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개가 무거워 떠나지 못했던 남자

영화 - <오베라는 남자>

by 낭만천사 유광영

행복은 운명이 머물다 가는 정류장,

떠나고 또 온다.


운명을 조종하려 하지 마라.

두 손으로 태양을 떠받칠 수는 없다.


운명을 방관하지 마라.

작열하는 태양은 한낮뿐이다.


행복은 운명이 머물다 가는 정류장,

열차는 곧 떠나고, 열차는 곧 온다.


행복을 알아보는 것은

두근거리는 심장, 반짝이는 호기심


오늘도 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다가온다.


운명을 방관하지 마라.

작열하는 태양은 한낮뿐이다.


행복은 운명이 머물다 가는 정류장.

오늘도 열차는 기적을 울리며 다가온다.


- 낭만천사 유광영 -


과묵하고 사브 자동차를 별나게 좋아했던 아버지의 별명은 ‘겁나게 착한 남자’였다. 아버지처럼 평생을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살아온 오베. 무단 주차도 단속하고, 재활용 쓰레기도 확인하고, 마을의 안내 표지판도 점검하며 동네의 파수꾼 노릇을 하고 있다. 그의 빠뜨릴 수 없는 하루의 일과 중 하나는 얼마 전에 세상을 뜬 아내의 무덤을 참배하는 일이다. 거룩한 의식을 거행하듯 매일 무덤가에 꽃을 꽂으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43년 동안 일한 회사에서 해고당한 후, 미련 없이 그녀 곁으로 가겠다고 자살을 시도하는데 그날 이사 온 이웃 가족의 뜻하지 않은 방해로 번번이 실패한다. 덮인 눈이 녹아내리면 밑에 깔렸던 잡동사니가 드러나듯, 죽음 앞에 의식을 내려놓는 순간 답변을 듣지 못한 과거가 튀어 올라온다. 시간에 마모되지 못한 심연의 기억이다.


마리오네트처럼 오베의 마음을 끌어당긴 끈은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걸까? 오베를 놓아주지 않는 애착의 뿌리는 꽤 깊었을 것이다. 생전에 풀어야 할 영혼의 숙제인가 보다. 세상을 뜨기엔 너무 무거운 운명의 날개였나보다. 죽음이 임박해서 회상 속에 떠오른 아버지는 그를 다시 돌려보낸다. 목을 매었던 노끈이 끊어진다.


“뭐가 잘하는 짓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땐 느낌대로 저지른다.”

오베가 주운 지갑을 톰 아저씨가 빼앗아 갈 때 어린 오베가 버틴다.


“정직한 게 최선인데 그게 늘 쉽지는 않아.

그럼 도움을 받아서…. 바른 길로 가야 한단다.”

지갑을 찾아 돌려준 어린 오베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얘기하였다.


이웃의 엉뚱한 방해로 자살에 실패한 오베는 버려진 고양이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이웃이 보낸 음식에 감사의 메모를 보내고, 라디에터 배관을 손봐 달라는 루네 부인의 부탁을 들어준다. 평소의 오베답지 않은 행동이다. 이제 운명의 날개가 조금 가벼워졌나? 오베는 주차장에서 고무호스를 자동차 배기관에 연결하여 다시 자살을 시도한다. 죽음이 발밑까지 다가올 때, 아직 풀어야 할 영혼의 숙제는 이어진다.


“어떤 인간으로 살 건지 결단의 순간이 오기도 한다.

바로 그때 난 선택을 했다.”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신 후 톰 아저씨가 그의 동료와 함께 오베의 시계를 강제로 빼앗자 젊은 오베는 분개하여 주먹으로 톰을 내리치고 시계를 되찾는다. 그는 아버지처럼 정직하였고 옳지 않은 일을 참지 못했다.


