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라벤더의 연인들>
엇갈린 세월 위에 떨어진 로맨틱 한 방울,
졸고 있던 리비도를 깨우다.
한 방울의 로맨틱이 삶을 물들인다. 리비도를 제어할 수 있는 것은 투명하게 의식화된 리비도의 힘뿐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 깨달음으로 알아차린 리비도는 성숙하게 승화하여 스스로를 구원한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오 복음서 22, 21).
그렇듯이 리비도의 것은 리비도에게 돌려라 그렇지 않다면 리비도가 너를 쥐고 흔들 것이다.
낭만은 길들여진 리비도이다. 야생의 리비도는 거칠다. 맹목적 스토커나 색광이 될 수도 있다. 낭만은 눈을 뜬 리비도이고, 스토커는 눈을 감은 리비도이다. 리비도를 길들이려면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애완견을 두려워하는 주인이 있는가? 낭만은 행복에 충성을 바치는, 열정적 삶의 애완견이다. 생명력을 깨우는 들녁의 봄바람이다. 눈 덮인 대지 아래에 씨앗과 뿌리를 꿈틀거리게 한다. 삶은 우주의 꿈틀거림이 내게 내재화된 모습이다.
엇갈린 세월에서 로맨틱 한 방울에 깨어난 우슐라. 무채색의 세상에서 무지개를 본 것처럼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럽게 채색된다. 바닷가 자갈밭에서 그가 건네주었던 하얀 조가비, 파도 소리 들으며 무릎에 기댄 그의 천진한 모습, 해맑은 미소와 함께 내민 꽃다발, 그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 속에 우슐라는 구름 속을 헤매는 소녀같다.
낭만은 회색빛 세상에 뿌려진 영혼의 물감이다. 물감의 칼라는 생동감을 그려낸다. 결국 우슐라는 짝사랑의 고뇌를 거쳐 안드레아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로맨틱 한방울이 삶에 아름다움을 입힌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 우슐라는 세상을 뜰 때 두렵거나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떨어진 로맨틱 한 방울이 그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향기를 뿜고 있기 때문이다.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 때에 그 부인은 구원을 받았다”(마태오 복음서 9,22).
그렇게 낭만은 우슐라를 소외된 고뇌에서 구원하였다. 승화된 리비도가 영혼을 구원한다. 막달라 마리아도 그랬고, 바로크 화가 카라바조도 그랬다. 이 영화에서 우슐라도 그랬다. 영화 <라벤더의 연인들>은 황혼의 우슐라에게 떨어진 로맨틱 한 방울의 이야기이다.
1930년대 영국 콘월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 사는 노자매 ‘자넷’과 ‘우슐라’는 폭풍우가 지나간 다음 날 해안을 산책하다가 파도에 쓸려온 젊은 남자 안드레아를 구조하게 된다. 새로운 꿈을 찾아 미국으로 향하던 배에서 조난을 당한 폴란드 출신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안드레아를 집에 데려와 간호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우슐라의 시선이 점점 길어진다. 눈길은 애틋하고 그 앞에 서면 자꾸 말이 많아진다. 영어 단어를 가르치는 등 핑계를 대서라도 안드레아에게 친절을 베풀려 한다. 안드레아의 아침 식사 쟁반에 꽃 한송이를 꺾어 놓는 그녀의 손길 위로 로맨틱 한 방울이 떨어진다.
언니 자넷에게는 ‘피터’라는 남자가 있었으나 우슐라는 한 번도 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나이는 많지만 청순한 마음의 우슐라에게 안드레아는 첫사랑인지 모르겠다. 두 자매의 정성어린 돌봄으로 안드레아는 점차 건강을 회복한다. 안드레아로 인해 두 자매의 생활에 변화가 오고 새로운 활력이 생긴다.
우연히 안드레아의 바이올린 연주 소리를 들은 젊은 여성 화가 ‘올가’는 안드레아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본다. 추수절 파티에서 안드레아는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로 동네 사람들을 사로잡고 즐겁게 분위기를 돋운다. 파티에서 올가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눈다.
안드레아를 구조했던 바닷가를 함께 거닐며 우슐라는 안드레아가 건넨 조개 껍질을 손에 꼭 쥐고 소녀처럼 기뻐한다. 무릎에 기댄 안드레아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려는 그녀의 손이 가볍게 떨린다. 두근거림이 파도처럼 밀려옴을 어쩌지 못한다. 로맨틱 한 방울이 그녀에게 번지고 있다. 이런 설렘 앞에 마냥 행복한 표정이 아닌 것은 나이 차이 때문일까?
