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
우리는 각자 빛나는 별이다.
질량과 중량(무게)은 물체의 고유한 양과 중력의 영향을 받는 양을 구분하는 개념이다. 질량은 중력가속도나 위치에 관계없이 일정하다. 즉, 질량 6㎏은 지구에서나 달에서나 똑같이 6㎏이다. 반면 중량(무게)은 지구에서는 6㎏이 달(Moon)에서는 1㎏에 해당한다. 달의 중력이 지구의 1/6이기 때문이다.
내 삶의 무게 또한 그렇다. 우리는 각자 빛나는 고유의 별(Star)이다. 내 삶의 무게를 다른 이의 별(Star)에서 저울에 달지 말라. 내 삶의 무게는 ‘나’라는 별(Star)의 중력장 안에서 의미가 있다. 왜 타인의 우주에서 내 삶을 저울질하는가? 방황과 불행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눈은 밖을 향해 있지만 알아차리는 마음은 내 안을 비춘다. 그 순간 올바른 저울질이 가능하다.
황혼을 맞은 영국의 노인들이 진정한 자신의 가치 공간을 모른 채 방황하다가 어느 날 그럴듯한 호텔 광고를 보고 인도로 향한다. 인도 자이푸르의 엉터리 같은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에서 여러 해프닝을 겪으면서 각자 삶의 무게를 깨닫는다. 행복한 순간은 너무 늦을 수도 없고, 너무 이를 수도 없다. 순간에는 두께가 없다. 알아차림만 있을 뿐이다. 밖을 향한 눈으로 내 안을 함께 비출 때 그렇다.
“이제껏 내가 그를 죄인처럼 살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갇혀 산 사람은 나였소.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지.”
판사였던 그레이엄이 죽기 전에 내뱉은 이 한마디는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모두 자유로운 존재였다. 그런데 어느덧 보이지 않는 관념의 중력 안에서 쳇바퀴 돌리는 햄스터가 되었다. 그러면서 계속 달릴 수 있으니 자신은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다.
게이인 그레이엄은 어린 시절 인도에서 잊지 못할 시간을 함께 보낸 첫사랑 마노즈를 찾아 나선다. 그의 뜻과 상관없이 가족에 의해 이별을 당할 때, 마노즈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렸다. 황혼에 운명처럼 인도로 돌아와 마노즈를 다시 만난다.
마노즈 역시 그레이엄을 잊지 못하고 지냈으나 그레이엄의 추측과는 달리 그는 아내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다. 연인 마노즈와 해후하고 돌아온 다음 날, 그레이엄은 심장마비로 숨을 거둔다. 하얀 백로가 하늘을 가로 질러 훨훨 날아가듯 평생의 짐을 덜고 가벼워진 영혼은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 마노즈는 그레이엄을 힌두식으로 장례 치른 후 한 줌의 재를 호수에 뿌린다.
이블린은 마노즈의 아내 고리카에게서 서로 비밀 없이 지낸 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신뢰와 애정에 감복한다. 죽은 남편을 생각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울음이 복받친다. 더글라스가 이블린을 껴안고 다독거릴 때 그의 아내 진이 나타나 차갑게 나무란다.
평생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근무하다 은퇴한 더글라스, 그의 아내 진은 남편의 친절과 충성심에 가려 지향하는 바가 남편과 다른 자신의 내면을 깨닫지 못했다. 인도에 도착한 이래 남편과 함께 외출한 적도 없고 까칠하게 행동한다. 안절부절 그레이엄을 찾아 나설 만큼 깊은 외로움은 새로운 삶으로의 욕구를 내재했다. 딸의 비즈니스 성공 소식과 공항으로 가는 중 축제로 인한 교통체증은 그녀의 결단을 촉발한 트리거로 작동했다.
“나 쫓아오면 되지. 공항에 와서 다 괜찮을 거라고 해.
하지만 그러지 마. 왜냐면 사실은…
사실은 우리가 더 잘 될 수 있는 사람들이란 거야.”
이렇게 얘기하며 진은 더글라스에게 이별을 고하고 혼자 공항으로 향한다.
황당하게 진과 헤어진 후 홀로 남겨진 더글라스는 자신을 알아주고 마음이 통하는 이블린과 새롭게 인연을 맺는다. 낯선 문화에 대한 탐구심과 감성이 서로 잘 맞아 이블린과 더글라스는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이블린은 평생 남편에 의존하며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인도에서 문화 상담사로 일을 하며 활력을 찾았다.
“여긴 새롭고 다른 세상이다.
도전은 그걸 감당하는 것이다. 감당뿐 아니라 진전(進展)하는 것이다.”
이블린의 나레이션은 내 삶의 무게가 다른 이의 저울에서 결정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도전임을 알려준다.
“진짜 실패는 시도하지 않는 실패다.
성공의 방법은 어떻게 실망을 극복했느냐이다.
늘 그래야 하듯이
우리는 여기 와서 다른 방식으로 노력했다.
변화하기엔 너무 늙었다고 느낀다 해서 비난받을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해야함에 너무 겁을 먹어서?
우린 아침에 일어나서 최선을 다한다.
다른 건 상관없다.”