고지식하던 오베는 관리들에게 늘 수난을 당했다. 화재로 집을 잃고 열차 안에서 정신없이 잠을 자다가 그는 운명의 여인 ‘소냐’를 만난다. 투명한 눈빛과 진정성이 뚝뚝 흐르는 오베의 모습을 본 순간 소냐의 가슴 한구석이 물결친다. 재회하는 날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였다. 드디어 결혼을 승락한 소냐. 영혼의 숙제를 마저 풀라고 죽음의 문턱에서 그를 다시 보낸다. 갑자기 나타난 이웃집 여인 파르바네가 주차장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자동차 배기가스 자살도 실패하고 만다.


천방지축이면서 언제나 당당한 이란 출신의 이웃 여자 파르바네는 남편 패트릭이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애들과 자기를 병원까지 픽업해달라고 요청한다. 파르바네와 함께 병원에 다녀오면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행동에 오베는 고집스러운 마음을 조금씩 누그러뜨린다. 그의 삶의 궤도와 전혀 다른 파르바네의 거리감 없는 행동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면서 오베로부터 조금씩 운명의 날개 무게를 덜어낸다.


다음날 열차에 뛰어들어 또다시 자살을 시도하다가 뜻하지 않게 다른 남자를 구해내고 달려오는 열차와 홀로 마주한다. 코앞까지 열차가 다가올 때 문득 죽은 아버지가 떠올라 오베는 자신도 모르게 승강장에서 내민 손을 붙잡고 플랫폼으로 올라온다.


“그래, 나 죽으려다 죽을 놈도 구했다.”

오베는 황급히 열차 승강장을 떠나고, 그를 유심히 지켜보는 신문기자 레나.


열차 투신자살에 실패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파르바네는 그림을 내보이면서 아이들이 오베를 예쁘게 그렸다고 호들갑을 떠난다. 그녀는 넉살도 좋게 오베에게 자동차 운전 연수를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오베는 연수 도중 긴장하며 두려워하는 파르바네에게 호통을 친다.


“내 말 잘 들어. 애를 둘이나 낳아 봤는데 뭐가 무서워!

낯선 나라에서 별 고생 다했잖아!

당신이 운전 못할 이유가 없어. 운전은 천재만 하는 거 아니라고.”

파르바네는 용기를 얻었고, 오베 운명의 날개는 조금 더 가벼워졌다.



파르바네의 거침없는 요청으로 오베는 주인 없는 길고양이도 키우고, 그녀와 카페에서 차를 마시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어 루네와의 에피소드를 얘기해준다. 그녀가 고속도로 연수할 동안 늦게까지 아이들도 돌봐주고 자전거를 고쳐서 소냐의 제자였던 청년에게 돌려준다. 평소 오베의 행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운명의 날개는 이렇게 점점 무게를 덜어냈다.


오베는 파르바네와 크게 웃으며 농담도 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오직 소냐만 바라보았던 삶을 넘어서지 못하고 소냐에 대한 얘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 소냐의 기억에 대한 분리불안이 아직 그를 누르고 있다.

“소냐에 대해서 떠들어대면

그나마 남은 소냐의 기억이 사라질까 봐 두렵다고!

소냐 전에 난 없었고,

소냐가 없으면 난 없는 거야.”


루네를 강제 입원시키려던 환자 이송 직원들에게 무시당하고 외로움에 밀려올 때, 사무치도록 그리워지는 소냐. 오베는 그녀가 아이를 임신했을 때를 회상한다. 슬픔을 삼키며 총으로 자살하려는 찰나, 초인종 소리에 놀라 총알은 오발된다. 동성애자인 소냐의 제자가 갑자기 찾아와 임시로 머물 곳을 요청한다. 오베는 잠시 소냐 생각에 잠기다가 허락한다.


다음날 이들과 함께 동네를 순찰하다가 루네가 결국 강제 입원하게 된다는 얘기를 듣는다. 오베는 루네 부인에게서 관련된 서류를 달라고 하여 시청과 각종 기관에 강제 입원의 부당성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허탈해하는데, 파브리나는 평소 오베의 독선적인 행동에 대해 대한 직언한다.


