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루쿨린의 멋진 주말>을 보고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한다.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환경을 찾아 접근하거나 회피하는 것이 생물의 본성인데,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행동의 어떠한 결정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불확실함을 대체할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고 따른다. 불리한지 유리한지 모르지만 적어도 불확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불확실한 상황을 견딜 수 없어 유령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유령은 기꺼이 우리의 의식을 접수한다. 마비된 판단은 이제 모두 우상만 바라볼 뿐이다. 내면의 평화를 깨달은 자유로운 영혼을 제외하고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런 현상은 똑같이 발생한다.
예수는 불확실함을 두려워하는 군중에게 말한다.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너희야 훨씬 더 잘 입히시지 않겠느냐?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오 복음 6장 30-34)
루스는 알렉스가 나이 들어 5층을 걸어 올라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가려고 한다. 알렉스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알렉스는 많은 추억을 간직한 이 아파트에 대해 애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신혼시절 부터 40년을 살아온 집이다. 집을 보러 오는 사람에게 넓게 보이려면 작업실의 잡동사니를 치우라고 부동산 중개인 릴리가 말하는 것도 알렉스는 유쾌하지 않다. 평생을 그려온 작품을 두고 잡동사니라니….
루스 은퇴 기념으로 알렉스가 선물한 애완견 도로시는 10살이 넘었다. 아이가 없는 이 부부에게 자식같은 존재이다. 도로시는 디스크에 이상이 생겨 수술받아야 하는데 CT 촬영비가 1,000달라, 수술비는 최소 10,000달라이란다.
어떻게든 낫게 해 보려고 하지만 과다한 수술 비용에 주저하는 루스, 알렉스는 망설임없이 수의사에게 말한다. “도로시를 위해 뭐든 해주십시오. 치료비는 문제 안 돼요. 도로시를 위해 뭐든 해주세요.”
이런 믿음에는 우상이 들어올 틈이 없다. 초청받지 않았는데도 찾아올 만큼 유령은 한가하지 않다. 그들은 늘 초대장을 접수하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루스와 알렉스는 팔려는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하루를 보낸다. 팔려는 집은 생각보다 호가가 적고, 사려고 하는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 가격이 비싸서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이때 릴리가 개입하여 가격을 조정하고, 루스의 주장에 따라 알렉스는 새 아파트를 매입키로 한다.
루스와 알렉스가 이렇게 집 매매로 정신이 없을 때마다, 도로시는 동물병원 닥터를 통해서 수술 결과가 잘 되었다는 둥,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등의 소식을 전하여 루스와 알렉스가 잠시 숨고르게 한다.
도로시는 스토리의 흐름을 쥐고 있는 메트로놈이다. 이 영화는 도로시가 동물병원에 입원하면서 시작되고 퇴원하면서 끝난다. 루스와 알렉스가 갈등할 때 항상 도로시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동물은 유령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초대할 줄도 모른다.
TV 뉴스에서는 브루쿨린과 맨하턴을 잇는 윌리엄스버그 다리에 유조차가 정차해 있고 도망친 운전자 압둘 파미르라는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무슬림이라면서 제2의 9.11테러, 자폭 조끼 폭탄 얘기를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 뉴스의 자막 ‘다리 위의 공포’는 유령에게 보내는 거대한 초대장 같다.
시청자는 테러 혐의를 기정사실화하고, 공포와 불안은 확산되고, 테러범이 설쳐서 집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여자 바텐더도 인질로 잡고, 카운터의 돈도 테러범이 강탈해갔단다. 택시 운전사도 납치했다고 한다. 초대받은 유령이 임무를 게을리하는 법은 없다. 너무 익숙한 일이기 때문이다.
루스는 계속되는 테러 관련 뉴스에 “사람들은 뭘 들어야 덜 불안한가 봐”라고 말한다. 시사 주간지 표지에 ‘다리 위의 공포’라는 제목을 보자 알렉스는 중얼거린다. “무슨 놀이기구의 이름 같군. 얘깃거리를 만드는 거야.”
테러범이 사고 쳐서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고 루스는 걱정하고, 진짜 테러범이라고 해도 곧 잠잠해질 거라고 알렉스는 말한다. 이런 가운데 알렉스 부부에게 친절한 이웃 상점 주인이 무슬림계인 것은 테러 소동이 유령의 짓임을 암시한다.
