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5 to 7>
어느 날 갑자기 마음 설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빈자리에 딱 들어맞는 퍼즐 한 조각처럼 공허감을 채우는 충만감에 벅차오르는 가슴을 어쩌지 못한다. 그 순간 삶의 통제권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다. 에로스(Eros)가 손짓할 때 운명은 한쪽 눈을 감기 때문이다.
고동치며 돌진하는 사랑의 엔진 에로스는 삶을 로켓처럼 끌고 간다. 순식간에 인생의 온갖 고뇌와 희열을 모조리 맛본다. 그러나 한쪽 눈이 감겨서 입체감이 떨어짐을 어쩌랴? 두 사람, 두 개의 눈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멀리 가기 어려운 이유이다. 리비도(libido)라는 야생마는 열린 마음으로 보는 자만이 길들일 수 있다.
에로스의 손짓을 거부할 때, 존경받을 수는 있지만 사랑받지 못한다.
에로스의 손짓에 눈이 멀 때, 뜨겁게 사랑할 수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한다.
에로스의 손짓을 존중하고, 에로스가 신으로부터 받은 사명을 이해하고 있을 때 사랑받고 존중받는다.
에로스는 생명의 밑바닥을 흔드는 힘이고 창조력의 샘물이다.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그리고 선택을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선택이든 황홀한 설렘은 머물렀다 간다. 결혼은 판단이고 사랑은 운명이다. 판단은 번복할 수 있지만 운명은 번복할 수 없다. 내 모든 것을 바칠 만한 사랑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영화 <5 to 7>은 제어(制御)된 에로스가 삶의 깊이와 인간적 성숙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현대 뉴욕을 무대로 보여준다. 문화와 가치관에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인간 욕망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점이 많다. 영화가 끝난 후 나누는 소감도 각양각색이다.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런 사랑을 동경하는지 모른다. 영화가 끝나도 여운이 머리 속을 맴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가 말하기 전에 대답은 이미 정해졌을까? 우리의 문화, 사회정서, 개인적 성장배경…, 판단과 결정은 나 대신 그것들이 내렸다.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나’대로 존재하고 싶다. 문화, 사회정서, 성장배경이 곧 ‘나 자신’이 아니니까…. ‘나 자신’으로 오롯이 존재하는 것은 고독하다. 두렵다. 힘들다. 만용(蠻勇)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간의 숙명이다. 단순히 흥미로만 끝나지 않은 화두를 이 영화가 던져 준다.
집안에서는 로스쿨에 진학하라고 하는데 브라이언은 몇 년째 뉴욕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을 투고하는 곳마다 출판을 거절당해 하루하루가 힘들고 의기소침한 상태다. 어느 날 그는 거리에서 운명처럼 한 여인을 만난다. 프랑스 외교관의 아내인 아리엘은 브라이언보다 9년 연상으로 매주 금요일 점심을 먹고 호텔 앞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휴식을 취한다. 브라이언과 아리엘은 첫눈에 반해 곧 사랑에 빠진다.
아리엘은 브라이언과 첫 데이트 때, 자기는 프랑스 외교관과 결혼해서 남편의 근무지인 뉴욕에 살고 있고 아이도 둘 있으며, 매일 5시부터 7시까지만 혼외정사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남편에게도 ‘제인’이라는 정부(情婦)가 있어 가끔 사교 파티 때 보는데 아무도 말을 안 하니 누구도 얼굴 붉힐 일 없다고 한다. 자기네 부부는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는데 프랑스 문화에서는 그런 일을 그렇게 삐딱하게 보지 않는다며 아리엘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 나라 문화는 좀 성장해야 해요. 삶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줄도 알아야죠. 결혼할 사람이 있고 사랑할 사람이 따로 있을 수 있어요.”
문화와 가치관 차이에 혼란을 느낀 브라이언은 아리엘을 만나는 것이 불륜이고 비윤리적이라고 말한다. 아리엘은 실망한 듯 이렇게 대답하며 자리를 떠난다.
“내 윤리를 존중받으려면 당신 윤리도 존중해야겠죠?
아무튼 난 금요일마다 거기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다시 못 본다면 이것만은 알아줘요.
무척 애틋했던 시간으로 기억할게요.
느낌이 왔었는데 무척 아쉽네요.”
아리엘과 첫 데이트를 한 후 브라이언은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온통 금요일에 거기 나와 있을 아리엘 생각뿐이다. 갈등하던 그는 결국 3주 후 금요일에 아리엘을 만난다. 아리엘은 기다렸다는 듯 그를 포옹하고 그녀의 생레지스 호텔 방 열쇠를 건넨다.
