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강을 깨워 감성을 띄워라.

영화 - <일포스티노>

by 낭만천사 유광영

강은 흐른다. 시간도 흐른다. 그러나 강은 늘 흐르지만, 시간은 늘 흐르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과거에, 어떤 이에게는 미래에 고정된 채 얼어붙어 있다. 그들은 얼어붙은 시간에 싸여 세상을 떠난다. 백 년을 살아도 흐른 시간은 짧다. 얼음덩이가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얼어붙지 않은 잠시만 살았을 뿐이다. 시간의 강은 동면에서 깨어나야 흐른다.


“이래 봬도 왕년에는 말이야 한참 날렸지. 전 세계를 다 누비고 다녔다구.”

“언젠가 나는 그 자리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능력을 보여 줄거야.”


이렇게만 말한다면 그들은 ‘왕년’에 살고 있고, 그들은 ‘언젠가’에만 숨 쉬고 있다. 그들에게 시간의 강은 그 자리에 동면 상태이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물리적 변화가 아니다. 시간의 수레바퀴를 돌리는 것은 고동치는 가슴으로부터 울리는 감성의 진동이다. 생생한 호기심, 확장된 사유, 깊은 공감과 연민이 함께 할 때 우리는 살아있으며, 시간은 힘차게 앞으로 나간다.


시간의 강을 깨워 감성을 띄워라! 우주의 미소에 손을 흔들어 답하라. 그것은 결국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다. 영화 <일포스티노>의 마리오는 시간의 강에서 깨어나자마자 안타깝게도 한 울림을 세상에 던지고 떠났다. 인생은 짧고 시(詩)는 길다.


시인, 외교관, 정치인 등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을 체험한 파블로 네루다는 그의 뛰어난 시적 재능과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라틴 아메리카 민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시대의 아픔 속에서 그들의 고통에 연민을 느껴 세상을 향해 나섰다. 그로 인해 탄압과 환영받기를 거듭하면서 그는 시간의 강을 깨웠다. 이 영화는 그의 망명지인 이태리의 작은 섬에서 그의 인간적 매력에 감화받은 마리오가 어떻게 시를 통해 감성이 깨어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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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만 삶이 척박한 지중해의 작은 섬. 예전부터 살아오던 대로 목선으로 고기를 잡고, 당나귀에 짐을 싣고 다니는 순박한 주민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마리오의 아버지도 그랬고 마리오의 장모도 그렇다. 선거 때 나타나는 정치가에게 속았으면서 또 속는다. 시간의 강은 그렇게 같은 자리를 맴돌다 잠들었다.


이 섬의 어부들은 정당한 권리와 요구를 떳떳하게 주장할 만큼 깨어있지 못하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정치인에게 제대로 항의하지도 못하고, 겨우 조개 한 봉지 사면서 가격을 깎자는 요구에 맥없이 굴복하다. 그들의 시간은 독재와 권위 시대에 얼어붙은 채 감성과 의식이 마비되었다. 보다 못한 마리오가 딱해서 “착취당하고 사는 어부가 300리라를 불렀으면 그냥 줄 것이지 그걸 또 깎아?” 하고 거들지만 “네 놈이 무슨 상관이야?” 라고 어부들에게 오히려 핀잔만 듣는다.


어느 날 미국에서 배달된 친척의 엽서를 마리오가 관심 있게 본다. 시간의 강이 기지개를 켤듯한 징조다. 얼마 후 세계적인 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망명 생활을 하러 이 작은 섬에 온다. 우편 배달부가 된 마리오는 연애 시로 여자에게 인기가 많은 네루다에게 관심을 가진다. 시를 쓰면 여자들이 좋아할 것 같아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네루다와 만남의 시간을 이어 간다. 메시지를 전하는 우편 배달부에게 왠지 깨달음도 전해질 것 같은 암시가 느껴진다.


마리오는 네루다의 영향으로 시를 읽게 되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운율과 시적 메타포가 주는 힘을 깨달아 간다.


