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방목하던 날

힐링 시네마 강촌 야외수업 -

by 낭만천사 유광영


가축화된 동물은 야생의 동물보다 뇌가 작다. 개의 뇌는 늑대보다 작고, 고양이의 뇌는 삵괭이 보다 작다. 인간에게 의지하여 살다 보니 야생의 다양한 환경에 접할 기회를 잃었고 따라서 뇌가 처리해야 할 정보가 적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약 3천 년 전부터 인간의 뇌가 작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문자의 사용이다. 문자로 기록하면서 기억에만 의존하여 살아가야 할 경우가 많이 줄었다.


지금은 어떤가?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인간이 뇌를 사용할 일이 더욱 적어졌다. 인터넷이 대신하고 AI가 알아서 한다. 인간은 스스로를 가축화한 유일한 동물이다.


가축화된 동물은 생명체가 가진 직관력이 떨어진다. 주도적으로 삶을 개척하기 보다는 정해진 틀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뇌가 게을러진다. 게으른 뇌의 영혼은 목마르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방목(放牧)하여야 한다. 그래야 게으른 영감(靈感)을 깨울 수 있다. 야생으로 돌아가지는 못하겠지만, 방목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방목을 통하여 우리의 직관력에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도, 마호메트도 때때로 홀로 광야에 나가 스스로를 방목하였다. 생떽쥐뻬리도 혼자 사막을 비행하면서 스스로 방목의 시간을 가졌다. 방목은 영적(靈的, spiritual) 세계와의 접속이다.


10월 08일에 우리 힐링 시네마반의 회원들은 스스로를 방목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촌 골짜기의 바람에 몸을 담그고 햇살에 마음을 적셨다. 차에서 내리자 나는 길가의 코스모스를 꺾어서 여성 회원들 머리에 한 송이씩 꽂아 주었다.


“어머 이렇게 머리에 꽃을 꽂아본 적이 언제야!

그런데 이렇고 하고 다니면 누가 미친 사람이라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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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방목은 제어된 미침(發狂)이다. 제어된 미침은 삶의 조미료이다. 조미료를 듬뿍 넣으면 음식을 망치지만 적절히 넣으면 맛이 훌륭해지지 않는가?


오늘은 방목된 날이다. 방목된 소가 굳이 사료 먹는 것을 보았는가? 맛있고 싱싱한 자연산 목초가 많은데…. 꽃 하나 꽂는 것은 방목장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다. 마음이 열린다.


좋으면 그냥 웃고, 즐거우면 뛰어오르자. 김유정 문학촌 입구 탁 트인 넓은 잔디 마당에 도착했을 때 나는 옆의 ○○의 손목을 잡았다.


“아, 왜 이러세요?”


“저 잔디밭을 보기만 하면 아깝지 않습니까?

우리 ‘나 잡아봐라’ 한 번 할까요?

바로 좋은 기회입니다.

같이 뜁시다.”


“뭐라구요? 아, 이 손 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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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을 듣기도 전에 나는 손목을 잡고 냅다 뛰쳐나갔다. 영화 <졸업>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캐더린 로스를 잡고 달리듯이 잔디밭의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숨이 차오른다. 엔진의 터보차저(turbo charger)처럼 가슴 속으로 신선한 공기가 압축되어 들어간다. 헉헉거리는 내 콧잔등에 가을의 햇살이 떨어진다. 모두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는다. 방목의 즐거움이다. 제어된 발광이다. 조미료의 맛이다.


김유정 기념전시관에는 29세에 요절한 천재 작가 김유정의 작품과 일대기를 잘 정리하여 놓았다. 어쩜 저렇게 젊은 나이에 시대의 아픔과 서민의 고통에 그렇게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을까? 피상적 관념의 계몽 소설과는 달리 김유정의 작품은 진솔한 체험에서 우러나는 동정심으로 농민의 삶에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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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것을 좋아했으며, 산골에서 직접 농민들의 삶을 접하며 살았다. 일제와 지주에게 이중으로 수탈당하는 소작인의 비참한 삶에 가슴이 시려왔고, 고통을 넘어선 해학과 웃음 뒤의 비애를 떨굴 수 없었다. 그만큼 그는 그 시대 농민을 진정 사랑했고 그들의 애환을 연민으로 바라보았다. 김유정이 오래 살았다면 아마도 노벨 문학상을 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정 생가의 점순이 동상 옆에서 점순이와 같은 높이로 키를 낮춰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두 유쾌하게 웃고 있지만, 그 시대의 아픔과 인간의 삶에 대해 잠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이 여유로움이 알지 못하는 이들이 흘린 피땀의 결과에 빚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겸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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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촌 근방에 있는 ‘유정 닭갈비’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침을 생략하고 온 사람이 많아 닭갈비를 모두 맛있게 먹고 남은 양념에 밥을 볶아 싹싹 긁어먹었다. 이럴줄 알았으면 차 안에서 간식을 안 먹는 건데….