이렇게 둘은 5시에 만나 뜨거운 정사를 마치고 7시에 헤어진다. 그녀가 정한 규칙이다. 브라이언은 7시에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규칙에 따른다. 이렇게 둘은 여늬 연인들과 다를 바 없이 센트럴 파크를 함께 산책하고 영화도 보면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리엘의 남편 발레리가 브라이언을 거리에서 만나 토요일 그의 집 만찬에 초대한다. 브라이언 때문에 아리엘이 생기를 찾게 되어 고맙다고 한다. 브라이언은 얼떨결에 승낙하는데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불편하다. 자기 아내의 정부(情夫)를 만찬에 초대하다니…. 호텔에서 아리엘과 정사를 나눈 후 이 얘기를 하자 아리엘은 기뻐하며 이렇게 말한다.
“굉장히 화기애애하고 재미있는 토요일 밤이 되겠네요.
남들이 어떻게 볼지 신경 쓰지 마요.
마음을 열면 세상의 선의가 당신을 놀라게 할 테니까요.”
토요일 저녁 발레리의 파티에서 브라이언은 유명 인사와 제인을 소개받는다. 만찬은 화기애애하고 품격있게 진행되었다. 만찬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불편해하는 브라이언에게 제인이 말한다.
“인생이란 매 순간의 모음이죠. 그러니 가능한 한 좋은 걸 많이 모아야 해요.”
이 말은 내가 다른 영화 감상 후기를 쓰면서 했던 말
“흩어진 기쁨을 주워 담아라, 행복의 퍼즐 조각이다.”
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으로 들린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라고 브라이언이 말하자, 좋은 작가가 되고 싶으면 뻔한 인생을 살면 안 된다고 제인이 대답한다.
용기를 얻은 브라이언은 아리엘을 부모님에게 소개한다. 아버지는 애가 딸린 유부녀와 사귀는 것을 극구 반대하지만 어머니는 아리엘의 사랑스런 모습에 긍정적이다. 브라이언과 아리엘은 서로에게 와인과 맥주 맛에 대해 가르쳐 주며 문화 차이를 이해하려 한다. 아리엘 부부가 정부 만안에 참석할 때 감기 걸린 보모 대신 브라이언은 아이엘의 아이들들 돌보기도 한다. 아이들을 대하는 브라이언을 바라보며 아리엘은 더욱 브라이언과 친밀감을 느낀다.
브라이언의 작품이 신인 작가상을 받고 <뉴요커>지에 게재된다. 아리엘은 크게 기뻐하며 당신의 미래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시상식 날 아리엘 부부와 브라이언의 부모님이 참석한다. 제인은 브라이언을 그녀의 상관인 출판사 편집장에게 소개하고, 브라이언은 좋은 평가와 함께 격려를 받는다.
브라이언은 신인상 상금으로 받은 6천 달러를 털어서 반지를 산다. 다음 날 호텔방에서 브라이언은 매일 오후 5시에서 7시 사이에만 만나는 걸로 만족하지 못하겠다며 아리엘에게 청혼한다. 아리엘은 우리 사이엔 신뢰가 있었는데 당신이 방금 그걸 깨버렸다고 말한다.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아이들에게 좋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한편 돌아서서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며 브라이언과 깊게 포옹한다. 아리엘의 복잡한 심경을 말하는 듯 이 장면에서 카메라의 앵글은 흔들리고 있다. 그 둘은 다음 날 오후 4시에 만나 떠나자고 약속한다.
다음 날 아리엘의 남편 발레리가 집으로 찾아와서 합의를 깨고 배신했다며 브라이언의 따귀를 때린다. 그리고 사랑에 빠졌다면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라며 아리엘을 부탁하고 나간다. 오후 4시, 아리엘과 약속한 생레지스 호텔 방으로 간 브라이언은 아리엘이 쓴 한 장의 편지를 전해 받는다. 브라이언을 진정 사랑하지만 당신 마음을 내 마음보다 더 소중하게 여길 거라는 남편의 마음에 이제 자기가 답할 차례라고 하며, 작별을 고하게 되어서 너무 슬프다고 한다.
이렇게 브라이언은 아리엘과 헤어졌고 연락도 끊었다. 고통스런 기간에 브라이언은 자신의 체험을 담은 <인어>라는 소설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 아리엘은 그의 뮤즈였다. 세월이 흐르고, 아내와 함께 유모차를 끌고 구겐하임 미술관 앞을 지나던 브라이언은 우연히 아리엘 부부를 만난다. 공교롭게 그곳은 아리엘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곳이다. 인사를 나누며 아리엘은 장갑을 벗어 브라이언에게 반지를 끼고 있는 자신의 손을 보여준다. 브라이언이 청혼할 때 준 반지이다.
아리엘이 브라이언을 떠났기에 그들의 사랑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손가락에 낀 아리엘의 반지가 그것을 말한다. 별은 하늘에 있을 때 반짝인다. 땅에 떨어지면 운석(隕石)조각이다. 결혼은 외교관 발레리와 했지만 이루지 못했던 그녀의 진짜 사랑 브라이언은 언제나 그녀의 가슴속에 살아 있다. 결혼은 판단이고 사랑은 운명이다. 에로스가 손짓할 때 운명은 한쪽 눈을 감는다. 그녀는 판단과 운명을 구분했다.
개봉 : 2015.11.19.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로맨스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97분
- 낭만 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