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강을 건너 의식의 저편으로
불안과 평온함 사이에는 호흡의 알아차림이 있다.
찰스 다윈과 뇌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에 의하면 느낌은 우리가 생존환경에서 급하고 필요한 행동을 즉시 일으키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느낌은 빠르다. 그렇지 않다면 분초를 다투는 위급상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원시시대 자연 속에는 포식자의 출현, 기상 이변, 갑작스런 환경 변화와 같은 생존 위협이 많았다. 이런 위험이 다가올 때 재빨리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도록 행동을 촉발하는 것이 두려움과 공포, 분노의 감정이다. 이렇게 감정이 일으킨 대응 행동으로 신속하게 위기 상황을 빠져나왔다.
이보다 더 급박한 상황에서는 감정을 느낄 시간이 없이 즉각 반응인 반사행동이 작동된다. 뜨거운 물체가 손에 닿았을 때 자신도 모르게 물체에서 바로 손을 떼는 반사행동이 그렇다. 판단은 유보하고 일단 몸을 움직여야 위험에서 벗어나 생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우리를 위험에서 지켜준 본능 시스템이다.
감정과 반사신경은 인간의 환경 적응에 의미있는 장치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감정 메커니즘이 모든 위협에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자연환경보다 인간에 의한 생존의 위협이 훨씬 많은 현대에 있어서 때로 빠른 감정 반응은 역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상대의 모욕적인 언행에 불쾌해하며 분노의 감정으로 즉시 주먹이 나간다면 대인관계를 해치게 되고 결국 불리한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감정적 대응 보다는 행동의 인출을 다양하게 시뮬레이션하는 사고(思考)능력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사고작용(思考作用)이 감정보다 훨씬 느리게 작동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와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그냥 놔두면 시스템적으로 빠르게 작동하는 감정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오랫동안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온 우리의 신경구조가 사고작용보다 감정반응을 우선 순위로 가동시키기 때문이다. 당장은 감정에 따른 행동으로 일시적 만족감을 얻을 수 있지만 결국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다.
반사신경은 어쩔 수 없는 본능적 즉각 행동이고, 감정 반응은 생각에 앞서 우선 움직인다는 사실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감정을 통제한다고 무조건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감정은 분출될 틈을 노리고 있는 지각(地殼) 아래 용암과 같다. 일단 발동된 감정의 에너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근육 운동을 통해 인출되어야만 한다. 이런 감정을 누르기 위해서는 과도한 긴장이 필요하다. 그것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우리의 행동을 어색하고 경직되게 한다.
마치 물이 나오지 못하도록 수도꼭지를 손바닥으로 틀어막고 있는 것 같다. 당장 물이 나오는 것을 잠시 막을 수는 있겠지만 손바닥에 계속 힘을 주어야 하므로 다른 행동을 할 여유가 없다. 이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이 아니다. 손으로 막고 있을 것이 아니라 수도 밸브를 잠가야 한다. 그러면 수도꼭지에서 손을 떼어도 좋다. 수돗물은 다른 배관으로 흘러가고, 손은 자유롭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시급한 행동을 끌어내기 위한 경보장치가 느낌이라면, 생각은 멀리 바라보고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행동 시뮬레이션을 하는 관제탑이다. 감각 정보와 과거 기억을 비교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사고와 판단작용이다. 느낌과 생각 사이에 호흡의 알아차림이 수도 밸브 역할을 한다. 호흡을 알아차린다면 이 상황이 위협이라기보다 타협이 필요한 일임을 직시하게 된다. 생존의 위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더 이상 감정이 발동되지 않는다.
일단 일어난 감정에 대해서는 호흡을 알아차리고 산책이나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움직여서 흘러나온 감정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배출한다. 불안이 사라지고 평온을 되찾으면 사고작용을 통해 적절한 행동 시뮬이션이 가능하다. 적응적인 행동을 계획하게 된다. 불안과 평온함 사이에는 큰 호흡이 있고, 호흡의 알아차림이 있다. 억제하기보다 감정의 수도꼭지를 잠그는 일이다.
밤중에 산길을 가다가 부스럭 소리에 놀라서 바짝 겁을 먹고 있다가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을 알아차리면 안심이 된다. 이때 가슴을 쓸어내리고 크게 숨을 쉰다. 굳었던 몸이 풀린다. 불안과 공포를 겪을 때 몸을 떠는 일은 감정의 에너지가 근육의 움직임으로 배출되는 현상이다. 큰 호흡은 느낌과 생각 사이에 알아차리게 하는 틈새를 제공한다. 감각을 편안하고 생생히 느끼게 된다. 호흡을 알아차리고 몸을 움직이는 근육 운동으로 발생된 감정 에너지를 배출해주어야 한다.
우리는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오지도 않은 가상의 위협을 미리 걱정한다. 수도꼭지를 손으로 틀어막듯 애써 분노와 걱정을 누르고 있다. 근육은 긴장하고 행동은 경직되었으며 마음은 여유가 없다.. 번뇌의 고통이다. 원시시대에는 제법 효과적이었던 감정반응 시스템이 문명시대에 종종 지나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구조가 되었다. 무작정 회피하거나 싸워야 할 위협은 사실 거의 없다. 대부분 생각하고 타협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호흡을 알아차린다면 감정의 강 너머 생각의 저편으로 건너가는 나룻배를 탈 수 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가장 흔한 경우가 노래를 하거나 시를 읊을 때이다. 큰 호흡과 일정한 리듬이 수반된다. 고대 인도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주체는 브라만(사제) 계급이었는데 그중에는 반드시 찬가와 음악을 맡은 제사장(우드가트리)이 있었다. 이들은 큰 호흡과 리듬을 통해 감정을 건너 깊은 의식의 세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신비스러운 일이 아니다. 자연스럽고 큰 호흡이 미주신경에 영향을 주어서 사고작용을 하는 전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은 최근의 뇌과학 연구에서 밝혀졌다. 이 단순한 방법을 고대인들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원래 진리는 단순하고 아름답다.
ㅡ 낭만천사 유광영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