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미 비포 유
이 영화는 <귀여운 여인>과 <버켓 리스트>의 컨셉 같은 분위기로 시작된다. 가난하지만 마음이 아이같이 순수한 여인과 금수저 집안의 전신마비 환자이며 안락사를 원하는 윌 사이에 로맨틱한 감정이 싹트는 장면에서 뻔한 클리쉐를 반복하는 듯했다. 천국의 향기를 담은 듯한 루이자의 구김살 없는 천진함과 당당함은 어떤 가식의 껍질도 뚫을 만큼 관통력이 크다. 처음에는 까탈스러웠지만 윌은 곧 그 관통력에 가슴이 뚫려 마음을 열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까칠함의 껍질이 두꺼운 만큼 소통을 갈구하는 윌의 마음은 간절했다. 사고를 당한 후 한 번도 외출을 하지 않았던 윌이 루이자와 함께 산책을 하고, 음악회에도 가고, 휴양지로 여행을 떠난다. 루이자로 인한 윌의 변화에 그의 어머니는 희망을 갖는 듯 했다. 그러나 죽음을 두고 저울질하는 순간부터 이 영화는 <귀여운 여인>과 무게감을 달리한다. 과거 활동적이고 화려했던 자신의 모습을 놓지 못하는 윌은 결국 바뀐 현실에서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다. 루이자의 등장으로 한 때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사랑이 커지면서 결국 자신의 무기력함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러나 루이자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마지막 그의 길에 품격을 더하는 계기가 된다.
전신마비 환자는 스티븐 호킹도 있고, 오체불만족도 있고, 그리고 이 영화의 주인공 윌도 있다. “어떤 것이 더 낫고 무엇이 더 못하다”의 문제가 아니다. 운명은 하늘이 정하고 그 품격은 내가 정한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두 강도도 그랬다. 다 같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운명이었지만 마지막 순간 그 운명의 품격을 가른 것은 그들 자신이었다.
생명의 존엄성 운운하면서 개인의 비극을 방관하는 것은 대중의 비겁함과 통념에의 복종이다. 니체가 말한 ‘무리(노예)의 도덕’이다. 무리의 도덕으로부터 자유로워짐은 깨달은 자의 도덕이고 자유의지이다. 깨달자의 자유의지와 도덕이 아니라면 그것은 방종(放縱)과 만용(蠻勇)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무리의 도덕과 만용과 자유의지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햄릿의 고뇌를 거쳐서 나온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에 ‘무리의 도덕’ 잣대를 갖다 댈 수 있을까?
그 운명의 등에 올라타 보지 않은 자가 어찌 거기서 내려오는 법을 알겠는가? 우리는 다만 겸허해야 한다. 그리고 감사해야 한다. 이 아름다운 지구별에 한 번이라도 발을 디뎠다는 운명에 대해서…. 그리고 그 품격은 각자가 정한다. 너와 나의 만남도 그렇다. 만남으로 인연을 맺었지만 그 뒷모습은 나의 몸짓이다. 아름다운 몸짓은 나의 몫이다. 나의 품격이다.
이 영화에서 윌은 향기로운 못짓을 남겼다. 루이자에게 어울리는 향수를 찾아준 것은 그 상징이다. 아마 루이자는 평생 그 향수만 쓰게 될 것 같다. 그 향에는 윌의 아름다운 못짓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자신 운명의 품격을 그는 그렇게 정했다. 짧은 운명, 짧은 사랑, 그리고 긴 여운. 윌은 그렇게 삶을 마감했다. 스위스의 존엄사(안락사) 전문병원 디그니타스(Dignitas)에서다. 디그니타스는 ‘존엄’을 뜻하는 라틴어이다.
윌의 마음을 적신 것은 루이자가 불러준 ‘몰라 홍키’ 노래라든가, 루이자가 솔직하게 얘기하는 반짝이 장화와 노랑 줄무늬 뒝벌 스타킹 같은 유치한 이야기이다. 그런 이야기가 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유치한 이야기와 유치한 표정이 아름다운 것은 진지한 사랑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루이자가 진지하게 얘기할 때마다 드러나는 이마의 선명한 주름살 사이에는 그녀의 진심이 가득 담겨있다. 순수한 그녀의 마음이 지닌 관통력은 그러한 표정에서 나온다. 윌이 면도를 하도록 마음을 움직인 것도 루이자 주름살에 담겨있던 그런 힘이다. 편안하고 익숙한 것에서 신선함을 발견할 때 행복은 파랑새처럼 나타난다.
윌이 루이자를 사랑했기 때문에 디그니타스 병원으로 갈 것을 더욱 분명히 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진정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그는 운명의 품격을 지켰다. 운명은 하늘이 정하지만 그 품격은 자신이 정했다. 루이자가 애원했지만 윌은 스스로 결정했고 스스로의 결정에 따랐다. 루이자도 결국 그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다. 힘들고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녀 또한 윌을 진정 사랑했기 때문이다.
“대담하게 살아요. 끝까지 밀어붙여요. 안주하지 말아요. 줄무늬 스타킹을 당당하게 입어요.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에요.” 윌의 유언대로 루이자는 새롭고 대담하게 세상을 살아 갈 것이다. 가슴속에 언제나 윌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중간중간 나오는 포옹과 스킨십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것처럼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였다. 우리 사회에서 존엄사(안락사) 문제를 공론화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육장 같은 요양원의 신세를 져야 하는 시대에 이 문제를 계속 외면하기는 어렵다. 윌과 루이자의 이야기가 점점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개봉 : 2016.06.01.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멜로/로맨스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10분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