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을 끄고 초행길을?

by 낭만천사 유광영

낯선 길에 들어설 때는 감각이 예민해진다. 주의를 기울여 사방을 살펴본다. 안전한 길인가? 목적지로 가는 길이 맞는가? 지도와 이정표를 수시로 확인하여 진로를 바꾼다. 그러다가 드디어 목적지가 나타나면 그때 서야 굳었던 어깨가 풀어지며 안심된다. 수수께끼의 답을 맞춘 것 같아 뿌듯하다. 내비게이션이 사용되기 전의 일이다.

1983년, 대한항공 007편 격추사건 이후 미국국방부가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위성항법 서비스를 민간에도 개방하였다. 지금은 실시간 물류 관리부터 많은 분야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자동차 내비게이션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제 아무리 길치라도 모르는 길을 서슴없이 나선다. 내비게이션만 켜 놓으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내비게이션이 있는데도 나침반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즐기기 위한 드라이빙이 아니라면 아무도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낯선 길에 들어서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는 내비게이션의 사용으로 공간 이동에 안전과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인생 행로는 어떤가? 태어나고, 성장하고,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직장에 승진하고, 퇴직하고, 은퇴 생활 누리고….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삶을 마감하게 되지 않을까.


그 중간중간 우리 행로에 영향을 주는 많은 요인이 있다. 부모님 말씀, 종교적 가르침, 선생님의 훈계, 친구들 이야기, 각종 미디어의 영향, 독서와 지식의 축적, 다양한 체험 등등…. 내비게이션이 나타나기 전의 나침반과 같은 것이다. 상황에 따라 주어진 어드바이스를 참고하여 그때그때 방향을 정한다. 아니면 주변에 의해 방향을 강요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행복의 GPS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007편이 사할린 상공에서 격추당한 것처럼 항로 이탈의 리스크는 늘 옆에 있다.


출세, 성공, 돈, 명예, 지위 등은 인생 행로의 중요한 이정표이다. 지향해야 할 지도상의 포스트이다. 많은 이들에게 행복의 조건이기도 하다. 땅을 딛고 사는 동안 당연히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조건이 모두 행복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행복의 정확한 좌표를 가리키는 GPS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정관념의 프레임은 신기루처럼 우리를 끌어 당긴다.


GPS 위성은 미국 공군 제50 우주비행단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GPS는 전 세계 누구나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 GPS 수신기만 있으며 내비게이션이 작동한다. 행복의 GPS는 신(神)께서 관장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 사용할 수 있다. 그 GPS 신호를 수신하면 우리의 삶은 훨씬 행복하다. 행복의 내비게이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GPS 수신기는 열린 마음이다. 오롯이 존재하는 투명한 마음이다. 어린이 같이 걸림이 없는 마음이다. 억겁의 세월을 한눈에 꿰어내는 해탈의 눈길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삶을 들여다보는 눈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조바심에 끌려다녔다. 서열의 유령은 들쥐 떼 몰듯이 우리를 몰고 다닌다. 무엇을 위한 서열인지도 모른다. 남이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강박증이다. 니체가 말한 무리의 도덕이다. 마귀 들린 돼지 떼처럼 무리의 도덕에 떠밀려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 왜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대한항공 007편이 사할린 상공에서 추락할 때까지도 항로 이탈을 몰랐다. GPS가 없기 때문이다.

들꽃에 나타난 기하학적 무늬의 경이로움에 감탄하라. 5억 년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밤하늘 가로지른 은하수 앞에 겸허해지자. 억겁(億劫)의 시간을 증류(蒸溜)하여 뿌려 놓았다. 봄 나비의 날갯짓을 무시하지 말아라. 바람을 저어서 태풍을 빚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쁨과 자유를 쏟아내는 아이들 웃음소리를 가까이서 들어라. 천국 문이 닫히기 전에 실려 나온 GPS 시그널이다. 행복의 GPS 신호는 이렇게 다가온다. 무리의 도덕이 몰고 오는 조바심으로는 캣치할 수 없다.


행복의 GPS를 수신하여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자. 종교가 해왔던 사명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비유하였다. “그는 왕권을 받고 돌아와, 자기가 돈을 준 종들이 벌이를 얼마나 하였는지 알아볼 생각으로 그들을 불러오라고 분부하였다. 첫째 종이 들어와서, ‘주인님, 주인님의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가져라.’”(루카 복음 19장 15-17절)


외면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들여다보자.

천천히 천천히,

조용히 조용히,

생생히 생생히,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


시그널과 노이즈는 구분해야 한다. 깨어있는 침묵이 필요하다.


이 지구에서 처음 살아보는 삶은 누구에게나 초행길이다. 행복의 내비게이션을 켜 보자. 무리의 도덕을 잠시 내려놓자.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왜 나침반만 고집하는가? 신께서 내려 준 재능을 썩일 것인가? 굴려서 열 배로 불릴 것인가?


외면했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들여다보자.

천천히 천천히,

조용히 조용히,

생생히 생생히,

한 번에 하나씩 한 번에 하나씩.


행복의 GPS가 켜진다. 내비게이션이 작동된다. 누구에게나 인생길은 초행이다.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