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용의주도한 배테랑 형사다. 겨드랑이 무전기에서 신호가 왔다. 저기다. 베란다창. 후끈한 햇살 도적이 두꺼운 베란다창을 뚫으려 꾸역꾸역 몸을 비집고 있었다. 누구보다 날쌔게 코 앞 테이블에 놓인 에어컨 리모컨을 낚아챘다.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목표온도를 3도 더 낮췄다! 성공! 시원한 거실을 이상기후 집단에게서 지켜냈다! 하하. 재밌다! 하하, 젠장. 심심해. 소파에 드러누운 나는 두 다리를 천장으로 번쩍 들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고 발만 까딱대기도 하지만 시곗바늘은 제자리다.
쓸거리.
쓸거리, 쓸거리... 재미있는 쓸거리 뭐 없나.
우습게도 원하는 게 하나 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이 사건을 만들어냈지만 당최 이 문젤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머리를 싸매보고 싶다. 독자들이여 답을 아세요?? 저는 진짜 모르겠어요! 답답하죠? 오, 실마리 풀려가는 낌새 보이나요? 제가 진짜 죽이는 해결방법을 개발해 냈어요. 흥미진진하죠? 저도 지금 즐거워 죽겠어요! 하고 싶다.
나와 관련된 걸 아무거나 막 떠올려볼까? 그러다 보면 쓸거리가 생길지도 몰라.
1년 전으로 달력을 되넘기면 키 크고 하얗게 밝게 웃는 남자를 처음 만났고.
4달 전엔 새하얀 꽃으로 장식된 웨딩홀에서 수백 개의 비즈가 반짝이는 웨딩드레스 자락을 끌며 버진로드를 걸었다.
그리고 어제 추석, 시댁에서 울었다.
그렇다면 운 얘기를 풀어봐? 하지만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남편과 심도 있게 대화하며 해결방법을 다 찾았다. 썰을 풀며 독자들과 고민할 거리가 없다. 만약 쓰게 된다면 설교글이나 되겠지.
으악! 뭘 쓰지! 으악! 일단 넷플릭스 영화 한 편 때리고 나서 마저 고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