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나의 로맨틱 가이드
평범한 일에 낭만의 옷을 입혀라
비 오는 날에 무지개가 뜬다
흰 구름이 솜사탕이 된다
낭만의 힘이다
세월에 녹아서 억만년을 달려왔다
생명을 따라 또 억만년을 달려간다.
언제 어디든 바로 달려간다
낭만은 힘이 세다
한 송이 들꽃으로 그녀 가슴을 설레게 하라
한마디 칭찬으로 그의 자신감을 세워 줘라
뜨거운 입맞춤으로 심장의 박동을 올려라
낭만의 매직(magic)이다.
힘들어도 웃을 수 있다
돈 없어도 너그러울 수있다
나이 들어도 싱그러울 수 있다
행복의 매직(magic)은 낭만의 파도를 타고 온다
그리고 오늘도 파도는 출렁거린다
- 유 광 영 -
영화 <나의 로맨틱 가이드>를 보고 나서 나는 위와 같이 말하고 싶다. 이 영화는 명작이라기보다는 부담 없이 보면서 웃고 즐길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바쁘고 스트레스로 인해 다운되어 있을 때 잠시 기분 풀이로 감상한다면 얼굴 표정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다. 유치한 장면에서 유치하게 웃는 것은 유치한 일이 아니다.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틈새로 새어 나온 메시지가 우리의 공감 코드에 내려앉는다. 그런 자연 반응에 감정을 맡길 때 마음은 편안해진다. 코미디가 필요한 이유이다.
대학 역사 교수에서 해직된 죠지아는 팡글로스 여행사 투어 가이드로 일하고 있다. 교수처럼 여행객들에게 그리스 역사와 문화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하나하나 알려 주려고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나 여행객들은 따분해한다. 관광객 평점이 좋지 않아 늘 급이 낮은 여행객을 배정받는다. 반면에 니코는 여행사 사장 마리아에게 뇌물을 주며 급이 높은 여행객을 배정받고 유적에 대한 설명은 대충하면서 쇼핑과 사진찍기 등으로 요령껏 관광객을 안내한다.
“당신 인생에게 뭘 하고 있는지 질문해 본적 있나요? 인생 계획 같은 것 없나요?”라는 죠지아의 질문에 운전기사 푸피(프로코피의 애칭)는 “어떻게 인생을 설계하나요?”라고 반문하며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하자고 한다. 근무 중이라 커피 마시기 곤란해하는 죠지아에게 “모든 사람들이 커피마실 시간 정도는 가져야 되요” 라고 말한다. 죠지아는 “그런 느슨한 태도가 전형적인 그리스인들의 성향이죠.”라고 응답할 정도로 빡빡한 원칙주의자이다.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수시로 고장나고, 샤워기나 전화기·TV의 고장을 방치하는 것은 그리스인들의 게으른 문화라고 죠지아는 생각한다. “있잖아요 당신네들, 행동을 좀 통일시키고 그놈의 춤은 그만 좀 추시죠”하고 라고 푸피에게 화풀이한다. 털이 수북한 푸피의 수염을 보고 보름달이냐고 비아냥거린다.
죠지아는 시간될 때마다 여행객에게 그리스 문화를 알려 주려 하고, 간식 하나라도 수블라키 같은 그리스식 음식으로 준비한다. 그러나 여행객은 이에 관심이 없고 아이스크림, 치킨 핑거, 감자튀김을 찾는다. 최선을 다해 그리스 유적을 설명해도 관광객 수준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불만이다.
이 때 관광객들 중 어브(Irv)라는 노인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려면 역사책에 나와 있는 공식적인 사실과 함께 사람 사는 추잡한 역사 이야기(섹스 등) 같은 것도 들려주라고 팁을 준다. 28년동안 마법같은 결혼생활을 했다는 어브는 “죠지아 당신도 잠재력을 가졌소. 이 모든 걸 일어나게 하려면 안정하고 마음을 활짝 열어요.” 라고 말한다.
