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관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홀몸 어르신 밑반찬 배달

by 낭만천사 유광영

호롱불빛에 젖어든 듯 느티나무 이파리가 주황빛을 더해간다. 초록과 빨강 사이의 스펙트럼이 햇살에 무지개처럼 층위를 이룬다. 미처 주황을 거치지 못하고 말라 버린 낙엽은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여기저기 날리다가 하수구 쪽으로 모여든다.


오전 열한 시. 독거노인에게 밑반찬 도시락을 배달할 시간이다. 한 평짜리 고시원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시청에서 마련해준 전세방으로 이사하신 한 어르신 댁에 막 도착했다.


“윤○○ 어르신, 밑반찬 배달왔습니다. 어르신, 계세요?”


잠긴 대문을 두드리며 크게 외쳤으나 한동안 반응이 없다. 대문 앞에 놔두자니 제대로 전달이 될지 의심스러워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핸드폰으로 문의하려고 폰을 꺼내든 순간 위층의 창문이 열린다.


“여기예요. 여기 2층으로 이사 왔어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윤○○ 어르신이 내려다 보며 외치신다.


“아, 댁에 계셨군요. 대답이 없으셔서 안 계신 줄 알았어요. 대문 열어주세요. 올려다 드릴게요.”


“거기 대문 틈새로 파란색 나일론 끈이 보이죠? 그거 잡아당기면 문이 열려요.”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데 어르신이 벌써 현관 앞에 나와 계신다. 새로운 집을 보여주려는 듯 문은 활짝 열어젖혀 있다. 도시락을 건네면서 힐끗 들여다보았다. 살림살이는 별 없는 것 같은데 도배를 새로 했는지 깔끔해 보인다.


“아, 넓고 깨끗하네요. 어르신 전에 사시던 데보다 훨씬 좋죠?”


“흐흐흐, 그럼요. 크고 좋아요.”


새로 산 장난감을 보여주는 어린애처럼 자랑스럽고 흐뭇한 표정이다. 세상에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는 눈빛으로 싱글벙글 웃으신다. 햇빛도 안 드는 음습한 고시원에서 삐죽삐죽한 수염에 무표정하게 허공을 보며 “그냥 거기 놔두고 가세요.” 하시던 모습과는 아주 딴판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생기가 목소리를 타고 흐른다.


“요즘은 건강이 좀 어떠세요? 많이 좋아지신 것 같은데….”


“많이 좋아졌어요. 식사도 제때 잘하고 있습니다. 복지관에서 신경 많이 써 준 덕분이죠. 정말 감사해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복지관도 그렇고, 시청에도 그렇구요. 선생님도 배달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잘 먹겠습니다.”


“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연신 고맙다는 목소리에 여유가 깃들어 있다. 편안하게 웃으면서 말씀하시는 걸 보니 어르신의 건강이 정말 좋아진 것 같다. 지난 여름 몸이 안 좋아 자주 병원에 입원하셨다는데, 새로 입주한 주택 창가의 햇빛이 몸과 마음의 그늘을 거두어 갔을까?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어르신의 말소리에는 작은 행복이 묻어 있다.


도시락을 전달해드리고 골목 어귀로 발길을 돌아설 때 등 뒤로 어르신의 흐뭇한 시선이 느껴진다. 고시원으로 배달할 때 그 음침한 분위기 때문인지 가기 싫을 때가 있었는데 새로운 주택으로 도시락을 배달하게 되니 내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그 어르신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다음 배달 순서는 비탈길 골목 2층에 사는 안○○ 어르신. 빈 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 했지만 복지관에서 다시 씻을 거라면서 일부러 뚜껑을 분리하여 반 용기와 따로 정리해놓을 만큼 세심하시다. 예전에는 괜찮게 사셨는지 구김살 없는 얼굴에 늘 밝은 표정이다.


“쌀쌀한 날씨에 여기까지 오시느라 너무 고생이 많으십니다.”


항상 미소 지으며 따뜻한 말투로 맞이하신다. 지난 겨울에 눈 덮인 계단에서 넘어져 골절상으로 꽤 고생하셨던 그 어르신은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는 날에는 특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조심해서 올라오라고 연신 당부하신다.


“아유, 이렇게 날도 궂은데 저 때문에 고생하셔서 어떡하죠? 계단 올라오실 때 미끄럽지 않았나요? 조심하셔야 해요. 저는 덕분에 밑반찬으로 식사 잘하고 있어요.”


아직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나는 할머니의 쓸데없는 잔소리로 들려서 건성으로 대답하곤 했다.


“아이, 괜찮아요. 전혀 미끄럽지 않아요. 이 정도야 뭐 가볍게 올라가죠.”