향토 음식은 현지에 가서 먹어야지 제맛이 나는 것을 볼 때, 맛이 단순히 혀로만 느끼는 감각이 아닌 것 같다. 닭갈비에 관한 노하우 그리고 전통과 문화가 버무려져 우리는 이미 맛있게 먹을 준비를 했었다. 인지의 힘이다. 어쨌든 더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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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의 인물, 춘천의 맛을 섭렵하였으니 이제 춘천의 낭만을 즐길 차례이다. 레일 바이크와 낭만열차 탑승장으로 이동하였다. 김유정역을 중심으로 문학촌, 생가, 식당가, 카페 등이 모두 도보로 접근이 가능한 거리에 있어 시간 낭비 없이 바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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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에 있어서 기차는 단순히 교통수단이 아니다. 기차를 탄다는 것은 꿈을 여는 열쇠 꾸러미를 손에 쥐는 것이다. 승강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인과의 에피소드, 밤 기차를 타고 멀리 떠날 때의 설렘, 기차를 타고 상경하여 청춘의 꿈을 이루려는 젊은이 ….


기차를 타다가 귀인을 만날 것 같고, 밤차를 타고 가면 가슴이 설레고,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면 성공해서 돌아올 것 같은 막연한 신비감에 전율이 일었다. 우리는 그런 세대이다. 그래서 열차의 낭만을 제대로 즐길 능력이 있다. 그런데 기왕이면 <토마스와 친구들>에 나오는 증기기관차처럼 ‘칙칙폭폭’하고 달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피천득은 스물한 살 오월에 불현듯 밤 기차를 타고 피서지를 다녀와서 와서 수필 <오월>을 남겼다. 기차는 그런 마법이 있다. 해리포터는 킹스크로스 기차역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가는 기차를 탔다.


오늘 낭만열차는 우리에게 어떤 마법을 남길 것인가? 하늘의 흰 구름은 기차의 마법을 아는 듯 하지만 천기누설은 안 된다고 입 다물고 있다. 훗날 오늘을 생각하면 미소 지을 나 자신이 떠오른다.


낭만열차는 강물과 경주하듯 앞서거니 뒷서거니 구불구불 달렸다. 터널을 지나고 다리를 건넜다. 기차는 동심을 열고, 기차는 추억을 만들고, 기차는 가식의 껍질을 벗겨 마음을 연결한다.


그래서 기차 여행을 하면 우리는 모두 친구가 된다. 옆 사람과 젊은 시절 추억담을 나눈다. 강 건너 산비탈의 도토리처럼 고만고만한 추억이다. 오늘 우리는 방목장 친구이다.


발로 밟아 달리는 레일 바이크는 어떤가? 나의 다리 근육으로 움직인다. 운명을 끌고 가는 우리와 같다. 힘들면 천천히…, 신날 때에는 온 힘을 다해 페달을 밟다가 경사진 코스에서는 브레이크를 당겼다. 천천히 갈 때, 최선을 다할 때, 때로는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때가 필요한 우리의 삶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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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클럽 조명의 터널 안에서는 쿵짝쿵짝 몸을 흔들고, 어둠 속에서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비눗방울 터널에서는 두더지 잡기 놀이하듯 손바닥을 휘둘러 방울을 톡톡 터뜨렸다.


아, 신난다! 방목의 필요가 없는 백로가 강가에서 물끄러미 바라본다. 백로는 우리가 부러운 걸까? 늘 이런 즐거움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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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바이크도 탔고, 낭만열차 여행도 하였는데, 이제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궁금함을 안고 산자락에 있는 카페에 들어섰다. 꽤 넓은 공간에 꽃과 화분으로 분위기 있게 실내를 꾸몄다. 유화도 벽에 걸려있고 테이블과 의자도 조형미가 있다. 예술하는 사람의 손을 탄 것 같다.


카페 한쪽 방에는 즉석 스티커 사진기와 후크선장 모자, 토끼 머리 머리띠, 왕관, 아트 모자, 선글라스 등의 소품이 놓여있었다. 나는 이것들을 몽땅 가져와서 우리 일행에게 하나씩 머리에 씌워 주었다.


처음에는 쑥스럽다고 거절하더니 일단 쓰고 나니까, 가면무도회에 나온 사람처럼 용감하게(?) 포즈를 취한다. 익명의 힘이다. 보이지 않는 그늘에 숨으면 용감해진다. 이런 모습 저런 자세로 우스꽝스럽게 단체 사진까지 찍었다. 흐흐 진작 그럴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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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오늘은 방목된 날이잖아. 제어된 발광(發狂)의 날이잖아. 발광(發狂)하지 못한 광기는 나중에 히스테리가 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이미 프로이드가 주장했고 21세기 뇌과학이 증명하였다.


제어된 발광은 진짜 발광을 예방하는 백신이다. 제어된 발광을 하도록 멍석을 깔아 놓는 일도 인생학교 존재의의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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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오늘 우리는

김유정의 문학촌에서 시대적 사유의 힘을,

레일바이크에서 건강한 두 다리의 힘을,

낭만열차에서 메말랐던 감성의 힘을,

카페에서 억눌렀던 발광의 힘을

체험했다.


게으른 두뇌를 흔들고 목마른 영혼을 적셨다. 스스로를 방목한 효과이다.


가끔 이러한 방목을 즐기자.

약간의 발광도 해보자.

약간의 광기는 인생의 소금이다.



- 낭만천사 유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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