델피의 신전으로 가는 도중 어브의 조언대로 오라클 얘기를 재미있게 하기 위해 죠자아는 가슴이 깊게 파인 블라우스를 입고 요염한 동작으로 몸을 좌우로 흔들어대며 처녀인 오라클이 제우스신에게 간청하는 장면을 흉내낸다. “오 제우스 신이어! 이 몸은 당신의 그릇이어요. 제 몸을 가져가세요. 가지란 말이에요.”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손뼉치며 웃고 환호한다. 푸피가 그 모습을 계속 훔쳐보다가 그만 핸들을 잘못 꺾어 버스는 도로를 이탈한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죠지아에게 푸피가 수염까지 깎은 것도 아마 당신을 좋아해서 그런 것 같으니 가서 얘기 좀 나눠보라고 한다. 바닷가 언덕 위에 서 있는 푸피에게 죠지아가 다가가자 그는 “길 따라 다가오는 아름다운 비경, 음악같은 비경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가까이에서 직감적으로 보고 느끼며 사는 인생이 좋아요. 가장 좋은 자리가 운전석이죠.”라고 말한다. 그리고 하얀색 데이지 꽃 한송이를 꺾어 죠지아에게 내민다. 죠지아는 미소지으며 꽃을 받아 든다.
딱딱한 죠지아의 마음에 틈새를 벌린 것은 데이지 꽃이다. 버스 안에서도 데이지 꽃을 푸피가 몰래 죠지아의 자리에 갖다 놓은 적이 있었는데 죠지아는 다른 사람의 짓이라고 생각했었다. 눈에 들어간 선크림 때문에 마르크가 눈을 깜빡거리는 것을 보고 죠지아는 자기에게 윙크하는 줄 오해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당신 열정을 좋아해요. 그런데 당신은 이걸 보고 느끼기엔 너무 바쁜 사람이에요. 여기 봐요.” 하면서 푸피는 죠지아의 왼쪽 젖가슴을 만진다. 당혹스러워 하는 그녀에게 “알아요. 당신 가슴을 만지고 있다는 것을” 라고 말한다. 죠지아는 “그래요, 좋아요” 하며 그의 손을 살짝 떼어놓는다.
푸피는 돌아서서 언덕을 내려오고, 데이지 꽃을 받아든 죠지아는 푸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에게해(海)의 바람을 맞아 찰랑거린다. 언덕 아래에서 바라보던 여행객들은 두 사람을 향해 환호성을 올리면서 사진을 찍는다. 죠지아는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한다. 이후 푸피를 대하는 죠지아의 눈길이 달라진다. 감성의 불꽃을 당기는데 스킨십만큼 점화력이 좋은 것은 없다
델피에서 어브는 관광객의 질문에 대해 덕담과 함께 지혜롭게 답변함으로써 그럴듯하게 오라클의 역할을 하여 일행의 박수를 받는다.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바나비는 보행 보조기 없이도 걷게 된다. 어브가 아침에 날씨가 좋아지고 바나비가 제대로 걷게 되리라고 외운 주문(呪文)이 모두 들어맞자 사람들은 놀라워하며 어비를 어비네이터(어브 + 터미네이터) 또는 어비클(어브 + 오라클)이라고 부른다.
저녁 파티에서 사람들이 왠지 더 건강해지고 활력있어 보이는 것이 죠지아는 델피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게이터는 니코가 준 게이 티셔츠(게이를 꼬시는 문구가 적혀있는) 입고 있다가 현지의 동성애자들에게 둘러 싸인다. 죠지아가 그 문구를 제대로 알려주자 분노하여 게이터는 니코를 풀장에 떠밀어 빠뜨리고 동성애자들은 흥분하여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어 난장판을 벌인다.
