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하나야 손바닥으로 포옥 가릴 수 있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두 눈을 꼬옥 감을 수밖에 없다는 정지용 시인의 '호수'가 떠오르는 날입니다.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는 그 조그마한 얼굴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사실은 손바닥을 치우면 그만일 것을, 혹여나 눈을 뜨면 그 부재가 더 크게 다가올까 두려워 차마 치우지 못하는 자존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그립다'는 감정은 단순히 얼굴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말투, 웃음, 걸음걸이, 먹는 모습, 즉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보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보지 않으면 마음도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참으로 잘못된 속담이라 생각합니다. 보지 않을수록 그리움은 더 짙어지고, 그 사람의 내음을 더욱 맡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움은 단순히 감정이 쌓이는 '더하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의 추억이 맞물려 증폭되는 '곱하기'입니다. 생각할수록 꼬리를 무는 추억이 우리를 더 슬프고 애틋하게 만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만남은 역설적이게도 헤어짐을 전제로 합니다. 마치 출생이 죽음을 전제로 하듯, 그리움의 출발점 역시 만남이라는 행복과 헤어짐이라는 슬픔을 동시에 품고 있는 '패러독스(Paradox)'의 관계입니다.
영어 단어 'Miss'에는 '그리워하다'는 뜻과 함께 '놓치다' 혹은 '부족하여 불편함을 느끼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승에서의 인연을 온전히 끝맺지 못한 미진함,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돌아선 아쉬움이 우리 마음을 편치 않게 하고 더욱 그립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해 봅니다. 초록의 봄날에 싱그럽게 만나 여름의 태양처럼 뜨겁게 사랑했다면, 그 추억의 나뭇잎은 가을 색으로 풍요로워집니다.
비록 가을이 지나고 회색빛 겨울이 찾아와 낙엽이 대지로 돌아가더라도,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또다시 봄이 오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헤어짐이 아쉽다고 해서 다가올 만남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움이 아쉬움으로 남는다면, 새로운 만남은 두근거림으로 다가오지 않겠습니까?
미지의 모습에 다시 가슴이 뜁니다. 그 사람은 어떤 향기를 가졌을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상상만으로도 심장 박동이 빨라집니다.
이제 저는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려 합니다. 설령 그 새로운 인연에 눈이 멀고 귀가 먼다 해도 좋습니다. 어느 계절에 만나 또 어느 계절에 떠나보내더라도, 인생이라는 사계절의 향연을 기꺼이 맞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