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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런 것도 몰라?

누구나 신입사원 시절이 있습니다.

by 푸른장미

연수원

대기업 연수원에 들어가면 각양각색의 동기들을 만나게 된다. 연수원에서 그들을 만나던 때까지만 해도,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나름 각자의 분야에서 꽤나 열심히 하던 사람들과 붙어있으니 나도 뭐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치기 어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건방졌던 순간은 회사 사무실 책상 앞에 앉고 나서 180도 달라졌다.


모든 게 새로웠다.

업종의 특성, 업무 프로세스, 조직 문화, 인간관계 등 대학교와는 확연히 다른 곳이 직장이었다. 그야말로 모르는 것투성이. 대학교는 내 돈을 지불하여 자유롭게 수강신청을 하며 학점도 자유롭게 받는다. 반면에 직장은 돈을 받으며 다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최소 1인분 몫을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아니, 대학교 때 이런 것도 안 배웠어?


회사에 입사한 후, 처음 혼날 때 들은 말이다.

일반적으로 회사에 들어가면 누구나 신입사원 시절을 겪는다.

빠르면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인 신분으로 변화하는 경우도 많지만,

요즘에는 중고 신입이 많은 게 최근 취업 시장 트렌드이다.

나의 경우엔 전자에 속했으며, 첫 직장이다 보니 아직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지 못했던 것 같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던가, 아직 로마가 어떤 곳인지도 몰랐기에 어리바리 타기 일쑤였다. 아직 6개월 차 밖에 되지 않은 주니어 신입사원이지만, 이제는 직장인으로서 가장 먼저 감내해야 할 것들과 정성스럽게 채워나가야 할 부분들을 이해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처음 혼나던 때의 상황과 감정을 잠깐 이야기하고자 한다.

우울.jpg 프로세스 미비로 인해 자꾸 혼나는 나를 투영해 보겠습니다.


사수 曰 : 아니, 이런 거 대학교 때 안 배웠어? 신뢰를 좀 줘야지. 내가 널 뭘 믿고 일을 맡기겠냐?

첫 어두부터 "아니"라는 말과 함께 앞머리가 흩날릴 정도의 한숨을 내쉰다.
감정이 담긴 소리들을 들을 때마다 자꾸 주눅이 든다.
"아니"는 일종의 감탄사로서, 놀랄 때 사용하거나, 무언가를 부정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분께서 사용하신 "아니"는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현재의 나에게 놀랐을 것이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을 부정하려는 의미 모든 걸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수와의 나이차이는 정확히 19년, 직장생활의 경력 자체가 근 20년 정도의 까마득할 정도이다 보니, 그분 입장에서는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는 내가 정말 한심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업무의 문제상황을 바라보는 눈높이부터 다르니까 혼나는 건가 싶기도 하며, 진짜로 내가 대학교 때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 혼나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까지 한다.


(나도 나름 4점대의 학점을 유지하고 졸업을 했는데...?)

(왜 나와 사수 사이에 중간 직급인분은 안 계시는 거야...?)


그런 것은 여기서 중요치 않다. 상황이야 어쨌든 결과로써 증명하는 것이 프로 아닌가.

직장은 학교가 아니라는 소리는 학생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동의한다.

그러나 한숨을 자꾸 내쉬는 그런 상황들이 자꾸만 날 위축되고 울컥하게 만든다.


아니, 그러면 조금만 더 친절하게 알려주시면 안 되나요?


나도 "아니"를 외치며 쭈구리처럼 소심하게 맞불 놓을 생각까지 했다.

그 단어가 혀 끝까지 차올랐지만 다시 돌려보냈고,

바로 사과드린 후, 보완해서 가져다 드리니 상황은 일단락 됐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사이에 중간 직급이 없기에 모든 업무 로드가 그 사수분께 편중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쳐내야 할 일들도 많아지는데, 나까지 가르쳐야 하니 업무량은 배가 되었겠지. 그래서 조금 더 날이 서있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 모진 말을 했던 그 사수분의 심정은 어땠을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100%는 아닐지라도, '애정'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후였다.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든 생각은 "그나마 고맙게도 아직 신입이기에 잘 넘어갔구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지금 시기에만 누릴 수 있는 신입사원만의 '면책 특권', 일종의 '프리미엄 특권'일 것이다. 지금 나의 시기에 저지르는 실수나 잘못은 배움의 과정이기에 모두에게 이해받을 수 있고, 크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주변에서도 조언해 준다. 그 말을 위안 삼으며 오늘, 내일, 모레를 계속 버티려 한다. 혼날 일 앞으로 더 많다.




중요한 것은 이런 특권들을 악용하거나, 단감만 빼먹듯 사용하는 것은 언젠가 본인이 책임져야 할 것이다.

훗날 엉덩이만 무거운 직장상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차라리 지금의 깨짐과 실수들을 성장과 배움의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한다.


신입사원이 가져야 할 자세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혼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야말로, 성장하고 싶은 신입사원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 중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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