨이 다리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난민 캠프로 안톤을 찾아온다. 난민들은 그런 악마 같은 사람을 치료해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안톤은 인도주의 정신으로 그를 치료하기로 한다. 빅맨을 치료하지 말라는 난민의 눈빛 속에 실망과 분노가 무게가 가라앉는다.
살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상처가 컸던 젊은 여성이 안톤의 눈앞에서 숨을 거둔다. 빅맨은 죽은 여성의 시신을 보고 창녀와 큰 칼이라고 모욕하며 죽은 여자를 좋아하는 그의 부하에게 넘기라고 말한다. 치솟는 분노가 안톤을 덮친다. “당신은 더 이상 내 환자가 아니요. Not my responsibility”라고 소리치며 거칠게 빅맨을 쫓아낸다. 다리를 못 쓰는 빅맨, 그 운명의 저울추는 난민들 분노의 무게에 의해 한 순간에 기울어진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한줄기 회오리바람처럼 생명은 누구에게 한 번만 스치고 사라질 뿐이다.
그날 저녁 엘리어스는 크리스티안이 사제 폭탄으로 랄스의 차를 날려 버리려 한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이야기하려 했으나 통신 상태가 좋자 않아 아버지와의 화상통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결국 엘리어스는 크리스티안과 함께 랄스의 차를 폭파시키는 일에 가담키로 한다. 폭탄을 제조하는 헛간 바닥에 한 마리 벌레(bug)가 기어간다. 계획에 버그(오류)가 발생한다는 불길한 징조다.
이른 아침에 준비된 폭탄을 랄스의 차 아래에 장착하고 크리스티안이 도화선에 불을 붙인다. 1분 안에 원래 위치로 뛰어와 폭탄이 터지기를 기다리는 순간, 아침 조깅을 나온 동네 모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랄스의 차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간다. 엘리어스는 그들을 막으려고 소리치면서 뛰어가고 그 때 폭탄이 터져 자동차의 파편이 사방으로 날아간다. 크리스티안은 쓰러진 엘리어스를 부르짖으며 구급차를 부른다.
병실을 찾아온 크리스티안에게 사정없이 퍼붓는 마리안느의 분노로 인해 크리스티안은 엘리어스가 죽은 걸로 알고 크게 가책을 느낀다. 그렇다고 이런 그의 마음을 누구와 이야기할 수도 없다. 밤새 낙담하다가 뛰어내릴 작정으로 어둠이 가시기 전에 곡물창고 탑에 올라간다.
“상상이 안 됐어요. 어린 애가 더 어려 보이면 어떤 모습인지. 어른도 죽으면 아이 같아 보이잖아요.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요. 꼭 어린 소녀 같아 보였어요. 한 번도 자라지 못한 것처럼”
“죽음과 삶 사이엔 장막이 하나 드리워져 있지. 어느 날 그 장막이 사라진단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 죽었을 때. 그때 우리는 죽음을 분명하게 잠시 보게 되지. 그러나 장막은 다시 돌아오고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게 된단다. 그러면 모든 것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단다.”
뛰어내리기 직전에 크리스티안을 구해낸 안톤과 크리스티안은 이렇게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한밤중에 크리스티안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듣고 안톤이 떠올린 것은 언젠가 엘리어스로부터 들었던 곡물창고였다.
탑에서 내려온 크리스티안을 아빠 클라우스가 와락 끌어안는다. 크리스티안도 클라우스를 꽉 껴안는다. 분노가 사라짐에 따라 운명의 저울추는 평형을 찾아갔다. 좀 더 나은 세상(in a better world)이 되었다.
클라우스는 아들에게 원론적이고 규범적 사항을 지시하듯 얘기하고, 안톤은 아들을 신뢰하여 판단을 맡기고 필요한 조언을 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엘리아스는 크리스티안에 비해 평소 아빠를 신뢰하고 소통을 이어왔다.
반면에 크리스티안은 아빠를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고 분노하고, 나누지 못한 분노는 우아하지 않게 유기체를 탈출하려 했다. 폭탄 사건을 계기로 분노의 무게가 사라지자 진정한 소통의 순간이 왔다.
2011년에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제작된 이 영화에서는 크리스티안이 심경에 변화를 느낄 때마다 철새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을 보여준다. 티벳, 이란 등 여러 고대 문화권에서 새는 인간의 영혼이라고 믿었다. 정호승 시인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영혼은 분노의 무게에서 자유로울 때 아름답다. 먼지 속에 자동차 뒤를 쫓아가는 아프리카 난민촌 아이들의 표정이 덴마크 아이들보다 아름다운것은 아이러니다. 분노는 환경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두 소년의 연기가 참 리얼하게 상황을 잘 표현했다.
동영상 파일이 잘못 코딩되었는지 아니면 한 번쯤 좌우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라는 감독의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영상이 거울 이미지처럼 좌우가 반전되어 보였다. 글씨도 그렇고 모든 장면에서 좌우가 바뀌었다.
우리의 분노도 좌우를 바꾸어서 한 번 느껴보면 어떨까? 좌에 대해 분노했으면 우에 대해서도 분노하고, 우에 대해 분노했으면 좌에 대해서 분노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분노가 운명의 저울추를 기울이기 전에 놓아주자.
개봉 : 2011.06.23.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스릴러
국가 : 덴마크, 스웨덴
러닝타임 : 113분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