루스의 누드화 앞에서 알렉스는 처음 만난 날 루스와의 대화를 회상한다. “당신 같은 남자 처음이네. 옷보다 안경을 벗기려고 하다니.” 안경은 편견과 고정된 시각을 의미한다. 알렉스는 루스에게 편견 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원했다. 왜 모델로 자기를 택했냐는 루스의 질문에 알렉스가 대답한다. “중요한 건 미모가 아니라고요, 살아있는 느낌이지.”
루스와 알렉스가 이사 갈 집을 찾아 구경하는데 그때마다 만나는 꼬마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할아버지 집이 최고예요.” 어린이에게 유령이 접근하기 힘든 것은 그 투명한 의식을 유령이 통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꼬마가 알렉스에게 질문한다. “집을 왜 파세요?” 알렉스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그것 좋은 질문이구나.” 좋은 질문과 좋은 대답을 알고 있는 사람을 유령은 싫어한다. “딴 사람한테 떠밀려서 결정하면 안돼.” 라고 알렉스는 조급해진 루스에게 말한다.
도로시를 걱정하는 루스를 알렉스가 위로한다. “루스, 걱정 그만해.” 그러나 루스는 “나는 걱정이라도 해야 진정돼”라고 대답한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루스와 같은 조급함을 안고 산다. 애완견 도로시가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은 유령이 물러날 것이라는 예고이다.
알렉스가 아파트 매입 계약서에 서명하려 할 때 뉴스에서는 테러범(?) 체포 장면을 방영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수갑을 찬 사람은 테러리스트도 아니고 평범한 젊은 남자였다.
“괴물일 줄 알았는데 너무 어리네요. 뭔 잘못을 했다는 거요?” 알렉스가 중얼거리자 아파트를 내 놓은 집주인이 대답한다. “집값 5만달러 말아먹었어.” 순간 알렉스는 등 뒤에 유령이 있음을 깨닫고 아파트 거래를 취소한다.
그 집을 나오면서 당황해하는 루스에게 알렉스는 자기의 심정을 얘기한다. “그 젊은 청년이… 가엽게 무릎 꿇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도 딴 사람처럼 경솔했구나. 아무것도 아닌 걸로 테러범 취급하고. 우리 왜 이사 가는 거지? 뭐를 위해서. 우리 잘 살았잖아?” 루스는 대답한다. “난 당신을 돕고 싶었어. 난 당신 없이는 살기 싫어. 사실 어디든 상관없어. 어디든 좋아. 당신만 있으면 돼. 그럼 된 거야”
유령은 달아났다. 알렉스와 루스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두려워서 이러는 거죠?” 집 매매를 중단했다고 항의하는 릴리에게 알렉스는 대답한다. “두려울 거 없어. 우린 이게 좋아. 우리가 살고 싶은 집에서 살 거야.”
계절이 지나 겨울. 알렉스는 다시 걷게 된 도로시와 함께 그전처럼 산책한다. 루스는 벽에 크림색 페인트를 칠하고 있다. “그 며칠 정신없이 롤러코스터를 타다가 처음 탄 곳에 내린 기분이었죠. 그렇게 돌아와 자신을 돌아보니 우리 모든 게 소중해 보이는군요. 이렇게 함께인데 뭐가 문제이겠어요. 다 제자리로 돌아왔고 우리 집도 있잖아요.” 둘이 커피를 마시 알렉스가 한 말이다.
유령은 상황을 바꾸지 못한다. 유령은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만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유령이 떠나니 루스와 알렉스가 제 자리로 돌아온 것은 당연하다.
이 영화 중간중간에 루스와 알렉스는 지난 40년간 쌓아 놓은 추억을 회상한다. 아름다운 추억은 저장해 놓은 행복의 간식이다. 발효된 추억을 틈틈이 꺼내어 되씹는 것은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마시는 것처럼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흑백결혼의 장벽을 넘은 신뢰와 존중은 둘의 영혼을 이어주는 튼튼한 끈이다. 루스가 아이를 낳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는 알렉스의 신앙과 같은 사랑, 자유로운 영혼의 예술가 알렉스를 존중하는 루스의 깊은 사랑 사이에 유령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시장 취향에 맞워 그림을 그리라는 갤러시 주인 잭슨에게 루스는 이렇게 말한다. “시장을 만족시키는 예술가는 없어. 화가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그림을 그리거든. 갤러리 운영하려면 그 정도는 알아야지”
신뢰와 존중 그리고 사랑이 충만하다면 내일이 두렵지 않다. 그러니 유령을 초대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초대장 없이 유령은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이것이 분명한 진실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개봉 : 2016.01.21.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92분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