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유머가 흐르지 못하면 광기와 편견이 쌓인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 을 보고

by 낭만천사 유광영

베트남 전쟁은 여러 면에서 현대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변곡점이 되었다. 미국의 외교·정치·사회 구조가 뒤흔들리고, 냉전 질서가 재편되었다. 미국 전역과 유럽의 런던, 파리, 로마와 같은 도시에서 일어난 반전운동은 68혁명의 기폭제로 작용하였다. 체코 프라하의 봄과 폴란드의 위기가 발생하였으며,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물러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운동의 단초가 되었다. 이러한 물결에 체제 불안을 느낀 우리나라 박정희 정권은 유신독재를 단행하였다.


군비 충당으로 인한 재정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초래하여 금본위제도를 유지하던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되었다. 브레튼우즈의 해체 이후 달러 평가절하로 인한 손실을 감당해야 했던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1973년의 제1차 오일쇼크가 발생했다. 이는 나중에 걸프전 참전의 내면적 이유를 제공하였으며 1980년대 신자유주의로의 전환을 촉진하였다. 리처드 닉슨 행정부 당시에 논의되던 의료보험 국영화 가능성은 베트남전 재정 부담으로 그 실현될 기회를 놓쳐버렸다. 이처럼 베트남 전쟁은 단순한 국지적 분쟁이 아니라 시대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20세기 후반 세계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거대한 지각 변동의 트리거였다.


끔찍한 전쟁은 광기와 편견이 낳은 부산물이다. 신화와 유머가 흐르지 못하는 곳에 광기와 편견이 쌓인다. 신화는 ‘신들의 유머’이고 유머는 ‘마음의 쉼표’이다. 잠시 멈추는 여유가 없다면 먼지처럼 쌓이는 광기와 편견을 눈치채지 못한다. 영화 <굿모닝 베트남>에서 그런 모습이 비추어진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일들은 반복되고 있다. 우리가 실용적이지도 않은 신화를 읽고, 시를 읊으며, 인문학을 가까이하고, 유머스럽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광기와 편견으로부터의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베트남 전쟁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던 1965년, 신화의 땅 크레타로부터 D.J. 크로나워가 사이공의 미군 방송국에 전입해 온다. 크레타는 가장 오래된 유럽 문명의 발상지로 미노스 왕, 테세우스,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같은 전설이 서려 있는 섬이다. 신화처럼 기발하고, 활기 넘치고, 재치 있는 유머 감각의 크로나워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빠르고 즉흥적인 말투로 분위기를 잡아간다. 스크립트를 무시하고 정치인과 군대에 대한 풍자적 유머, 유명인의 성대모사, 신나는 로큰롤 음악을 뒤섞어 거침없이 방송을 진행한다. 기존의 딱딱한 군 방송만 듣던 병사들은 유쾌하기 그지없는 그에게 열광하며 잠시나마 전쟁을 잊게 해주는 휴식이자 유일한 오락 시간으로 그의 방송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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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방송 멘트 “굿모오오닝 베트나암!”이라는 외침은 가라앉은 공기에 신화적 해방감을 띄우고, 전쟁에 지친 군인들에게 짧지만 확실하게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의 자유로운 정신과 발랄함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크로나워의 신나고 유머스러운 방송은 장병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평화로운 메시지를 전파해 나간다. 신화와 유머는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자유로움과 따뜻함이 흐르게 한다. 신화와 유머가 흐르지 못하는 전쟁터에서는 광기와 편견에 의한 적대 행위가 누적된다. 직속상관인 호크 중위는 엄격한 방송 지침을 고수하고, 특무상사 딕슨은 크로나워에게 가학적으로 대한다. 무표정한 쌍둥이 형제 검열관은 로봇처럼 그저 기계적으로 뉴스를 검열한다.


크로나워는 지시를 무시하고 닉슨 전부통령의 인터뷰 내용을 편집해서 농담과 풍자를 넣어 방송한다. 호크 중위와 딕슨 상사는 크로나워의 자유분방한 스타일과 규정 위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만 테일러 준장과 다른 D.J.는 병사들에게 웃음을 주는 크로나워의 방송에 호감을 갖는다. 크로나워의 방송은 병사들에게 잠시나마 즐거운 마음으로 현실을 견디는 힘을 준다. 동시에 진실을 말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크로나워는 자기가 목격한 테러 현장의 상황을 사실 그대로 방송하려는데, 검열관은 군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공식적 보도를 금지한다. 크로나워는 진실을 전달하지 못하는 현실, 그리고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군의 검열에 환멸을 느낀다. 진실을 알 권리를 빼앗기고, 그 자리를 선전과 통제가 채우게 되는 현실을 깨닫는다. 딕슨의 제지를 피하기 위해 크로나워는 스튜디오로 뛰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후 마이크를 잡고 테러 현장의 상황을 비공식적인 보도라며 풍자적으로 알린다. 방송이 송출되자 당황한 딕슨은 방송 스튜디오의 전원을 차단한다. 이 일로 크로나워는 방송에서 물러나고 호크 중위가 대신 방송을 진행한다.