“가슴의 소리를 들어봐요.

나한테 운전 가르칠 때 포기하지 말랬죠!


근데 당신은 자기 연민에 빠져

당신 빼고 나머진 다 바보라고요?


그게 말이 돼요?

자기만 옳다면서 화만 내잖아요.

세상을 혼자 살 수 있을까요?”


파브리나의 선입견 없는 천진스러움에 오베는 점차 마음을 열고 소냐와의 지난 일들을 모두 얘기해준다.

소냐가 스페인 여행에서 사고를 당해 임신한 아이를 잃고 불구가 된 것은 오베에게 너무 큰 고통과 상실감을 안겼다.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였으나 하반신 불구라는 이유로 소냐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자 그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관련기관을 고소하고 정당한 대우를 요구했다. 결국 오베는 학교 건물에 밤새도록 경사로를 만들어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하였고, 소냐는 문제아 학급을 담당하는 교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그는 소냐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집안의 살림살이도 소냐의 휠체어 높이로 바꾸었다. 늘 아이들 편에서 싸우고, 낙오 학생이 세익스피어를 암송하도록 열정을 다해 지도한 소냐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행동은 더욱 고착되었다. 이러한 오베는 결국 융통성 없는 고집불통의 노인이 된 것이다.


다음날 부인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루네를 강제 입원시키러 관리들과 업체에서 들이닥친다. 오베를 취재하려던 지역신문 기자 레나가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찾아낸 업체의 비리를 폭로하자, 그들은 강제 입원시키려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오베는 말 못하는 루네와 화해한다. 운명의 날개는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루네 문제를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오베는 길에서 쓰러진다. 병원에 입원한 오베를 간호하던 중 파브리나가 출산을 한다. 퇴원 후 오베는 자신의 아기를 위해 만들었던 아기 침대를 파브리나 아기에게 선물한다. 파프리나의 아이와 드라이브하면서 오베는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게 이런 거구나.”

이제 오베 운명의 날개는 충분히 가벼워졌다.


밤새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아침 평소 같았으면 일찍 일어나 눈을 쓸었을 오베의 집앞에 눈이 계속 쌓여 있자 파브리나와 패트릭이 오베의 집으로 뛰어간다. 오베는 고양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침대에 누워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미리 죽음을 예측하였다는 듯 유서도 남겨놓았다. 자살한 것이 아니고 자연사하였음을 강조하였다. 고양이를 부탁하고, 마을의 주차단속도 부탁하고, 장례식 방법도 알려주었다. 마을 사람들의 애도 속에 장례식이 거행되고 파브리나는 맨 앞 유가족석에 앉았다. 오베는 열차에서 소냐를 처음 마난 순간을 떠올리며 드디어 가벼워진 운명의 날개를 펼쳐 세상을 떴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죽을 때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으면 운명의 날개가 무거워져 편안하게 세상을 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십구재를 지내는 것도 죽은 후 사십구일 동안 저승에 들어가지 못한 영혼을 달래서 편안하게 저승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일찍 세상을 뜬 어머니, 과묵했던 아버지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 소냐에 대한 애착으로 오베는 친구 루네를 포함한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열지 못하고 무거움을 간직하였다.


요즘 ‘웰다잉’이라는 말이 꽤 유행한다. 웰다잉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영화의 오베처럼 운명의 날개 무게를 줄여서 마음 편하게 세상을 뜨는 일이다. 평소 자신에 대한 꾸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낯선 나라 이란에서 온 파브리나의 천진하고 선입견 없는 행동은 오베의 마음을 열고 운명의 날개 무게를 줄이는 매개 역할을 하였다. 우리의 이웃 중에 이런 사람이 없는가? 반짝이는 호기심과 편견 없는 마음은 행복의 친구이다.



개봉 : 2016.05.25.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스웨덴

러닝타임 : 116분



ㅡ 낭만천사 유광영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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