정원에서 두 자매를 앞에 놓고 바이올린을 연주할 때 갑자기 올가가 나타나서 안드레아의 연주를 칭찬한다. 그러나 두 자매는 젊은 올가가 안드레아에게 접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넷은 우슐라의 눈치를 보며 올가를 흉본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오빠에게 소개하기 위해 안드레아에 대해 자세히 알려달라는 올가의 편지를 언니 자넷이 태워버린다. 두 자매와 안드레아가 바닷가로 피크닉을 다녀온 날 밤 우슐라는 소녀의 모습으로 안드레아와 함께 초원에서 껴안고 뒹구는 꿈을 꾼다.
어느 날 바닷가로 나가 미국으로 갈 방법을 생각하던 중 안드레아는 올가를 만난다. 그녀의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안드레아는 그녀가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안드레아는 바닷가에 나가 혼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상념에 잠긴다. 안드레아의 재능을 아까워하는 올가는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인 그녀의 오빠 ‘보리스 다닐로프’에게 안드레아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낸다.
우슐라는 밤에 안드레아가 잠든 방에 들어가 그를 쓰다듬으려 하고 이를 목격한 자넷은 우슐라의 행동을 나무란다. 우슐라는 이렇게 그녀의 괴로운 마음을 담아낸다.
“그럼 나더러 달리 어쩌라고?”
로맨틱 한 방울이 그녀의 마음을 적신다. 그녀도 이제 어쩌지 못한다. 우슐라는 어떤 힘이 자신을 통과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한다.
“난 괜찮아질거야 자넷.”
시간이 지나도 두 자매가 올가의 편지 얘기를 하지 않자 안드레아는 무척 화를 낸다. 우슐라는 안드레아의 이런 태도에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자리를 뛰쳐나간다. 다음날 바닷가에서 안드레아가 사과를 하고 우슐라는 안드레의 탓이 아니라고 하며 마음을 달랜다.
며칠 후 올가는 펍에서 안드레아를 만나 오빠에게서 연락이 왔다며 중요한 일이니까 내일 자기집으로 오라고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독일어로 얘기한다. 올가에게 눈독을 들인 의사 미드 박사는 안드레아가 그의 연적이라고 생각해 안드레아를 경찰에 독일 스파이 같다고 고발한다. 영화에서는 이런 역할을 하는 조역이 꼭 필요하다.
다음날 안드레아가 찾아오자 올가는 오빠가 런던에 24시간 머무르는데 안드레아를 만나고 싶어 하니까 한 시간 후 런던행 기차를 타야 한다고 한다. 안드레아는 자넷과 우슐라에게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망설인다. 올가는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고, 두 자매에게는 나중에 편지로 알려주면 된다고 안드레아를 설득하여 밖에 대기한 자동차에 함께 올라탄다.
그날 밤늦게까지 안드레아를 기다리던 우슐라는 안드레아가 올가와 함께 런던행 기차에 타는 것을 보았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그만 울음을 터뜨린다. 자넷이 우슐라를 껴안고 달랜다. 로맨틱 한 방울은 이렇게 우슐라의 마음을 찢어 놓는다. 실의에 잠긴 우슐라는 안드레아가 머물던 빈 침대에 웅크려서 그의 흔적을 더듬으며 슬픔을 삭인다.
시간이 지나고 아드레아에게서 그동안의 사정을 담은 편지와 함께 그의 초상화가 런던에서 배달된다. 11월 10일 금요일에 런던의 퀸즈홀에서 생중계되는 안드레아의 바이올린 협주를 동네 사람들과 함께 라디오로 감상하면서 우슐라는 그동안 안드레아와의 추억을 회상한다. 연주가 끝나자 브라보를 외치며 모두 큰 박수를 보낸다. 우슐라는 그동안 몰래 간직했던 안드레아의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려 보낸다.
연주회장에서 재회한 두 자매와 안드레아, 그동안의 회포를 푸는 시간도 잠깐, 뛰어난 재능의 안드레아는 곧 VIP들에게 불려간다. 아쉬움과 함께 돌아서는 두 자매… 영화는 다시 첫 장면 바닷가로 돌아간다. 성령의 불처럼 로맨틱 한 방울이 그녀를 변화시켰다. 이 영화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조슈아 벨’과 로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연주를 감상하는 것은 덤으로 주어진 즐거움이다. 인간의 로맨틱한 심성은 나이와 상관없음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개봉 : 2008.07.03.
등급 : 전체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국가 : 영국
러닝타임 : 103분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