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얘기다. 수학 시간에 고무지우개를 못 쓰게 했단다. 문제의 답을 틀리게 적어도 지울 수 없다. 답이 틀리면 두 줄을 긋고 다시 써야 한다. 그래도 몰래 오답을 지우고 정답을 쓴 아이도 있었다. 틀린 게 창피했나 보다. 학생의 반 정도는 선생님 말씀대로 지우개를 버렸다. 답이 틀리면 두 줄 긋고 다시 풀었다. 또 틀리면 두 줄 긋고 처음부터 다시 했다.
결과는 지우개를 버린 아이들의 성적이 훨씬 향상되었다고 한다. 피드백의 힘이다. 틀린 과정을 눈으로 보면서 다시 풀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잘못된 과정을 분명히 알아차리게 된다. 실수는 딛고 건널 징검다리다. 징검다리를 치워 버리고 어찌 냇물을 건너려 하는가? 실수를 지우지 말아라. 알아차림의 기회이다.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억지를 부린다면 스스로 징검다리를 차 버리는 일이다. 귀중한 피드백의 기회를 흘려 버린다.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피드백이 없다면 반복 순환이다. 도약이 없다. 도약에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실수를 지우지 말아라. 도약의 징검다리다.
실수를 부정하면 세 가지 손해가 따른다. 일단 실수를 덮기 위해 그럴듯한 구실을 생각해야 한다. 에너지와 시간의 낭비다. 둘째, 실수를 인정하지 않는 억지는 주변의 신뢰를 잃게 한다. 마지막으로 귀중한 피드백의 기회를 놓쳐 버린다. 도약의 징검다리를 스스로 없애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도 그렇다. 잊으려 한다고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억지로 눌러 외면한다. 수도꼭지를 손바닥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다. 언젠가는 직면해야 할 부담으로 남는다. 상처는 잊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시선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수도전의 밸브를 잠그는 것이다. 그 때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어젯밤 그친 비에 지금까지 우산을 쓰고 있을 필요는 없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솟뚜껑 보고 놀라지 않아도 된다. 구분이 필요하다. 상처는 기억에서 지울 수 없지만 해석하는 틀은 바꿀 수 있다. 해석은 구분하는 힘이다.
상처를 잊으려 하면 세 가지 손해가 따른다. 잊으려고 애쓰다가 다른 일을 소홀히 한다. 비슷한 일을 겪지 않으려 행동이 소극적이 된다. 그런 일에 아파하는 자신이 싫어진다.
창을 멀리 던지기 위해서는 일단 팔을 뒤로 뺐다가 반동의 힘을 받아 앞으로 보내야 한다. 실수는 후퇴가 아니라 반동의 축적이다. 세상를 널리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도 있어요. 그렇군요. 저럴 때도 있어요. 그렇군요.”
상처는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성장 충돌이다. 상처는 병이 아니다. 다양한 관점을 알아차리는 기회이다. 상처는 잊는 것이 아니다. 바라보는 시선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 때 그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