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자국은 나의 앞길을 가이드하지 않는다.

영화 - <와일드>

by 낭만천사 유광영

내 발자국은 나의 앞길을 가이드하지 않는다.


머리로만 삶의 문제를 풀어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정된 기억의 조합을 넘어서는 새로운 추론이나 깨달음이 나오기 어렵다. 갇힌 기억은 유연한 사유를 가로막고 같은 곳을 맴돌게 한다. 구름에 그린 그림처럼 공허하다. 곧 흩어진다. 몸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을 존중할 때 우리는 오래된 지혜를 일으켜 세운다. 인간은 원래 움직이며 살아가는 존재다. 뇌의 작용도 몸을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시뮬레이션 역할이라고 뇌과학자는 주장한다. 영화 <와일드>는 장장 4,285㎞를 걸으며, 무너진 삶에서 다시 일어선 ‘셰릴’이라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대자연(wild) 속에서 몸으로 담아낸 체험은 생생한 깨달음과 치유의 힘을 부른다. 이 과정에서 말은 필요 없다. 언어는 때로 영혼의 자유를 가두는 족쇄가 된다. 두 발과 두 다리로 바치는 참회의 기도만이 영혼을 새롭게 리셋한다. 행자승(行者僧)이 나무하고, 불 때고, 밭을 매며 묵언 수행하는 이유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광야에 나가 홀로 기도했고, 고타마 싯다르타도 숲속에서 고요히 수행했다. 스스로를 버릴 수 있는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 셰릴은 태평양 능선 종주 트레일(PCT)을 홀로 걸으며, 몸이 흘린 땀으로 영혼을 샤워했다.



가정폭력, 가난, 마약, 문란한 섹스, 이혼, 방탕한 생활, 원치 않은 임신, 사랑하고 의지했던 유일한 사람 어머니의 죽음…. 사방이 막힌 곳에서는 평면상으로 나갈 곳이 없다. 삼차원 공간으로 솟아야 한다. 스치듯이 언뜻 본 PCT(태평양 능선 종주 트레일) 안내 책자. 그녀에게는 삼차원 공간의 창문처럼 비쳤다. 벗어나고픈 삶의 무게가 셰릴을 짓누를 때, 수천 킬로미터의 험한 산길을 홀로 걷겠다고 결심했다. 목숨을 걸 만큼 위험한 일이지만 그만큼 그녀는 절박했다. 엄마가 원했던 딸로 되돌아가겠다며 트레킹을 떠난다.


내 발자국은 나의 앞길을 가이드하지 않는다. 어떻게 걸어왔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트레킹을 무의식적으로 하면 다리운동에 불과하다. 말없이 걸으며, 갇혔던 기억이 순간순간 떠오를 때 인정해주고 놓아주어야 한다. 그럴 때 트레킹은 거룩한 참회의 기도가 된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아픔을 빨아올리는 빨대가 되고, 흘리는 땀방울이 정화수가 되어 씻어낸다. 그 순간을 알아차려야 한다. 나머지는 우리 안의 오래된 지혜가 알아서 정리한다.


새는 날아갔는데 새장은 왜 들고 있는가? 길 앞에서는 애착을 내려놓고 겸허해야 한다. 갇힌 기억을 털어내어야 다음 첫발을 딛는 두려움이 사라진다. 셰릴은 산길을 걸으며 엄마와 남동생, 친구, 전남편에 맺힌 기억을 하나씩 해방시킨다. 어머니가 좋아했던 소설가 제임스 미치너의 책도 읽어본다. 암으로 죽어가는 엄마, 폭력적인 아빠, 문란했던 생활의 외면하고픈 기억이 불려 나온다. 도입부에서 셰릴이 발톱을 뽑아내고 남은 한 짝의 등산화를 집어 던지는 씬(scene)은 애착과의 결별, 분노와의 작별의식이다. 힘든 고비를 넘길 때마다 갇혔던 기억의 그림자가 하나씩 걷힌다. 사색만으로는 덜어내기 힘든 응어리가 땀으로 씻겨나간다.


셰릴은 황량한 벌판, 바위산, 계곡, 언덕길, 눈길, 숲길을 걸었다. 길은 우리를 거부하지 않는다. 방해하지 않는다. 그냥 거기 있을 뿐이다. 돌아가고, 건너가고, 올라가면 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바위에게 비키라고 하고, 계곡에게 물러서라 하고, 물 앞에서 갈라지라고 고집한다. 셰릴은 돌아가고, 건너가고, 올라갔다. 나 자신을 내려놓는 여정이다.


“당신이 이것들을 가지고 갈 좋은 이유를 대지 않는 한 저 상자에 놔두고 갈 수 있어요.”


케네디 메도우에서 만난 산장 관리인 에드는 셰릴의 짐 속에서 불필요한 물건을 하나하나 덜어낸다. 향수, 톱, 여러 권의 책, 카메라 플래쉬 등을 빼냈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사용한 일이 없는 것들, 그냥 멋으로 가져간 것들, 습관적으로 지니는 것들…. 털어내야 한다.


“난 한번도 나였던 적이 없었어.

한 번도 내 인생의 운전석에 앉아본 적이 없었지.

많은 시간이 있는 줄 알았는데.”


셰릴은 엄마가 이렇게 말한 것을 회상한다.


두려움에, 겉멋에, 뭔지도 모르고, 남의 눈을 의식해서 반복하는 습관적 행동들…. 내 삶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망령들을 쫓아내야 한다. 허락 없이 내 삶의 무게에 올라탄 허상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셰릴에게 트레킹은 구도(求道)의 길이다.


트레킹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가 묻는다.

“외로워요?

셰릴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실은, 평소에 있었을 때가 지금 이럴 때 보다 더 외로워요.”


그렇지 않은 척했을 뿐이다. 우리도 그렇다.


여정이 거의 끝나갈 무렵 길에서 만난 꼬마 카일에게 셰릴이 얘기한다.


“모든 사람들은 모두 문제가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근데 있잖아, 문제는 영원히 문제로 남아있지 않아.

다른 것으로 바뀐단다.”


“무엇이 어떤 사건을 일으키고 일으키지 않는지를 아는 방법은 없다.

내 삶은 다른 삶과 같이 별나고, 바꿀 수 없고, 신성해.

지금 정말로 가깝고, 지금 정말로 현실적이고, 지금 정말로 나에게 속해있어. ”


태평양 능선 트레일을 종주하고 나서 셰릴이 깨달았다. 이야기로, 머리로, 생각만으로는 절대 도달할 수 있는 시야가 트였다. 우리에게 삶의 대부분은 젖빛 유리창에 비친 밖의 풍경과 같이 인과가 투명하지 않다. 적셔서 천천히 들여다보는 통찰이 있어야 투명해진다. 몸을 움직여야만, 땀을 흘려야만, 몸을 흔들어야만 영혼을 깨울 수 있다. 단순하지만 간단하지는 않다. 흘리는 땀으로 젖빛 유리를 적셔라! 삶이 보다 투명해질 것이다.


이 영화 내내 울려대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엘 콘도 파사’ 선율이 오래된 기억을 불어 일으켰다. 가사가 던지는 의미도 영화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삶은 움직임이다. 그것도 새로운 움직임이다. 내 발자국은 나의 앞길을 가이드하지 않는다. 오늘도 새롭게 움직여야 한다. 설레는 가슴과 빛나는 호기심으로….



개봉 : 2015.01.22.

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

장르 : 드라마

국가 : 미국

러닝타임 : 119분



ㅡ 낭만천사 유광영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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