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기록 26
호주 멜버른으로 향하는 도중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쓰다
십 년 전에는 둘이 지금은 홀로.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고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도 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이 흘러 흘러 다시 이곳으로 회귀한다.
쿠알라 룸푸르 국제공항의 빛깔은 연푸른 바다색 출렁출렁
심해 바닷속을 비추는 한줄기 파릇파릇 햇살.
빛 사이를 넘실대는 살랑살랑 물고기 승객들.
낯섦보다 낯익음으로 다가오는 쿠알라 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동트는 아침을 맞이한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노라면 공항을 배경으로 한 온갖 영화가 떠오른다. 그중에서 크리스천 베일이 주인공인 기계공 (Machinist)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날마다 차를 몰고 공항에 간다. 그리고 공항 카페에 홀로 앉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딱.... 더도 말고 딱 그 기분이다.
검색대를 통과하며 셀카 한 장을 남긴다. 공항을 오고 갈 때 예전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코딱지만 한 스마트폰이 장난감이댜. 기다리고 통과하고 다시 기다리는 긴긴 시간 동안 카메라가 있어서 심심한 줄 모른다.
전 세계에서 날아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시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는 곳. 낯섦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유일한 곳. 내가 현대인이자 도시인이라는 자각을 하게 만드는 공간. 홀로 떠나는 시간 익명의 고독을 사랑하게 하는 공간. 이방인이 자연스럽게 빛처럼 스며들고 서로 다른 수많은 얼굴이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공간에 공항만 한 곳은 또 없다.
공항 여기저기 오가는 사람들과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내 시선을 잡아끈다.
터미널을 오고 가는 승객들을 지켜본다. 모두들 적당히 쓸쓸하고 적당히 피로하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서로의 길은 몰라도 모두는 각자 제 길을 알고 있다. 결국 그 길은 같은 길. 저마다 짐을 이고 들고 끌고 삶을 향해 나아간다. 반짝이는 지느러미를 이리저리 흔들며 삶의 풍랑 속을 헤엄쳐 흘러간다. 종착지를 향해 고독한 향해를 떠난 연어 떼가 유영하는 곳. 공항.