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는 떨어져서 보아야 하지만…

by 낭만천사 유광영

모자이크는 여러 가지 색상의 돌이나 유리 조각, 금속, 조개껍데기, 타일 따위를 조각조각 이어 붙여서 무늬나 그림을 표현하는 기법이다. 건축물의 바닥이나 벽면 등을 장식하고, 공예품에서는 표면에 회화효과(繪畵效果)나 모양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모자이크 조각이 작고 그 숫자가 많을수록 보다 정교한 표현이 가능하다.


만약에 모자이크 장식이나 그림을 아주 가까이서 본다면 우리는 그 형태와 전체 그림을 이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가까이에서는 불규칙한 조각이 우선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둘 때 모자이크가 나타내고자 하는 모양의 윤곽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다. 큰 행사 때 사용하는 카드섹션도 같은 원리이다.


행복은 가까이 있으면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모자이크를 닮았다. 시간이 지났거나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을 때 지난 그 순간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했었는지 새삼 깨닫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격정적인 순간도 있으나 대부분 잔잔한 행복은 그 순간에 실감하기보다는 나중에 회상하면서 미소 짓게 만든다. 사소한 일상이라도 행복은 차별하지 않고 곁에 머무는데 모자이크의 단순한 조각처럼 무심코 흘려보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페루 리마에 있는 금(gold)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스페인의 침략을 받을 당시 잉카 왕국에는 금이 흔해서 각종 일상 용품과 벽지까지 금으로 장식했다고 한다. 대부분 약탈당했지만 박물관에 있는 전시품을 볼 때 그 당시 금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는지 미루어 짐작된다. 이제 그 금 장식물이 시대와 일상을 떠나 박물관에 자리하고 있다. 소더비 경매시장에서 비싸게 팔릴 수 있는 존재물이 되었으나 일상에서 누리지 못하는 박제된 가치이다.


행복은 떨어져서 보아야 하는 모자이크를 닮았다. 그러나 그러하지 아니하고도 알아보는 이는 진실로 행복하다. 모자이크의 각 부분 하나 하나는 전체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부활 후의 예수를 믿지 못하는 토마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말씀도 이와 같을 것이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복음 20장 29절) 설명과 납득이 요구된다면 그것은 행복이 아니다. 계산상의 이득이다.

archway-3615590_1280.jpg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날마다 새롭고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런 일들을 몸소 겪고 느끼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시간이 지나고 공간이동 후에 깨닫는 행복은 박제된 행복이다. 지금 여기에 내가 생생히 살아서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결이 출렁이는 순간을 알아차릴 때 진실로 행복하다. 행복은 맥박과 숨결의 파도를 타고 온다. 그래서 순수한 어린아이는 매일 행복하다. 그들은 눈만 뜨면 세상에 대한 신기한 호기심으로 늘 가슴이 뛴다.


이제 봄이다. 버드나무 이파리와 산수유꽃 빛깔이 하루하루 달라진다. 가까이서 보면 버드나무이고 산수유나무지만 멀리서 보면 계절이다. 나무에서 계절을 보고, 계절에서 나무를 알아차린다면 그 경이로움에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가끔은 의식을 돌려서 새로워진 그 틈을 바라보자. 얼마나 가치 있고 평화로운 일인지 느껴보자. 모자이크는 멀리 떨어져야 알아보지만 행복은 가까이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부분이 지향하는 바를 느낄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 여기서 어린아이처럼 두근거릴 준비가 되어 있다면….


작가의 이전글엇갈린 세월 위에 떨어진 로맨틱 한 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