크로나워는 베트남 소녀 트린과의 사랑을 꿈꾸며 베트남인들을 위한 영어 회화 클래스를 맡는다. 그녀의 남동생인 투안과도 친해졌다. 방송에서 쉬는 동안 그는 트린과 투안을 통해 베트남 현지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들의 일상과 고통을 직접 마주하면서 그의 시선은 확장된다. 자신의 세계와 전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과 진심으로 가까워지며, 마음을 나눈다.


호크 중위의 지루하고 형편없는 유머와 음악 선택으로 인해 크로나워의 복귀를 요청하는 장병들의 수많은 편지와 전화가 쇄도한다. 장병들의 끝없는 성화와 그들의 사기를 감안하여 테일러 준장은 크로나워를 방송에 복귀시킨다. 갈릭은 방송을 거부하고 있는 크로나워를 찾아가 병사들의 기대가 크다고 설득한다.


함께 돌아오는 길에 전선으로 향하는 병사들 앞에서 크로나워는 끼를 주체하지 못한 채 유쾌한 즉흥 쇼를 펼친다. 조직의 구성원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병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서 전장의 불안을 날려버리는 웃음을 선사한다. 크로나워는 흥이 나서 떠들고 병사들은 어린애 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크게 웃는다.


유머는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잠시나마 자유로운 숨을 확인할 수 있는 신화적 힘이 있음을 보여준다. 신화와 유머가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진실한 시도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지 우리는 깨닫게 된다. 환성을 지르며 작별인사를 나누는 병사들의 얼굴이 크로나워의 얼굴과 교차한다. 비록 내일은 전투에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 그들은 크게 웃을 수 있다. 크로나워는 전장으로 떠나는 병사들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본다. 용기를 얻어 다시 방송을 시작하게 된 크로나워는 정규 방송에서 그 병사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에게 음악을 보낸다.


평화로운 마을에 네이팜탄이 터지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도시에서는 테러가 벌어진다. 즉결 처형이 이루어지고,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시민들은 피를 흘리고 쓰러진다. 병사들은 전쟁터로 전쟁터로…. 이런 광기의 장면을 배경으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 가 흘러나온다. 피 흘리는 현장이 멋진 세상이라니? 얼마나 모순된 일인가. 크로나워가 신화적 달관의 눈빛으로 위대한 곡이라고 소개한다.


호크 중위와 딕슨 상사는 크로나워로 하여금 ‘안락’으로 가서 전선의 병사들과 인터뷰를 하도록 한다. 그런데 ‘안락’으로 가는 유일한 도로인 ‘1A’ 루트는 48시간 전에 이미 베트공에 점령당했다. 딕슨은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의도적으로 크로나워를 위험에 빠뜨린다. 크로나워와 갈릭이 ‘1A’ 루트를 달리는 도중 매설된 지뢰가 폭발하고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들은 밀림 속에 고립된다. 투안은 이 사실을 알고 훔친 트럭을 몰고 가서 크로나워를 구해낸다.


크로나워의 인간적 유머와 따뜻함으로 인해 투안은 두 번씩 목숨을 그의 목숨을 구해주었다. ‘지미와’라는 술집에서 쉬고 있는 크로나워를 건물 폭발 직전에 나오도록 하였고, 정글 속에 고립되었을 위험을 무릅쓰고 크로나워를 구해냈다. 하지만 투안이 테러를 일으킨 베트콩 조직원임이 밝혀지면서 크로나워는 큰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투안은 자신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얘기한다. 크로나워는 전쟁 속에서 한 개인이 얼마나 복잡한 선택을 강요받는지 이해하게 된다. 전쟁의 비극을 뚜렷이 드러내는 장면이다. “누가 진짜 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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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나워는 트린을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간극과 전쟁의 현실 속에서 둘 사이가 이어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전쟁 영화에서 구색 갖추기로 등장하는 신파적 로맨스와는 달리, 현실적이고 절제된 감정선을 보여준다. 사랑이나 우정도 결국 전쟁이라는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 전출지로 이동하기 위해 탄손누트 공항으로 가는 도중 크로나워는 영어 클래스 학생들과 약속한 대로 소프트볼 경기를 한다. 미군과 베트남 시민이 어우러져 소프트볼 게임을 하는 장면은 광기와 편견이 없는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지를 알 수 있게 한다.


탄손누트 공항에는 떠나는 자와 이제 막 도착한 자가 한데 엉켜있다. 우리 삶이 그러하듯…. 유머와 웃음은 현실을 잊게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견딜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크로나워는 이 사실을 병사들의 기억에 남기고 베트남을 떠난다. 당시 미군 장성이나 정치인들이 크로나워 같은 유머 감각과 신화적 이야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베트남 전쟁의 부조리를 일찍 깨달아 전쟁은 크게 확대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신화와 유머가 흐르지 않는다면 광기와 편견이 쌓인다.




러닝 타임: 2시간 1분

제작: 1987년 미국,

장르 :드라마 역사 코미디

감독: 베리 레빈슨

출연: 로빈 윌리엄스, 포리스트 휘태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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