어브는 죠지아에게 푸피가 좋은 사람이라고 얘기해준다. 죠지아는 저녁에 물가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푸피를 찾아가 함께 와인을 마신다. 푸피가 과일 한 조각을 죠지아의 입에 넣어준다. 그녀는 푸피에게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며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한 푸피의 인생관은 시처럼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얘기한다. 푸피는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 뒤에서 부드럽게 껴안는다. 죠지아는 돌아서 마주 보고 둘은 격렬하게 키스한다. 그리고 호텔방에 돌아와 함께 침대에 눕는다. 밖에서 소리가 나서 나와보니 어브는 이혼녀들과 벌써 잠자리를 끝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고 있다. 복도에서 마주친 그들은 멋쩍게 웃는다.
다음 날 아침 버스 안에서 죠지아는 그날 일정인 미케네 묘지, 수도원, 데살로니카 박물관 관광을 다 생략하고 어린 소녀 카이틀린이 원하는 해변으로 일행을 데리고 가겠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신나는 노래를 틀고 춤을 추자고 말한다. 모두 환성을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을 흔들어 대고, 버스는 해변으로 달려간다.
수영복 차림으로 파트너를 업고 모래사장 달리기, 바다를 향해 골프 드라이버샷, 배드민턴, 물속에 잠수하여 상대 팬티 벗기기, 모두 흥에 겨워 신나게 놀고 있다. 반벌거숭이가 된 만큼 자연스럽게 원시의 욕구가 발산되어 아이들처럼 뛰어 다니고, 문어를 가지고 여자들을 놀리기도 한다. 푸피의 조카 두디도 합세하여 케이틀린과 친구가 된다. 여태 짜증만 내던 케이틀린은 두디와 함께 환한 모습으로 해변을 누빈다.
밤에 모닥불 옆에 둘러앉아 죠지아는 노래 부르고 푸피는 기타를 친다. 마르크는 팬케익을 구워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모닥불을 더 크게 피우기 위해 죠지아가 재킷을 벗어서 모닥불에 던지고, 마르크는 핸드폰을 던져 태워버린다. 사람들은 환호한다. 분위기가 절정에 이를 때 어브는 이제 자신의 역할이 끝났다는 듯 아내의 환상을 보다가 해변에서 쓰러져 병원에 실려간다.
바닷가에서 마음껏 하루를 보낸 그들은 다음날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관심있게 관람하면서 죠지아에게 설명해달라고 한다. 처음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죠지아는 딱딱한 역사적 사실만 얘기하지 않고 신전 기둥 사이의 바람 소리가 음악과 같이 들린다며 과거의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라고 감성을 자극한다. 여행객들은 귀 기울여 듣는다. 게이터가 그리스의 병원을 보고 싶다고 제안하고 모두 자연스럽게 동의하여 어브에게 병문안 간다. 어브는 일행에 둘러싸여 선물을 받고 기뻐한다. 바닷가에서 체험한 낭만의 힘이다.
여행 마지막 날 파티에서 죠지아는 행복해 하는 관광객들의 만장일치로 최고의 평점을 받고 마리아는 죠지아에게 20%의 급료를 인상한다. 죠지아는 푸피에게 자기의 전속 운전기사로 일할 것을 부탁한다. 푸피는 사랑하는 죠지아를 위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미시간 대학에서 제안이 왔지만 죠지아는 여행사에 남아 가이드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사람들은 죠지아와 어브를 위해 건배한다. 죠지아와 푸피는 행복한 표정으로 키스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내린다.
푸피가 버스 운전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한 것처럼, 평범한 이야기도 낭만을 입히면 시가 된다. 평범한 들꽃이 때로는 다이아몬드 반지보다 더 마음을 움직인다. 낭만스런 이야기를 듣고 싸구려 기념품에 20달러나 지불했는데도 마음이 흐믓하다. 바닷가에서 낭만에 젖어 하루를 보낸 그들은 다음날 새로운 기분으로 아테네를 관광했다. 다른 곳보다 바닷가에서 보낸 그 하루의 추억이 가슴에 더 오랫동안 살아 있을 것 같다. 낭만의 힘이다. 낭만은 행복의 매직(magic)을 실어 나르는 파도이다. 오늘도 파도는 출렁거린다.
개봉 : 2009.08.27.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국가 : 미국, 스페인
러닝타임 : 94분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