“예를들 어 하늘이 운다면 그게 무슨 뜻이지?”

“비가 오는 거죠”


“맞았어. 그런게 은유야.”


“마리오, 난 내가 쓴 글 이외의 말로 그 시를 표현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 뿐이야 ”


“저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어떻게 시인이 되셨어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주위를 감상해보게.”


“그러면 은유를 쓰게 되나요?”


“틀림없을 거야.”

네루다는 바닷가에서 마리오에게 바다에 관한 그의 시를 읊어주며 소감을 묻는다.


“단어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바다처럼 말이지?”


“맞았어요. 바다처럼요. 멀미까지 느꼈어요.”


“그건 운율이라는 거야.”


“마치 배가 단어들로 이리저리 튕겨지는 느낌이었어요."


“배가 단어들로 튕겨진다고? 그게 은유야.”


“제가 세상을 설명할 수도 있단 말씀인가요? 바다와 하늘과 비와 구름 등이 있는 이 세상이 다른 것의 은유란 말인가요?”


이렇게 네루다와의 대화를 통해 마리오는 시적 은유와 운율이 주는 힘을 느끼게 되고 바닷가를 혼자 산책하며 시적 상상력을 키운다.


그러던 중 마리오는 편지를 배달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베아트리체에게 첫눈에 반하고 네루다의 도움을 청한다.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


“심각한 병이 아니야. 치료약이 있으니까.”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


베아트리체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고 싶어 연애 시 한 편을 네루다에게 부탁한다.


“베아트리체를 위한 시를 한 편 써주시겠어요?”


“난, 누군지도 모르는데. 시인은 영감의 대상을 알 필요가 있다네.”


사랑을 위해 대담해진 마리오는 이 시인에게 핀잔을 준다.


“시 한 편도 쓰지 못하면 어떻게 노벨상을 받겠어요?”


이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라니까 대뜸 “베아트리체 루소”라고 하는 마리오에게서 사랑을 확인한 네루다는 마리오와 함께 베아트리체의 주점에 간다. 베아트리체가 보는 앞에서 마리오의 노트에 “나의 절친한 친구이며 동지인 마리오에게 – 파블로 네루다 드림”이라고 쓰고 서명을 해 준다.


“이제 자네는 시인이야”


베아트리체는 마리오를 호감을 갖고 다시 보게 된다. 바닷가를 함께 산책할 때 마리오는 자신의 마음을 담아 네루다의 시를 읊어주며 그녀의 환심을 산다.


“베아트리체 루소, 베아트리체 당신의 미소가 나비 날개처럼 펼져집니다.”

당신의 미소는 장미요, 땅에서 움튼 새싹이요. 솟아오르는 물줄기입니다.

그대의 미소는 부서지는 은빛 파도이며…. ”


“벌거숭이

당신은 당신의 손처럼 섬세합니다.


매끄럽고 소박하며 자그마한

둥그스름하며 투명한 달 곡선

사과처럼 향긋하며


벌거숭이

당신은 쌀알처럼 연약합니다.


벌거숭이

당신은 쿠바의 밤처럼 푸르릅니다.

당신의 머리엔

포도나무와 별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여름철 사원처럼

웅장하고 황금빛입니다.


무인도의 밤처럼 섬세한 당신

당신의 머리카락엔 별빛이….”


이렇게 로맨틱하고 은유적인 사랑 고백으로 마리오는 베아트리체의 마음을 얻게 된다. 조카딸이 마리오의 유혹에 빠졌다고 생각한 숙모는 네루다를 찾아가 마리오가 조카딸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당부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시인이며 나의 동지인 분이여, 그대가 날 이렇게 만들었으니 날 이 곤경에서 구해주세요. 내게 책을 주었고 우표를 붙일 때나 이용하던 혓바닥을 다른 데 사용하도록 가르쳐 주었으니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은 그대 책임입니다.”