그런데 어느 날 빗물 젖은 계단을 내려가다 순식간에 미끄러져 크게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난간을 잡고 간신히 균형을 잡아 다치지는 않았다. 걱정스러워하시는 그 어르신 얼굴이 새삼 떠올랐다. 습관처럼 하는 잔소리라고 무시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 어르신은 진정 나를 걱정해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터인데 진지한 그 배려심을 알아주지 않고 귀찮은 듯 대답했으니…. 이제 그 따뜻한 마음이 가슴에 느껴진다.


“내가 넘어져서 다치면 저 어르신 마음이 편치 않으실 거야.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정말 조심해야겠다.”


어르신이 하신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이해하지는 않더라도 거기에 담겨 있는 따뜻한 마음은 소중하게 받아들여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다음 어르신 집으로 향했다. 이 집까지 오는 길목이 조금 길어서 멀리 자동차를 주차해 놓고 걸어야 할 때가 많지만 골목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하다. 환한 표정, 배려하는 행동, 걱정해주고 감사한 그 마음이 가로등처럼 길바닥을 비추어 포근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한다.


내가 배달해 드리는 여섯 가구 어르신들 대부분 연로하기도 하지만 주거 환경과 식생활이 좋지 못한 탓인지 건강에 문제가 많다. 밑반찬 배달하며 어르신에게 특이한 사항이 있으면 일지에 그 내용을 기록하여 복지관에 전달한다. 필요하면 복지사가 방문하여 상황을 자세히 파악하고 대책을 세운다. 어르신 한분 한분 모니터링하면서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관계기관과 연계하여 위기를 겪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일 년 넘게 밑반찬 배달하는 동안 벌써 두 분이 돌아가셨고, 중증 암 환자였던 한 분은 가족이 입원시킨 후 연락이 끊겼다. 아마도 돌아가신 것 같다.


배달받으시는 어르신에게 특별한 유의 사항이 있는 경우 담당 사회복지사는 안내문과 함께 출발 전에 상황을 설명해준다. 더운 여름날에는 배달 나가는 자동차에 에어컨을, 추운 날에는 히터를 미리 켜 놓는다. 올여름처럼 찜통더위가 계속되던 한낮에 이런 디테일한 배려가 감동을 준닥. 홀몸으로 사는 어르신들에게 매주 밑반찬을 배달할 때마다 미소와 함께 늘 감사한 마음을 접한다. 수급자 어르신, 복지관 사회복지사, 복지관장님, 같은 시간대에 마주친 요양보호사와 생활지도사 등… 더불어 사는 세상에 따뜻함이 흐르도록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


요즘 밑반찬 배달하는 화요일 오전이 기다려진다. 그 시간에 배달되는 밑반찬 도시락을 받고 환하게 웃으시는 어르신들 얼굴이 떠오른다. 어르신들에게는 그 시간이 큰 의미로 느껴질 것이다. 일주일 분 밑반찬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절되고 소외된 상황에서 하나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는 순간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내게 관심을 가져주는 기관이 있고, 어려울 때 연락할 수 있는 의지처가 있다는 안심을 주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화요일 오전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도시락을 받으시는 어르신의 순수한 표정을 대할 때 내 안에 있는 평화의 종이 울려 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은 어르신의 마음이 담겨있다. 나는 미소와 함께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세요.”라고 인사를 한다. 이러한 순간에 내 존재의 가치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작지만 나도 좋은 일을 하고 있다.”라는 뿌듯함이 가슴에 차오른다. 긍정적 활력이 생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공감하며 소통하지 않았다면 공동의 번영과 문화 발전을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단순한 본능의 작용으로 협동하는 개미나 꿀벌과는 달리 인간은 자발적으로 타인을 위해 희생하고 배려하는 숭고한 마음이 있다. 함께 어우러져 사는 세상은 다양하고 더욱 풍요롭다. 가을날 주황빛으로 물들어 가는 느티나무처럼 다양한 빛깔의 스펙트럼은 세상을 아름답게 꾸민다. 많은 자원봉사자와 후원자, 사회복지사, 관련 직원들이 따뜻한 관심이 호롱불처럼 사회를 따뜻하게 물들인다.


인간의 존엄과 행복은 조건을 주고받는 거래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생명체 고유의 속성이 자유롭게 드러나며, 고동치는 공동체의 울림 안에 행복이 깃든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마음을 나누는 것은 그 울림을 크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울림의 중심에 복지관이 있다. 복지관이 있어서 오늘도 어르신은 감사한 마음으로 창가의 햇살을 맞는다. 홀몸 어르신에게 밑반찬을 배달하고 온 날 그 울림에 함께한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흐뭇해진다. 복지관은 많은 어르신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실어 나르는 연결망이다. 이 연결망이 더욱 튼튼해지고 많은 어르신에게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복지관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ㅡ 낭만천사 유광영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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