노먼은 남자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캐롤과의 첫날 밤에 약을 준비한다. 자신의 남성적 가치를 약에 위임하는 관념의 무게다. 그러나 캐롤은 약을 치워 버리고 따뜻한 노먼의 위로를 요구한다. 진짜 남자의 모습은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삶의 무게를 스스로의 저울로 감당하는 당당함과 정직함에 있다.
메리골드 호텔의 매니저인 소니는 여자친구 수나이나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호텔을 팔고 델리로 가서 정해준 여자와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드센 강요에 어쩌지 못한다. 자신의 삶의 무게가 어머니의 중력에 의해 결정되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의기소침해 있을 때 사랑하는 여자에게 용기를 갖고 진지하게 사랑의 고백을 하라는 이블린의 어드바이스를 듣는다. 소니는 문득 깨어나 삶의 무게에 대한 결정권을 자신에게 가져오기로 마음 먹는다. 급히 수나이나와 함께 어머니에게 달려가 결혼 승낙을 요구한다. 결국 어머니도 자신의 과거와 똑같은 상황임을 깨닫고 수나이나에게 자신의 아들 소니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한편 평생 결혼하지 않고 부유한 가정의 집사 일을 해왔던 인종차별주의자 같은 뮤리엘은 음식을 서빙하는 천민출신 아노키의 집을 방문한 뒤 따뜻한 그 가족에게서 감화를 받는다. 뮤리엘의 관절 수술의 경과가 좋아 이제 그녀는 휠체어 없이 걷는다. 메리골드 호텔이 문을 닫는 얘기를 듣고 뮤리엘은 투자자 마루티와 협상하여 조건부로 투자를 유치한다. 투숙객들은 계속 이 호텔에 머물기를 원한다.
노먼이 캐롤의 스타킹을 빨랫줄에 널고 있는 동안 카우치에 누워있는 캐럴의 손에는 인도의 유명한 섹스 경전 카마수트라가 들려있다. 노먼은 그녀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한편 뮤리엘은 새롭게 리모델링한 호텔의 프론트 데스크에서 보조 매니저로 활기차게 일한다. 새로운 사랑을 찾는 마지는 연인을 만나 다정하게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자유로울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래에 대해 아는 거라곤 지금과는 다르다는 것 뿐.
하지만 우리가 두려운 건 똑같을까 봐서다.
그러니 변화를 축하해야 한다.
누군가가 모든 건 결국 괜찮아진다고 했다.
만약 괜찮지 않다면 이 말을 믿어봐라.
아직 끝난게 아니다.”
이렇게 이블린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과일 가판대가 늘어서 있고, 당나귀와 릭샤(영화에서는 '툭툭' 이라고 하는데, 실제 인도에서는 '릭샤'라고 하고 ‘툭툭’이라는 말은 동남아시아에서 많이 사용한다), 자전거, 자동차가 엉켜서 달리는 혼잡한 바라나시 거리…. 무슬림, 힌두, 시크교도, 자이나 교도, 불가촉 천민 등 다양한 배경의 특색있는 사람들…. 예전에 인도를 여행했던 기억이 떠올라 반가웠다.
인도라는 나라가 갖는 막연한 신비감은 고유한 환경과 역사적 전통으로 다져진 문화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그 사회의 중력권 내에서 나름대로 형성되고 발전해온 유니크한 삶의 방식을 존중할 때 신비감 보다는 넓어진 의식의 지평에서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색다른 문화를 현장에서 경험하는 일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디테일에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문에 대해 얘기하기 보다 자유롭게 다니는 기쁨을 생각해봐요.”
소니가 호텔 방에 문이 없는 것을 두고 둘러댔던 것처럼 기존 관념과 맞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짜증을 내든가 분노하기보다 엑조틱한 경험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아 전기가 끊어질 때가 가끔 있지만 자가 발전기를 돌려 곧 정상으로 돌아온다. 샤워하다가 온몸에 비누를 칠했는데 물이 갑자기 안 나와도 당황할 것 없다. 언젠가는 자가 발전기 돌려서 물이 나오도록 할 것이다. 그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모른다.
인생의 굴곡을 압축해서 인스턴트로 경험해 보는 것 같다. 이런 해프닝을 통해 뜻밖에도 내 삶의 무게를 알아차릴 때가 있다.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에 투숙했던 그들처럼….
소니가 모터사이클 뒷자리에 수나이나를 태우고 거리를 달릴 때, 맞은 편에서 또한 이블린을 뒤에 매달고 달려오는 더글라스와 마주치는 장면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두 커플은 손을 들어 인사한다. 여인의 머릿결은 바람에 날리고 환한 미소는 햇살 아래 빛난다. 여늬 연인처럼 행복한 그들의 삶은 모두 빛나는 별(Star)이다.
삶의 무게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 무게이다. 내 삶의 무게를 다른 이의 저울에 달지 말라. 방황과 불행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우리 눈은 밖을 향해 있지만 알아차리는 마음은 내 안을 비춘다. 내 안을 비추는 순간 우리는 올바른 저울질이 가능하다. 나의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은 어디에 있는가?
개봉 : 2012. 02. 24.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코미디, 드라마
국가 : 미국, 영국
러닝타임 : 124분
- 낭만천사 유광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