“아닐세. 난 이번 일에 아무런 상관이 없다네. 책을 준 적은 있으나 내 시를 도용하라 한 적은 없네. 내가 마틸다를 위해 쓴 시를 베아트리체에게 주다니”


“시란 시를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입니다.”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대범해진다. 마리오와 베아트리체의 사랑은 이제 서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 불이 붙었다. 결국 마리오의 소원대로 네루다가 증인을 서는 가운데 축복 속에 둘은 결혼식을 올린다.


“나의 친구 마리오를 위해 축배를 들고자 합니다. 저의 조그만 성의가 기쁨이 되었으면 합니다. 건배!”


수배가 풀린 네루다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몇 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다. 네루다가 유럽에 왔을 때 인터뷰한 기사에도 마리오와 이곳 이야기가 없자 베아트리체와 장모는 먹을 걸 다 먹은 새는 날아가 버리는 법이라고 하며 실망한다. 마리오는 바쁜 분이라 아는 사람 이야기를 다 할 수 없다고 네루다를 두둔한다. 그는 아들 이름을 ‘파블로 네루다’의 이름을 따서 ‘파블리토’라고 지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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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마리오에게 한 통의 편지가 배달된다. 네루다의 남은 짐을 칠레로 보내달라고 그의 비서가 보낸 극히 사무적인 편지이다. 장모는 인간이란 필요할 때만 친절한 법이라며 네루다를 비난하고 자신들에게 인사 한마디 없음을 서운해 한 베아트리체는 아들 이름을 ‘파블리토’라고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도 마리오는 실망하지 않고 네루다와 함께 했던 시간을 그리워 한다.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짐을 보내면서 음성 편지를 녹음한다.


“전 마리오입니다. 절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선생님 친구분들께 우리 섬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해보라고 한 적이 있었죠. 전 그때 아무말도 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알 것 같아 이 테이프를 보냅니다.”


그가 살고 있는 칼리 디 소토의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 나뭇 가지에 부는 바람 소리, 어부의 서글픈 그물 소리, 성당의 종소리, 밤하늘의 별들이 이토록 아름다운지 몰랐다.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마리오는 드디어 네루다에게 바치는 시 한 편을 쓰게 되고 이 시를 사회주의자들의 집회에서 낭독하기로 했음을 함께 음성 편지에 담는다.


5년 후 옛 망명지를 방문한 네루다 부부는 마리오를 찾아 베아트리체의 주점에 들어선다. 문을 열자 마리오를 꼭 빼닮은 아이가 튀어나오고 “파블리토”라고 아이를 부르는 베아트리체와 마주친다. 그녀로부터 마리오가 군대에 의해 폭력적으로 진압당한 사회주의자들의 집회에서 깔려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파블리토가 태어나기 며칠 전의 일이었다고 하면서 보내지 못한 음성 편지의 녹음 테잎을 들려준다. 네루다는 마리오와의 추억이 어린 바닷가를 거닐며 회상에 잠긴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날 찾아왔다.

난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그것이 겨울이었는지 강이었는지

언제 어떻게인지 난 모른다.


그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고

책으로 읽은 것도 아니고 침묵도 아니다.


내가 헤매고 다니더 길거리에서

밤의 한 자락에서 뜻하지 않은 타인에게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고독한 귀로길에서


그곳에서

나의 마음이 움직였다.”


- 파블로 네루다 -


시적 메타포는 우주와 대화할 수 있는 번역기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과 현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우주의 움직임을 경험하는 일이다. 깨어있는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이다. 마리오는 네루다를 만나 시적 메타포를 깨달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담았다.


“시간의 강을 깨워 감성을 띄워라. 얼음덩이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생생한 감성을 가진 자만이 우주의 미소에 손을 흔들 수 있다.”



개봉 : 1996.03.09.

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국가 : 이탈리아, 프랑스, 벨기에

러닝타임 : 114분




- 낭만천사 유광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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